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풍류>는 남양주 진접에 위치한 커피 가게이다. 적당한 크기의 소박한 가게엔 수백 장의 레코드 앨범을 비롯하여 사장님의 미적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사연 가득한 사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먼지 한 톨 없다) 흘러나오는 음악 한 곡,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림책 한 권, 예사롭지 않은 형태의 나무 조형물 하나에도 사장님의 기억과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런 분이 내리시는 커피는 응당 비범할 것이다. 예상 그대로 커피는 같은 원두, 같은 방식이어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일반 학생이 연주하는 것과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가 악보는 같아도 완전히 다른 음악인 것처럼.
그런 <왈풍류> 사장님과의 대화는 항상 반갑고 즐겁다. 가끔 가게에 들려 커피를 주문하는 사장님은 언젠가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세상에 없는 카페’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주인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카페를 찾아 헤맨다. 아주 오래 전, 새벽 산책 중 발견한 산중 외딴 카페. 그곳에서 만난 노인이 가방에서 꺼낸 도구로 내려준 커피 한 잔. 그 이후 주인공은 그곳을 다시 방문하고자 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남자는 카페를 열어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미 노인이 된 그는 빈 커피잔을 바라보며, 비로소 ‘세상에 없는 카페’를 다시 만난다. 외딴 산중, 자신을 위해 커피를 만들어주던 노인과 그가 지키던 카페를.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상적인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우리의 마음이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장소는 좀처럼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곳에 꼭 닿을 수 있으리란 강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만의 공간’은 오롯이 내 심상 안에서 그 완벽한 전체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반면 현실은 그러한 장소를 부분적으로나마 제공함으로써 나의 열망을 보충해준다. ‘세상에 없는 카페’와 빈 커피잔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 (전체 : 부분 = 이상 : 현실)
<왈풍류>의 사장님은 이 이야기를 자신이 즐겨하는 산책 중에 떠올렸다고 했다. 열망하는 바를 모두 갖춘 이상적인 장소로서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것은 인간 보편의 경험이다. 그런데 이 꿈의 공간에 커피가 있는 것은 사뭇 흥미롭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위스키도 아니고 코코아도 아니다. 커피다. 그것도 노인은 산장, 아마 창문 밖으로 흰눈이 나릴 것이 틀림없는, 외딴 곳에서 홀로 주인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있다. 그리고 가방(영화 <간장 선생>의 의사가 들고 다녔을 법한 검은색 왕진 가방이다)에서 커피 원두와 드리퍼, 필터, 주전자 등을 바리바리 꺼내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연출과 상세한 묘사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이다. 주인공(혹은 사장님)이 가닿고자 하는 곳은 노인이 있던 카페 자체지만 첫 번째 방문 이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카페는 그대로 환상이 된다. ‘비어 있는 커피잔’은 환상과 현실을 잇는 유일한 매개이다. 커피잔을 통해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카페는 생생한 현실감을 갖고 재현된다. 그야말로 마법이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부연 설명하진 않았지만 현재 성업 중인 <왈풍류>와 그 가게를 지키는 사장님은, 산책 중 우연히 들린 카페를 평생 찾아 헤맨 이야기 속 주인공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 오랜 기간 몽상을 거듭하고 현실에 옮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의 소산일 터이다. 물론 실제 <왈풍류>는 싸락눈이 날리는 산속이 아니라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정갈하게 꾸며진 가게 내부에선 이야기 속 ‘세상에 없는 카페’의 분위기가 충분히 느껴진다. 한 개인이 상상한 ‘나만의 공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공유되고, 또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마치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같은 꿈을 배경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체험을 준다면 그것은 마법적인 순간 아닌가?
이와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가게에서 다루는 커피 가운데 여름밤에 어울리는 커피가 있다. 이건 순전 내 생각이다. 목넘김 이후 은은하게 남는 모과 향기가 여름밤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 걸까? 나는 이러한 상상을 구체화하여 글로 쓰기도 하고, 커피를 소개할 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게의 단골 손님이자 <미조사>의 소라 작가님에게 이 커피를 추천하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얘기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작가님은 내게 앨범 하나를 알려주었다. 파코 데 루치아, 알 디 메올라, 그리고 존 맥러플린 기타리스트 세 명이 1996년 발표한 <The Guitar Trio>가 그것이다. 클래식 기타의 거장 세 명이 연주한 이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어렴풋하게 그리던 어떤 풍경, 한산한 휴가지의 여름 저녁, 한낮의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한껏 늘어진 채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 아래 시간을 보내는 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곳이 실재한다면, 분명 이 음악이 카페 테라스 어딘가에서 흘러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나만의 공간’이 또 다른 누군가의 참여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상상, 장소에 대한 몽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일 뿐더러 반드시 커피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왈풍류> 사장님의 ‘세상에 없는 카페’ 이야기와 ‘여름밤에 어울리는 커피’의 상상 속 장소에 ‘커피’가 등장한 것은 단순히 커피 애호가들의 몽상에서 비롯된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커피는 우리는 어떤 장소로 이끌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커피가,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오롯이 나 자신’으로 있게 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타인과 함께 소통하게 하는 ‘사회적 자아’ 역할을 부여하는 능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만의 공간’이 ‘모두의 장소’가 되기 위해선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원천이 되는 상상, 그러한 상상의 디테일을 형성하는 현실의 사물, 그리고 그러한 상상에 공감하고 이바지하는 사람들의 상호 주체적 참여. 이를테면, '비어 있는 커피잔'이 '커피'를 기다리고 있듯이, '커피와 잔'이 만나 비로소 풍경이 완성되듯이 '나의 상상'은 '타자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소’의 생명력은 강하다. 백일몽으로 그치는 환상이 아닌, 현실과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장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 힘을 발휘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커피는 그러한 장소 만들기에 아주 든든한 조력자이다. 잊혀지지 않는 매력적인 장소를 만들고 싶은가? 당장 커피를 마셔라. 커피를 마시면서 상상하라. 그리고 사람들과 커피를 또 마셔라. 이야기하고, 함께 상상하라. 장소는 거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