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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Aug 02. 2023

두유노 실패?

부드러움은 나약함과 다르다

몇 번의 면접을 보며 여러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이력을 보니 인생에 실패가 없었을 것 같네요. 좌절을 극복한 경험이 있나요?



무해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내 페이스를 유지하던 중이었다. 순간 발작 버튼이 눌린 사람처럼 씁쓸했던 인생 굴곡을 토로하고 싶었으나 다시 면접용 얼굴을 켰다. 대학원에서 공동 저자로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짧게는 몇 달 같이 고생하고 학회지에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로 격려하고, 잘 보완해서 다시 도전했다고. 썩 괜찮은 대답이지 않은가? 실패+극복 일화인데 팀워크도 같이 어필했다. 면접관도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이렇게 착해 보이는 대표 말을 누가 듣냐, 그 팀은 J 커브가 안 나올 것 같더라, 사업을 좀 하다가 말 것 같다, 혹시 자녀 계획은 없으시냐. 내 귀에 직접, 건너서 들리는 여러 물음표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 우리 팀이 무척 단단하다는 걸 안다. 얼어붙었다는 이 시기에 손을 잡아 생존하고 기회를 엿보며 조용히 질주한다.



내가 비교적 하얗고 부드러운 외모와 말투, 얇은 목소리를 가진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언니와 엄마, 나 셋이 모여 있으면 아이를 낳고도 소녀 같은 두 사람에 비해 나는 괄괄한 장군감이다. 집안에서 "역시 경희는 장남" 소리를 듣다가 밖에서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세상에 훌륭하고 능력 있는 리더와 그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일화들이 참 많지만, 나는 별수 없이 나답게 리더의 몫을 한다. 유난스럽지 않은 고졸 엄마가 자녀 셋을 다 소위 좋은 대학, 직장에 보낸 것을 보고 사람들은 비결을 묻는다. 엄마는 애들이 알아서 잘 컸지요, 하고 호호 웃으시지만 나는 안다. 서로를 지지하는 허용적인 공동체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때 개인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성장하는지,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을 챙기고 나누는 여유까지 생기는지. 밖에서 찬 바람이 불 때 따뜻한 웃음으로 많은 걸 녹여낼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일견 부드럽게만 보이지만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흥분하지 않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곤조곤 단호하게 함께 싸워준 것 역시 엄마였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30년 넘는 세월 동안 보여주고 증명해낸 것을, 나는 체득했다.



법정 스님 책에 부드러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산속에서 수십 수백 년 된 울창한 고목을 쓰러뜨리는 것은 한여름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라 하얗게 밤새 조용히 내리던 조그마한 눈송이라고. 가장 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것들이 실은 가장 강하다고.



얼른 우리 팀이 더 잘 되면 좋겠다. 이렇게 유하고 물렁물렁해 보이는 사람이 리더여도, 팀이 건강하고 멋지게 자랄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더 많이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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