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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25. 2021

012. 가족의 의미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나이가 차고, 연애를 하게 되면서 내가 만나는 상대들은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옆에 있었다.

나는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나중에 C랑 결혼할 거야.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략 20대 후반이면, 대부분 결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장난 같은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26살부터 소개팅 자리에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왔었다.

1~2년 교제를 하면 28살이 되고, 이즈음부터는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학계의 정설인 듯 모두가 소개팅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면 결혼을 하는 것이지, 결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고?

너무 이상하지 않아?

결혼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결혼을 목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소개팅 애프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이유는 ‘나는 이제 좀 차분하고 안정적인 여자를 만나고 싶어.’였다.

모두들 결혼을 하기 위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차분하고 조용한 여자를 원했다.

소개팅 상대들에게 나는 좋은 말로는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였고, 나쁜 말로는 감당하기 힘든 여자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아직도 이상주의를 꿈꾸는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사귀던 사람과 이별을 하기도 했다.

상대방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결혼을 하려면 나와 자신이 서로 다른 부분들을 맞춰가야 하는데,

도저히 나랑은 맞출 수 없을 것 같다며 만난 지 한 달 만에 이별을 고한 사람도 있다.


지금도 나는 결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교제를 시작할 때 결혼을 염두에는 두는 정도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교제를 하고 정말 사랑하고, 결혼까지도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결혼하고 싶다.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래도 상대가 결혼이라는 제도나 규범에 있어서 나와 합리적인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상대가 결혼생활과 가정의 형성에 대해 어떠한 태도로 접근하는가,

그리고 그 태도가 앞으로 나와 가정을 이루어가면서 발생할 다양한 문제들을 잘 해결해 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제도에 대해서는 이제 조금 달리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B와의 이별을 통해 하게 되었다.

B와 이별을 하기는 했지만, B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B는 내가 삶에서 두 번째로 결혼을 고민하게 한 남자였다

J의 경우는 내가 인생에서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의 만남이어서

그와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반면, B와의 교제는 자발적으로 내 삶에 있어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한 경험이었다.

10년을 친구처럼 지냈던 B와의 관계가 연인으로의 관계로 재정립되면서

B와 가정을 이루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도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와 규범에 대해 의문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가정을 이루는 방법은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다만, B가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면, 그와 어떤 방법으로든

가정을 만드는 노력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B와 나는 결혼, 가족, 젠더 측면에서 각자의 방식과 관점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때로는 격하게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도 하고,

때로는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기도 하면서 의견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했다.

의견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설득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서로 설득시키지도 설득 당하지도 못한 채 이별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B와 가정을 이루는 것을 논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가진 가족의 의미,

그리고 실제로 내가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두 주체가 관계를 맺으면서 수반되는 다양한 문제 발생의 가능성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할 때 결혼의 두 주체는 제도의 측면으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나

문제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문제를 어떤 태도로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에 의해 수반되는 또는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나의 우려는

내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도 가정을 충분히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나는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가정과 가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나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이 ‘가정, 가족의 의미’를 정리했다

“마음을 치유하고 정서를 어루만질 수 있는 형태에 상관없는
-동거이건, 사실혼이건, 결혼을 했건, 입양이건, 혈연으로 묶여 있건,
법적으로 묶여 있건, 성별 구성도 상관없는-
주거 공동체”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족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어떤 형태이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B는 내가 기존 방식에 따른 결혼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의 가능성을 말하면,

그에 대해서 인정하고 해결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몰린다는 생각에 매우 마음 상해했다.


나는 그런 상태에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원가족 역시 나의 동반자와 나에게 내가 우려하는 문제를 제공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나는 이에 대해서 나의 동반자와 나의 새로운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 있다.

물론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계속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B와 갈등이 생기면서 가정에 대한 나의 생각과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원가족과의 관계와 나의 이전 연애들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늘 같은 이유로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

이별의 이유는 단순하다.


‘쟤는 나와 이러이러한 것이 맞지 않아. 이것은 차이를 좁힐 수 없어. 헤어지는 것 밖에는 답이 없군.’

‘아~ 얘는 이게 단점이야. 이 단점은 고칠 수 없어. 나는 이걸 감당할 수 없어. 이별해야겠군.’


나는 늘 칼같이 나와 상대가 맞지 않는 점을 골라내고 잘라냈다.

갈등이 생기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패턴을 살핀 후 이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빠르게 판단하여

나의 감당 능력 대비 나의 스트레스나 감정 소모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이별을 선택했다.

물론 이별에는 이것 외에도 다른 기준이 있지만,

이별의 기준은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언급하지는 않겠다.


