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3
커버 이미지: Unsplash의 Alexander Grey
살면서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성인 남자라면 더더욱. ‘아름답다’는 말은 ‘예쁘다’, ‘멋있다’ 보다 더 풍부한 정서를 담고 있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풍요로운 감정이 일어나는 것 같다. ‘아름답다’는 말은 단순히 겉모습뿐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나 어투, 사소한 손짓, 눈짓, 발짓 하나하나의 행동들을 광범위하게 껴안으며, 상대방의 삶을 한층 높이는 존중의 언어인 것 같다.
그런 말을 나에게 해주셨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얼굴은 기억이 가물하고 이름은 모른다. 아주머니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다. 대전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때다. 여름이었고 더웠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오후였다.
“**** 청년이네~”
아주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씀하셨다. 데이브레이크의 팝콘이란 노래를 들으며 여름의 상쾌함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던 나는 노래를 멈추고, 아주머니를 향해 물었다.
“네?”
“알고~ 아름다운 청년이네.”
“네? 아… 네.”
멋쩍은 듯 나는 웃었다. 자리를 피할까 하다가 아름답다는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좋았다. 호기심도 일었다. 왜? 아름답다고 말했을까? 나 꽤 아름다운 편일지도…. 같은 얼빠진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음 본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기다리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참~ 아름다운 청년이야. 이거 받으세요.”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은색 백에서 작은 리플릿 하나와 마스크 걸이를 꺼내 주셨다. 예수사랑교회. 받고 짧게 ‘네’라고 답했다. 평소였으면 죄송하다고 말하며 안 받았을 텐데 ‘아름답다’는 말은 나에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버스가 왔다. 작은 리플릿은 서울로 올라가는 약 2시간 동안 내 눈에 간간이 들어왔고, 마스크 걸이는 실용적인 전도용품이 되어 한동안 내 목에 걸렸다.
학생 때 선배들이 했던 말 중에 ‘후킹’이란 단어가 있었다. 처음에 들었을 땐 이 생소한 단어가 뭘 말하는지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결국 그 자리에서는 못 물어보고 집에 와서 검색했었다). 후킹(hooking)은 '(갈)고리, (낚시) 바늘'의 뜻을 가진 hook의 진행형으로, 대중의 관심을 낚아채다는 뜻의 마케팅 용어다. 그 후 마케팅 관련 강의나 책에서 이 단어를 심심치 않게 만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아주머니는 나에게 아주 적합한 후킹 전략을 펼치셨던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간 작은 리플릿을 나눠주시면서 체득한 노하우였을까. 아니면 타깃을 잘 찾아내셨던 걸까.
디자이너로 그리는 삶을 살다가, 카피라이터로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정말 대책 없이 전직했다. 제발 내 천직이길 바라면서, 나름 노력하며 살고 있다. 아무튼 그때 아주머니처럼 그 정도 힘을 가진 말, 카피를 내가 쓸 수 있을까. 갑자기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오늘 난 좀체 잠에 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