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대물림
"우와! ㅇㅇ이 가위질 진짜 잘한다!
완전 선에 딱 맞춰서 잘 자르는데?!"
나의 한마디에 아이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간다. 금세 가위질에 집중하고 멋진 결과물을 들이밀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힘들지만 잘 참고 해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이라니!
장점을 인정해 주니 더 잘하고 싶어지고 몰두하고 집중한다.
"가위질은 어렵고 힘들어요. 선생님이 잘라주세요" 하던 징징이는 어디에도 없다. 가위질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능력 있는 아이가 눈앞에 웃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장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성장을 응원하는 사람의 지지와 인정으로 조금씩 힘을 내고 자라나는 것. 새롭고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며 인내하고 견디어 내는 것. 그 견딤의 끝에 내가 이루어낸 결과물에 만족감을 느끼고, 다시 그 어려움을 견디는 힘을 내는 것이 성장이라고 본다.
아이들이 뿌듯해하면 덩달아 나도 뿌듯하다. 양육자 상담 때 조금은 신이 난 나를 발견한다.
"오늘은 ㅇㅇ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집중했어요."
"이제 ㅇㅇ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되었네요!"
하지만, 부모의 태도에서 나의 흥이 와장창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ㅇㅇ이는 이런 장점이 많은 아이입니다. 집에서도 이런 긍정적 지지를 많이 해주세요."
아이의 장점을 알아차려주고 칭찬한다면 아이의 행동 변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다가 머뭇거리게 된다. 양육자는 늘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양육자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불안정 애착유형으로 성장한 어른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아 의심하고 피해를 입지 않을까 불안하다. 불안정 애착유형의 양육자는 자녀에게도 불안정한 애착패턴으로 관계하고, 심지어 아이의 의도를 의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사회에 나가 혹여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부모로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아이에게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아이는 가장 신뢰받아야 할 부모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아이 또한 부모를 믿지 못하는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맺으며 성장하게 된다. 대물림이 되는 것이다.
불안정한 양육자와 상담할 때는 몹시 조심스럽다. 의도치 않게 부모의 죄책감이 건드려지면 아이와의 상담시간도 날아가버린다.
겉으로는 "제가 부족해서 아이가 힘든가 봐요. 저때문인 건가요?" 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하지만, 이내 갖가지 이유를 들며 종결통보를 받기 일쑤다.
나의 상태를 통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죽을 만큼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두려운 양육자는 직면보다는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