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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포터 Jan 17. 2021

너도 나도 세종대왕

근처에서 서로 이웃으로 살며 '정'이 들어 사촌지간만큼 가까운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부르는데 그 사이가 어쩔 때는 '가족'만큼 좋고 또 다른 경우에서라면 '가족'만큼 안 좋다. 앞서 정의한 대로 '정'이 든다는 우리말에는 미운 정도 있고 고운 정도 있기 때문에 항상 친하거나 항상 좋은 관계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몇 해전 아주 대단한 인기를 몰고 온 그리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방송되었는데 그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막장드라마의 대명사였던 '아내의 유혹'. 점 하나 찍고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민소희'로 돌아온 그 드라마의 계보를 이을 만한 막장 각본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에 주목했던 이유라면 나 역시 애들 키우는 학부모로서 교육에 대단한 열의(?)를 가진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식이 나보다는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이 드라마에 몰입했다.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복잡해지는 이야기와 자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끝까지 보기를 포기하고 중간에 채널을 돌렸지만 어찌 되었든 대단한 막장드라마(물론 칭찬이다)였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저렇게나 폐쇄된 엘리트 집단에 속하며 빗장을 걸어 잠근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지는 않겠지만 전국 팔도 어느 지역이든 교육에 관심 없는 동네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서 과거에 비한다면 조금은 덜 하겠지만 예전에 라면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동네나 전국구급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 숨어있어서 우리들과 그리고 부모님들의 이웃 사촌지간을 심히 흔들어(?) 놓는 일도 있었다.


내가 살던 그 동네에도 역시 장xx이라는 대단한 공부천재가 살고 계셨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그는 마치 동네의 자랑거리인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어쩔 때는 그 대단한 분위기에 마치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도 다행이라면 이런 위인이 나보다 두 살이 많아서 직접적으로 비교될 일은 없었다는 점과 나는 그가 1등 턱을 낼 때 가끔씩 초대받아 짜장면 한 그릇을 대접받던 '고운 정'이 든 이웃사촌이었다는 점이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이웃사촌'들이 그 집으로 몰려들어 그분의 흔적이 역력한 교과서부터 참고서 그리고 문제집까지 쟁탈전이 이뤄지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흡사 항구에서 이뤄지는 갓 잡아들인 생선 경매의 눈치싸움처럼 말이다. 그 당시 대단한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서너 권을 집어 든 어머니의 얼굴은 무척이나 들떠보였다. 하지만 '비기'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그 책은 내 기대나 상상과는 전혀 달랐는데 연필로 몇 번씩 중복해서 밑줄을 그은 탓(다독)에 너덜너덜해져 버렸고 심지어는 동그라미나 별표 탓에 글씨가 안 보이는 부분(정독)도 상당했다. 그리고 책의 사이사이에 적혀있는 필기(단권화)도 휘갈긴 글씨 탓에 낙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물론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책으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기 보다도 어쩌면 그가 공부했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따라 하길 기대하며 그렇게나 눈치싸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대단히 고맙기는 해도 그 당시의 나라면 '책을 왜 이리도 지저분하게 쓰는 것인지?' 하며 본래의 의도를 곡해(?)하곤 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듯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외우고 또 외우던 방법이나 책에 온갖 내용의 정보를 적어놓는 행위를 주변 사람은 의미를 몰라봐도 본인의 입장에서는 최적화된 방법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례에서 검증된 그 방법은 그 당시 많은 학생들이 추종하던 공부법이었는데 모범생의 100가지 기준 중에서 대략 50번째의 역량이 책을 얼마나 지저분하게 쓰는가도 포함되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방법을 따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성향이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책에 낙서나 필기를 썩 내켜하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라면 별도의 노트에 적는 그 방향이 나에게 조금 더 부합한다.


이렇듯 필기를 원체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해마다 그리고 학기마다 노트 몇 권에 이를 정도로 쓰고 또 쓰던 것이라면 단어장이었다. 우리말의 단어도 그랬고 영어 단어를 적기도 했다. 단어를 외우는 그 방법에도 물론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혹자는 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를 또는 먹기를(?) 즐긴다. 두꺼운 사전을 직접 찾아가면서 형광펜으로 칠해가며 외우다가 모든 단어에 색이 칠 해졌을 때 마치 득도하고 하산하는 영어 도사가 된다고 믿는 부류였는데 심지어 이들은 일본 전자회사 'CASIO'에서 저가의 전자사전을 보급하던 그 시기에도 여전히 종이로 된 사전의 사용을 고수했다. 사전을 실제로 찢어서 씹어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진짜로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은 영어 단어를 무척이나 많이 외우고 있을 정도였으니 실로 대단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우선순위라고 명명된 단어들을 엮은 책만 외우거나 별도의 노트에 적어둔 단어들 위주로만 암기했는데 이 방법이 완벽하진 않아도 부족함은 없었다. 아마도 그런 과거의 생활 패턴과 공부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중 하나라면 바로 단어장이 되겠다. 물론 이제는 필기라기보다는 그저 한번 써보는 필사에 지나지 않고 그 횟수가 이제는 일 년에 몇 번을 넘기질 못하는데 이번에 노트해본 단어는 '신조어'다.


