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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휴자 Nov 11. 2023

잘 파는 친구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10

“이따 또 팔 건데요?”


5학년인가 6학년인가. 그때쯤 일이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있던 친구 중 한 명이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쟤 코 파요!”


모두 교실 뒤편, 스펀지 매트를 깔아놓은 놀이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실 뒤편에 작게 만들어놓은 놀이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장기판과 바둑판, 기증받은 책들이 몇 권 있었다).

그곳에서 J가 근면 성실하게 코를 파고 있었다. 모두가 쳐다보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고, 팠다. 

그러면서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담임선생님은 웃으며, 그만 파고 손을 씻고 오라고 했다. 교실에 남아있던 친구들도 선생님 말을 거들었다. 

나는 이제 이 해프닝이 일단락될 거라 생각했다.

아니, 아니었다. J는 “이따 또 팔 건데요?” 라며 당연한 듯이 얘기했다. 말에서 풍기는 그 지당함은, 

그의 말에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그때 반에 있었던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조금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저 태도는 뭘까? 

나였다면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른 씻고 왔을 것 같은데(아니 애초에 코를 파다가도 얼른 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코를 판 적도 없지만), J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살다가 가끔씩 J의 그 말이,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일종의 부러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살면서 당당하게 무언가를 말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J는 또래에 비해 머리가 좀 컸다. 그만큼 덩치도 컸고, 성숙한 편이었다. 

J를 떠올릴 때면 항상 두 가지 감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축구를 좋아해서 뺨은 대부분 붉었고, 

땀이 한두 줄 흐르고 있는 모습. 또, 우유의 비릿한 냄새. 

J를 자주 마주쳤던 곳이 우유박스 철제함이 있던 학교 1층 출입문 근처라 그런 것 같다. 

이런 기억, 감각들이 중첩되어, 지난 시간은 더 선명하고 풍부하게 머릿속에서 자리하고, 살아난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받았던 충격, 부러움도 덩달아 따라온다.


회사 집 회사 집, 또 회사 집. 집에서는 잠만 처리하고, 회사로 나가는 일주일을 보냈다. 평

일은 대부분 이렇게 보내긴 하지만, 이번엔 그 밀도가 달랐다. 퇴근은 다 택시로 했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이었으니까. 

야근을 하고 가는 택시는 빠르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좀 느려도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보고, 이 사람 저 사람 보며 가는 퇴근길이 더 좋다. 

버스는 사람을 태우지만, 택시는 목적을 태우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길에 내일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한숨을 쉬는데 J가 떠올랐다. 

잘 팠던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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