나의 이전의 연애는 늘 그랬다.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 이별이 미친 듯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이별의 기준을 나의 원가족에게 적용을 해보고, 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칼같이 이별을 선포하지 않았다.  

내가 인생의 방향을 잃고 남들이 모두 좋은 직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은행을 그만두었을 때에도

부모님은 나에게 ‘너는 내 딸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연기를 그만두고, 직업이 없이 백수처럼 놀 때에도

부모님은 나를 걱정했을 뿐 나와 이별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나의 길을 찾아갈 때, 남들의 기준에서는 돈도 못 벌고 번듯한 사무실을 차린 것도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었다.


내 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고시를 떨어져서 안타까운 마음에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기는 하셨지만,

동생이 고시를 떨어졌으니 동생과 의절하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위로를 하셨다.


엄마와 아빠 역시 서로 그러셨다.

승진이 안되었을 때, 직업적으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서로에게 파트너로서 실수를 했을 때

서로 다투고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두 분은 꿋꿋하게 잘 이겨 내셨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버티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분은 여기까지 오셨고,

이제는 두 분이 함께 의지하시며 지내신다. 여전히 투닥투닥 다투신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나의 연애가 부끄러워졌다

가족이라는 것을 단어와 문자로만 좋은 것으로 정의 내리고

나는 여태 진정한 사랑으로 누군가를 끌어안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판단하는 돈, 명예, 직업과 같은 기준이 아니었을 뿐이지,

나도 남들과 똑같이 나만의 기준으로 상대를 재고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데에 각자 나름의 조건이 필요는 하겠지만,

나는 그 조건을 무시한 상태에서 원가족과 나를 제외한 누군가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부모님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양육했기 때문에 존경할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부모님을 정말 존경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진정한 사랑을 당신들의 온 삶으로 보여주신 정말 위대한 분들이셨다.

그것은 비단 나의 부모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이 진정한 사랑을 당신들의 온 삶으로 보여주고 살아내고 계신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몰려왔고, 나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B와의 갈등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건 묶이지 않건 가정을 이루고 싶은가.

이 사람도 그럴 생각이 있는가?

 – 당시 B는 그럴 생각이 있다고 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 관계를 바라보려고 애썼다.

결국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래, 가족이라는 것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을 이해해가면서

그 과정에서 나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람과 삶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B가 나와 완전히 모든 것이 잘 맞아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B는 그 당시 나에게 많은 것을 양보했겠지만, 나는 양보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냥 B는 B가 가진 특성을 드러낼 뿐이고, 그것은 내가 고칠 수도 없고, 고친다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B의 특성을 수용하고,

그 외의 B와 내가 잘 맞는 부분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의 타협점을 찾아가면 된다.

그러니 가정을 이루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양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30년 이상을 다르게 산 사람들이 어떻게 모든 것이 맞겠는가?

맞추어 간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냥 그대로 두고,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대응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대화도 반드시 필요하겠지.


그러다 보니 그래 내가 이런 마음으로 앞으로 이 사람과 살아갈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데 결혼을 할까 싶기도 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 결혼이라는 제도를 내가 수용해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나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했고,

B와 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빨리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B는 지쳤고, B는 나와 가족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

연애를 했던 것인지 결국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했다.

가족을 나 혼자 만들 수는 없으니,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동의도 필요한 것이니

나는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서

진정한 사랑, 그리고 어려움의 극복,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는

이 연애를 통해 조금 더 명확해졌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점차 가정을 만들 생각을 했고,

B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연애를 했다.


우리는 달랐다

결국 나는 J에게도 B에게도 결혼이라는 목표에 있어 교체될 수 있는 부품이었다.

난 이렇게 또 톱니바퀴처럼 교체당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들의 시각이다.


나는 나에게 있어 결혼과 가족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겠다는 나의 생각을 내 삶에 잘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의 상대를 결혼이라는 목표 하에 교체하고 싶지 않고, 교체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정말 나와 동반자의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을 찾을 것이고,

그 사람과 함께 우리에게 닥칠 여러 가지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사랑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랑해서 결혼을 할 것이다. 결혼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각자 다른 의미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음 연애를 하면 이제는 결혼에 대해서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권으로 들어갔을 때, 그리고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나의 파트너와 내가 무조건적으로 방어적인 태도가 아니라

충분히 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다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도 나는 꽤나 행복할 것 같다.


제도권 밖에서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가정을 이루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 서로 다름의 선 위에 서서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손을 잡고 가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의 이전 연애 경험과 나의 원가족, 그리고 가장 최근 연애를 통해

내가 경험하고 고민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는 이렇다.


Q of OURTO

당신에게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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