새해가 되면 으레 전년에 생긴 신조어들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비단 "노땅"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움직임만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나 대상이 자연스레 언어에 녹아들기 때문에 새롭게 태어난 단어를 들여다보면 전년도를 단어 몇 개만으로 압축하고 돌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그 이유라면 표준어의 정의처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양 있는 우리말의 권위자가 인정하는 그 말만이 기록되고 사용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모두가 서로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시간차 없이 그리고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채로 다자간 대화가 이루어지는 탓에 '구어'가 쉽게 발전하고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언어를 따라 하며 배우듯 언어의 특성이란 얼마나 모방을 잘하느냐에 따라 습득하는 성과가 달려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우리의 온라인에서 재미난 언어는 서로의 손가락과 입을 통해 바로 사용되며 그중에서 널리 쓰이고 재미난 말이 살아남아 신조어로 기록되고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시기가 지금이다. 이렇게 몇 년을 꾸준히 사용하면 그 단어들 중 몇 개가 다시 추려져서 국어대사전에 오를 날도 있을 것이다. 세기가 바뀌던 때에 네트워크와 시티즌이 합쳐서 네티즌이라는 신조어가 이제는 두루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작년에도 역시나 많은 신조어가 탄생했는데 마치 그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우리들이 적어도 그 순간 마음만큼은 모두가 '세종대왕'이었다.


내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은 2020 신조어 1위라면 'x세권'이다. 부동산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였기에 이 단어가 이렇듯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기존에는 역세권 정도만 널리 쓰였으나 이제는 병원이 근처에 있다고 '병세권'이 되었는가 하면 숲 근처라 하여 '숲세권' 그리고 학교시설이 근처에 있다고 하여 '학세권' 심지어는 편한 복장(슬리퍼)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많은 시설이 갖추어진 주거지역이라 하여 '슬세권'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한두 명이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신조어로 등극한 것이다. 아마도 집을 사고팔려는 이들이 좋게 포장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 일 수도 있고 더 이상 평수를 넓혀 주거지를 옮겨갈 꿈이 사라진 자들의 울분으로 영원토록 자신의 주거지가 될 그 동네를 좋게 표현하기 위해 갖다 붙인 결과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부동산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 되었으니 신조어가 되기에도 충분하다.


그다음으로 내가 많이 듣고 말했던 단어는 "언택트", "비대면"이었다. 코로나가 대단한 기세로 창궐한 시대기도 했고 재택근무를 권장하긴 했어도 우리의 문화에서라면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었는데 중요한 회의를 이끌어야 하거나 또는 참석이 요구될 때 쉽사리 꺼낼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 "온라인"이나 "스카이프 회의" 또는 "화상회의"등의 좋은 단어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조금은 더 강한 어조로 "너와 만나고 싶지 않아요"를 공손하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런 직장인들의 염원으로 비대면이라는 단어가 더욱 사용되었는지 모르겠다.


"비대면으로 진행하시죠." 이 한마디면 '회의나 행사는 당연히 온라인으로 하고, 나아가 당분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만나지 맙시다'의 의미까지 내포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호전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그 외에도 영끌, 주린이, 부린이, 동학 개미, 어퍼 웨어, 코로나케이션이나 코로나 블루처럼 뉘앙스가 썩 좋게 들리진 않아도 많은 단어가 새롭게 탄생했다. 물론 몇 단어나 살아남아 대대손손 사용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새롭게 탄생한 저 단어들의 센스나 상황에 딱 들어맞게 사용될 때의 청량감은 역시 기가 막히다.


이제는 온 국민이 교육을 잘 받아 우리 모두가 '교양 있는 사람'이 되었고 새롭게 생겨난 저 단어들이 평민의 의지만으로도 두루 쓰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그 덕에 이렇게나 신조어가 자유롭게 생겨나는 요즘이라면 그야말로 성은이 망극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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