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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ug 09. 2022

폭우와 엔탈피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어젯밤 오래간만에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한 손님을 보내드릴 방법이 없었다.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탈출한 친척 분도 발이 묶였다가 한참을 참방참방 걸어 겨우 우리 집에 오셨다. 뜻밖의 손님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모두가 무사하길 바랐건만, 우리 팀원 분도 침수 피해를 입고 피신하셨다. 이 와중에 떠오르는 건 열역학과 지구과학.


이 많은 물이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태평양.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가 있다. 지구가 더워지면 바다의 공기는 더 많은 물과 에너지를 머금는다. 단위 질량 당 열에너지, 엔탈피가 커진다. 그 따뜻하고 물을 흠뻑 머금은 공기가 한반도에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다 북쪽에서 내려온 서늘한 바람 덩어리를 만나면 빠르게 식으면서 품고 있던 물을 쏟아낸다. 에너지가 소리로 퍼지면 천둥이, 빛으로 퍼지면 번개가 된다. 한편 따뜻한 공기에 땅의 수분을 뺏겨 가뭄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지역차와 시간차를 두고 곳곳에서 물난리와 가뭄의 빈도가 높아진다. 언제 어디서 재해가 일어날지는 그저 확률의 싸움.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난방 시즌이 100일 남았다. 목표는 1840. 온도 18℃ 습도 40%. 선선한 봄가을 정도의 실내 공간. 이론상 난방부하를 최대 25% 낮춘다. 사람도 편하고 지구도 편하게. 습도가 40%가 되면 에어로졸 형태로 떠다니는 바이러스의 전파 범위도 짧아진다. 가림막만큼이나 과학적인 방역. 풍량 적은 살균기보다 낫다.


조만간 예약받고 생산하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거대한 기후와 질병의 문제 앞에 무력하고 싶지 않다. 움막 짓고 야생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면 도시에서 합리적인 타협안을 만들어야 한다. 수백억 예산의 교육과정과 수천만 원의 장학금으로 과학을 공부했고 공학을 익혔다. 더 많은 이웃을 잃기 전에, 더 빨리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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