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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11. 2021

014. 조지아오키프‘따로 또 같이’_’엄마’ 의 문자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이별의 아픔을 나는 그림으로 달랬다

그를 향해 남아 있는 나의 사랑, 그리움, 그를 잡지 못한 절망감,

그러면서도 이별 후 나의 삶에 대한 확고함과 설렘 등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감정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했다.

무엇이든 한가득 차면 비워내야 그 다음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이후로 잡지 않았던 붓을 잡았다.

늘 연필로만 그려왔었던 그림에 색을 더했던 것은 그 해 겨울이었다.

수채화 도구를 준비해 놓고 별반 사용이 없었던 나는 이번에는 과감하게 색을 칠해 보기로 했다.

단지 연필의 흑백으로 명과 암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당시 나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까지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감정들을 어떻게 그림과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떠오른 화가가 조지아 오키프였다.


조지아 오키프의 Red Hills, Lake George(1927)가 떠올랐다.


나는 선과 색이 강렬한 그림을 좋아한다

타인들이 나를 바라 볼 때 강렬한 이미지를 받았다는 것이 싫어서

내가 추구하는 나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그림에 대한 취향도 잔잔하고 부드러운 것이라고 우겨봤지만,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림은 강렬한 그림이었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도 그랬다.

전시회에서 마주한 오키프의 그림은 매우 강렬했다.

‘나는 붉은색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부드러운 그리고 잔잔한 그림을 좋아해.’ 라고 억지를 부려보아도

오키프의 그림은 나의 발걸음을 묶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그림이 강렬했던 것은 아마 그녀의 그림에

그녀의 삶과 가치관이 온전히 담겼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떤 예술작품도 이유가 없는 표현은 없다.

당시에는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그림에 끌렸고, 그녀의 작품을 몇 점 더 온라인으로 찾아본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B와의 이별 후 색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가 생각이 났을까.


그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Red Hill이 생각이 났을 뿐이고,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담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작 색을 쓰기 시작하니 작업은 하루 안에 끝나지 않았다.

한 작품을 시작하고 색을 말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고,

그렇게 몇일에 걸쳐서 그려놓은 작품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며 몇일을 보냈다.

그렇게 하나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고, 또 완성하고 시작하며 거의 한달을 보낸 것 같다.


물론 일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거의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몇 작품씩 그려가며 한달이 지났고,

새로운 테마의 작품을 그리고 싶어져서 잠시 그림을 쉴 때 즈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블로그 포스팅 링크가 먼저 전달이 되었고, 뒤이어 엄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네가 말한 삶이 이런 삶이 아닐까 싶다. ‘따로 또 같이’의 삶.
이 글을 읽고 나니 결혼에 대한 네 생각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네가 생각한 삶이 틀린 것이 아니라 믿으며,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 가렴.
많이 나누고, 좋은 일 하며 살면 된단다.’


포스팅에는 내가 모르던 오키프의 삶이 쓰여져 있었다.


오키프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사진작가 스트글리츠와 불륜의 멍에를 지고 살았다.

물론, 사랑과 불륜의 경계를 어디까지 지어야 하고,

그에 따른 상처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녀는 스티글리츠와 긴 시간 연인관계를 지속하면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 자신 들만의 작업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키워나갔고,

스티글리츠의 작업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스티글리츠 역시 오키프의 작업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둘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작품과 삶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당시 둘은 가족으로 엮이지 못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하며 서로의 삶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둘은 가족이 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인 아닌 상태에서도 서로 깊이 사랑했고, 서로의 삶을 성장시켰다.

 

나는 이러한 관계를 원했다.

가족이라는 형태로, 또는 제도로 엮이지 않아도

또 물리적으로 꼭 함께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을 유지할 수 있고,

서로 성장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를 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오키프와 스티글리츠와의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관계가 또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결혼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에 대해서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않은 채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은 유명한 사람 들이다.

둘은 철학자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영혼의 짝임을 알아차렸고,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서로의 연애를 서로에게 국한시키기 않기로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관계를 끝까지 건전하게 지속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로 이러한 관계가 불가능하지 않으며, 노력을 하면 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이들 말고도 찾아보면 제도에 속하지 않은 채 사랑의 관계를 건전하게 지속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만의 방법과 형태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한마디 했다.


“그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기록에 남았겠지! 그 사람들이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으면, 그 이야기가 기록에 남았겠니?”


나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하자

26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창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때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대한민국 26살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나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자.


오키프를 만나기 한참 전의 일기였다.

아마 오키프의 그림에 끌렸던 것은

오키프의 생각이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많이 비슷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 된 그녀의 작품이 나에게 강렬하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은 실현가능 할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나이를 먹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었다.


꽤 오랜 시간 나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가족의 형태도 나만의 것 일 테니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Q of OUTRO

대한민국 36살 여자, 이해랑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지금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들은 무엇일까?

그런 하루하루가 쌓인 당신의 미래는 어떠할까?

생각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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