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논숙자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스 Jun 13. 2023

인정받는 사람에서 인정하는 사람으로

나는 색깔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매번 색깔을 바꿨고,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게 나의 재주였다. 어디에 던져놔도 잠을 잘 자고 금세 적응했다. 초등학교는 이탈리아에서, 중고등학교는 네덜란드에 살면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을 정도다. 어린 마음에 ‘한국 가서 살래’라고 떼쓸 법도 했는데,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적응을 잘했다. 오히려 적응을 너무 잘해서 문제였다. 


그 문제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것. 여러 국가에 살면서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이다. 덕분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은 넓어졌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는 깊이는 얕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면서 안다고 믿었던 것. 고등학생이던 나는 물리학과에 진학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성적표를 받으면 물리 점수가 높게 나왔으니까. 이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실제로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물리학과 동기와 선배들은 물리학에 미친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 내가 가진 열정으로는 발끝도 들이밀 수 없는 세계다.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 대가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그리고 방황해야 했다.


그냥 성적표에 찍힌 점수 말고, 실제로 내가 뭘 잘하는지 몸으로 부딪혀가며 알아야 했다. 최대한 멀리 다니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면서. 그렇게 선택한 동아리가 ‘여행하는 선생님들(여쌤)’이었다. 여쌤은 흔히 손꼽히는 여행지가 아니라 도서산간 지역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규모 비영리 단체다. 한마디로, 물리학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좋았다. 추상적인 숫자와 원칙의 세계가 아니라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인 곳. 


여쌤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로 해외에서 살던 어린 시절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람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갔다. 단순 잡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보니 어느새 교육 팀장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지쳐서 그만두고, 누군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참여를 안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 나갔으니까. 대전에서 활동하던 조직을 서울로 확장하기 위해 서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직접 교육도 진행했다. 작은 동아리에서 무슨 사업 하듯이 일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재미가 더 컸다. 이때 처음 알았다. 내가 잘하는 일은 0에서 1을 만드는 일이다. 별것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쑥쑥 커나가는 성장의 기쁨. 그 결과로 얻은 조직 내부와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인정.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나는 지치지 않고 움직인다.


그래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나를 증명하기로. 2021년,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당시 인기를 끌던 구독 서비스에 꽂혔다. 여러 개의 구독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가입, 해지하면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Sureplus를 창업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의 사업 경험은 원래 목표로 했던 빠른 성장이 아니라 다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Sureplus에서 함께 일하던 공동창업자의 추천으로 내 인생을 바꿀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됐으니까.


코리빙 하우스 ‘논스’는 창업가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는 커뮤니티다. 초기 창업가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 응원하고, 조언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전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만 모여있어서 용기가 전염된다. 심지어는 ‘쟤도 하는데 나는 왜 못 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사업하려면 이것도 준비해야 하고, 저런 것도 공부해야 하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드는데 이런 장애물이 하나씩 걷히는 기분이랄까. 일단 도전하고 깨지면서 배우는 거다. 


실제로 논스에 있으면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면서 결국 해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기사로 접하는 것과 매일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짧은 글로 담기 힘든 그 사람의 일상적인 고민이나 선택의 기준을 듣고 있으면 내 안에도 그런 DNA가 켜켜이 쌓인다. 이렇게 도전과 성장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일종의 집단 기억이 형성된다. 모두가 도전하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메타버스에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아이템보다 중요한 건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첫 창업 때와 달리 나도, 동업자도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는 인내력은 더 강해졌다. 


주변에 누가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주다간 내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중요한 결정들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내 색깔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누구에게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을 선택했고,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하루하루 알아가고 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창업가의 삶을 함께하고 싶다면 논스에 문을 두들겨보라.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논스에 있다 보면 누구와 어떤 일을 할지가 결정되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게 될 테니까.


https://nonce.community/


랜지드 CTO

한마로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 하면 0점, 못 하면 30점, 끝까지 하면 100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