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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휴자 Mar 30. 2023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지 않는 태도에 대하여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2

혼자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을 때,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지 않는다. 대부분. 언제부터 이렇게 먹었는가 하면 잘 기억나진 않는다. 여럿이서 먹을 땐 트레이에 올려져 있는 케첩을 깨끗한 티슈나 감자튀김 포장지를 뜯어 그 위에 전부 짜 놓고 몇 번 찍어 먹긴 하지만 역시, 안 찍고 감자튀김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오롯이 즐기는 게 더 좋다. 따뜻할 때 먹으면 그 고소함은 배가 되니 더욱 좋다. 소금이 짭짤하게 뿌려져 있는 것도 괜찮고, 소금 없이 조금은 심심한 맛을 내는 것도 괜찮다.


사실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비슷하게 먹는 편인데, 소스를 듬뿍 찍지 않는 것이다. 음식 본연의 맛을 온전히 음미하기 위한 미식가적인 면모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덜 부담스러워 그런 것 같다. 또 소스를 담뿍 찍었을 때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소스를 먹기 위해 음식을 숟가락처럼 이용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도 같다.


비빔밥처럼 비벼서 먹는 음식을 먹을 때도 골고루 다 비비지 않고 흰밥이 뭉쳐진 부분을 조금 남겨두고, 밥을 먹는 사이사이에 이 부분을 즐긴다. 별맛이 없지만 이 여백이 참 좋다. 무언가 쉼터 같다고 표현한다면 웃길까. 아무튼 이번 주말에 나는 왜 이런 걸 좋아할까? 왜 그럴까? 싶어 찬찬히 고찰하며 시간을 죽였다. 하루키가 말했듯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 정의해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또, 뭐 이런’같은 반응을 부르는 일에 신경이 쓰여 미치려고 한다고. 물론 난 소설가도 뭣도 아니지만, 아무렴. 나도 소설가들과 비슷하게 ‘왜 또, 뭐 이런’같은 일에 신경을 썼던 거다.


나는 왜 이런 걸 좋아할까? 왜 그럴까? 결국, 내가 바라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과감한 비약을 감행해 본다. 이유인즉슨 감자튀김의 케첩을 찍지 않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즐기는 건, 삶을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대하고 싶은 나의 마음가짐, 태도인 것이다. 소스를 담뿍 찍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또 비벼 먹는 음식을 다 비비지 않고 흰밥이 뭉쳐진 부분을 즐기는 건 삶의 여백, 넉넉한 여유를 두고 살고 싶은 내 삶의 가치관이 어쩌다 보니 음식을 즐기는 미식생활에까지 투영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쓰면서도 좀 웃기지만.


여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여유가 있는 삶. 일, 일상, 생각, 관계로부터.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가끔 음악이 공간을 은은하게 채우는 카페를 상상하곤 한다. 햇빛은 창에서 들어와 바닥에 자리한다. 그 위에 나뭇잎 그림자가 옅게 깔리며 천연 카펫을 만든다. 창밖에 풍경은 한없이 지평선을 그린다. 높은 하늘에 높은 구름.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며, 쾌적한 바람을 가져다준다. 아마 이 상상은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했던 여유로움의 총체적인 합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버무려진 이미지인 것 같다.


아무렴. 여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진정 여백이 있는 삶, 진정 여유가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아니, 애초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생각을 바꾸는 게 먼저일까. 뭐든 나에겐 좀 더 마음이 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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