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9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뒤늦게 보고 있다. 익히 듣고 들어,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될 때는 사실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마음의 준비를 못 했었다.
그런 드라마, 콘텐츠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고 싶은 그런 거. 내 머리와 마음이 드라마의 결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을 때, 보고 싶은 그런 것. 이제야 그때가 된 거다(게을렀다는 걸 잘도...).
극 중 김지원 배우가 분한 염미정이란 캐릭터는 회사 내 '행복지원센터'라는 곳에 매번 불려 간다. 센터에는 사내 동호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상담사분이 계시고, 염미정은 매번 적극 권유를 당한다. 동호회 활동은 곧 행복이라는 것처럼.
여기서 내 눈에 띈 게 있다. '행복지원센터'라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행복을 지원한다니... 가능한 일일까. 어딘가 거부감이 들었다. 불편했고, 부조화스러웠다. '행복'이란 따뜻하고 개별적인 정서를, '지원'이란 이성적이고 동정을 품은 단어로 다짜고짜 덮어놓은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불안해하는 건 쉽다'고. 덮어놓는 건 쉽다. 그래서 쉽게 중독된다. 반대로 행복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힘은 용기다. 자그마한 것에도 감동할 줄 아는 용기. 기뻐할 줄 아는 용기. 언제 없어질지 모를 행복감이라도 소중하게 몰입할 수 있는 용기.
사회가 규정한 수준 따위에 연연치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감동을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드라마를 보다 괜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감동을 느끼는 행복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하나만 떠오른다.
바로 '누룽지'.
냄비에 물을 붓는다. 때마다 물의 양은 일정치 않다. 사실 정량을 맞출 필요는 없다(나는 그렇다). 맞추지 않아도 누룽지는 구수함을 잃지 않으니까. 누룽지도 후드득 넣는다. 이 역시 눈대중. 그래도 구수함은 그대로.
누룽지는 빠르게 만들 수 있고, 느리게 먹게 된다(물론, 탄생하기까지 뜨거운 불 지짐을 견뎌야 노릇하고 오롯한 누룽지가 된다). 빠르고 느리니까 보통의 속도다. 보통의 미식이다. 그래서 행복을 생각하다, 누룽지가 떠올랐나 보다. 나는 '우수', '특별', '재미'라는 단어보다 '보통'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 더 좋은 사람이라. 아마도.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누룽지를 먹어야겠다. 짭짤하고 아삭한 장아찌와 같이, 보통의 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