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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04. 2021

013. 아빠와 화해를  할 때가 되었다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난 심리학을 잘 모른다

그러나 원가족이 한 인간의 인간성 및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앞에서도 나의 애정 결핍이 나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을 했듯이,

나는 원가족으로부터 형성된 결핍과 트라우마가

개인의 가족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예술 관련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 잠시 청년 사업을 하는 곳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회사의 대표 역시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꿈꾸었던 친구였기에

우리는 청년들의 문제와 문제 해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창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그 친구가 정보를 전달하고, 그 주제와 관련하여

나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는 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이야기 끝에 그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 너보다 나은 남자 만났던 적 있냐?”


나의 대답은 너무나도 빠르게 ‘아니.’였다.


사실 그 친구와의 대화 이전에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 대한 오만이지만,

당시에 나는 그 누구도 나보다 나은 파트너를 만났던 적이 없었다.


난 나보다 나은 남자를 만났던 적이 없다

나의 가족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남자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진 꿈과 직업을 차별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업과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그리고 그런 직업을 가져야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나보다 월등히 나았지만, 삶의 가치적 측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보다 신체적 조건이 더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사회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지니고 활동을 하려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누어 본 결과

그의 그러한 성향은 자신의 결핍과 트라우마를 가리기 위한 것, 멋져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세상이나 나 자신에 대한 탐구의 태도에 있어 내가 더 낫다고 느꼈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남자를 만났지만, 취미만 같았을 뿐,

직장이나 학벌이나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 모두 다 내가 더 낫다고 느꼈다.


나보다 재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나보다 직업이 좋으면 직업이 좋은 대로,

나보다 학교가 좋으면 학교가 좋은 대로, 나보다 생각이 깊으면 깊은 대로

나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나은 부분들을 찾아내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난 단 한 번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친구이자 한 회사의 대표인 그의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은 했지만,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과연 그들이 정말 나보다 못났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해서 내가 더 나은 점들을 억지로 찾아내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못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나의 역할을 확인받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방식으로 나의 삶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이건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고민했다.


사실 이전 연애들은

‘예전의 내가 보여서.’, ‘옆에서 내가 조금만 도우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아서.’의 이유로

연애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나의 경험들과 생각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남자관은 어디에서부터 형성된 것일까?

그리고 어떤 사건과 단어, 이야기들이 나의 남자관을 형성했을까?


그 끝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나의 최초의 남자는 아빠였고, 남자관은 아빠와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심리학적으로 잘못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탐구의 과정이다.

심리학적으로 해석이 틀렸다면, 이야기해주시길 바란다.-

자라면서 아빠보다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아빠가 남편으로서 엄마를 힘들게 하거나 실망감을 줄 때 내가 들었던 엄마의 평가들,

혹은 나에게 전이되었던 엄마의 감정들, 그리고 내가 지켜봐야 했던 엄마와 아빠의 대화와 다툼 들.


그러한 것들이 나의 남성관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아빠와 화해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는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으로 어떻게든 화해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확보해왔지만,

아빠랑은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대화를 많이 하는 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개인적으로 아빠의 감정과 아빠의 과거 사건, 또는 경험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아빠와 화해가 필요하다고 느낀 시점은 2017년이었지만,

그즈음의 연애부터는 나의 과거를 닮은 남자를 만나지 말자 라는 다짐 때문인지 연애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가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을 통해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가장 최근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나의 원가족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형성된 결혼관도 있겠지만,

원가족 역시 나의 결혼관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애를 보면, 나의 파트너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결혼을 생각했다.

결혼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나 문제 발생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인정하였지만,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의지가 없이 그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들 역시 사회에서 받는 압박이나 사회의 기준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이들 역시 원가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더욱더 나의 원가족을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 제도에 대한 생각, 남자에 대한 태도,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 결혼에 대한 생각 등등의 근원에는

원가족이 반드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체험했던 가장 최초의 결혼 제도와 결혼 생활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침 이때, 함께 산책을 하던 아빠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결혼을 하는 것은 좋은데, 잘 생각해서 해. 결혼을 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네가 좋아하는 일을 모두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해. 이제 아빠는 너를 급하게 보낼 생각이 없어.”


세상에서 보수적이라면 어디에서도 지지 않을 아빠에게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다니.

나는 너무 놀랐다.


아빠가 내가 두려워하는 결혼 생활과 결혼 제도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딸의 인생을 생각하며, 딸에게 조언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여자가 가족을 이루고,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약간의 종속된 삶을 사는 것이

늘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던 아빠다.

그리고 심지어 J와의 연애에서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인사시킨 남자가 J이므로

당연히 J와 결혼을 할 줄 알고 나를 마치 화초처럼 데리고 있다가 J에게 넘기려고 준비했던 아빠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여자로서의 삶, 대한민국에서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정말 너만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우리 아빠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다니

아빠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로서의 삶,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여기까지 오셨구나.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엄마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여자로서 계속해서 사고하고, 성장했던 것처럼,

나의 아빠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깨닫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오셨구나.

이제는 아빠나 남자가 아닌 멋진 인생의 선배로 딸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계시는구나.


이제 아빠는 아신다.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지니는 행복감과 무게감을.

그렇기에 아빠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아빠의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마주했다.

엄마께 아빠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장인어른께 참 미안해. 누군가의 사위가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해서 첫 사위를 맞이하시고,

큰 딸이 결혼을 고려한다며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는 과정을 겪으면서

당신의 과거를 돌아보신 듯하다.


큰 딸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겠다, 또는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동거를 하겠다는 등의

세상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을 부모님께 제안했지만,

아빠도 엄마도 네가 사랑하면 어떤 방법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너와 함께 살 사람만 합의를 한다면 아빠 엄마는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신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이제 나는 그런 것을 고민할 남자가 없다.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이해에 죄송하고 감사하다.

일반적이지 않아서 부모님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감당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고,

그럼에도 나를 안아 주셔서 감사하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결혼을 통한 여자들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고,

결혼을 통한 가족과의 결합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돌아보신 모양이다.


나의 아빠가 이렇게 멋진 인격체였다니.


진정으로 아빠와 화해할 시간이 되었다


내 안에 있던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을 버리고,

아빠라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 둘이 그동안의 오해를 풀어낼 시간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다.


아빠께 손을 내밀 수 있어서, 아빠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어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고 잡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마 꽤 오랜 시간 전에 아빠는 나에게 양손을 모두 내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언제고 나를 안아주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팔을 접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나 혼자 아빠를 오해하고,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도망 다녔을 것이다.

이제는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와 함께 걸을 때이다.

아빠의 품에서 더 마음껏 응석 부리고, 반대로 내가 아빠를 꼭 안아드릴 때이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나의 사고와 태도에 원가족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부모님과 계속 대화해가면서 내가 파헤쳐야 할 부분이다.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게 그럴 기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뿐이고,

나의 원가족이 나와 화해할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누구의 말처럼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매번 부딪치고,

경험하면서 그렇게 계속 크고 있나 보다.


Q of OUTRO

당신의 원가족은 어떠한가? 혹시 지금 갈등을 겪고 있는가?

지금 당장 화해하라고 하지는 않겠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반드시 어떠한 형태 로건 화해의 시간이 다가온다.

나도 그렇고, 나의 친구들도 그랬다.

모두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 시간은 죽일 듯이 싸운 뒤에 오기도 하고, 전혀 뜻밖의 사건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두어라. 단,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만 멈추지 말아라.

그 생각이 당신에게 기회를 알아차리게 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원가족과 잘 화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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