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헨리포터 Mar 16. 2021

부동산을 가진 냐옹이

한동안 수직으로 쌓아 올린 주거 '공간'을 두고 서로 다른 개념을 적용하며 마치 편에 따라 불륜과 로맨스로 상반되게 정의하는 꼴이 참 "자~알" 돌아간다 싶었는데 이제는 허허벌판을 누가 더 적절히(?) 그리고 은밀히(?) 보유했느냐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좌우를 떠나서 이제는 '청산'이라는 그 (거짓) 말만 들어도 지겹다. 같은 땅을 두고도 진짜 영농인들은 온통 돌밭인 탓에 쳐다보지 않던 그 땅이 오히려 타지인의 눈에 들었으니 그들의 '감'이야말로 기가 막힌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아마도 같은 공간을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혹은 힘과 정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공간이란 개념이 그렇다. 같은 길을 걸어도 생각이 다르고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어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바는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이렇듯 온 나라가 집과 땅으로 너무나 시끄러워 부동산에 대한 개념 자체가 꼴도 보기 싫어지던 그 와중에 비옥(?)하고 형질(?)이 우수한 땅이 내 눈에도 들어왔으니 그게 딱 일 년 전이다. 빛깔이 붉고 차진 흙이 바닥을 덮고 있으며 잘개 부스러져 입자가 고와 보이는 모래도 머지않은 곳에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창 무더운 여름에는 그 주변에 푸른 잎의 우거진 나무와 마치 울타리를 쳐놓은 듯 수풀이 덮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최적의 입지조건이었다. 고양이가 서식하기에 말이지.


처음에는 어미 고양이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그 길을 몇 번 다니다 보니 새끼 고양이 몇 마리가 눈에 더 들어왔고 어미는 쉴 새 없이 젖을 주며 새끼들을 키우는 탓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주변의 아주머니들이 앞다투어 사료를 가져다 놓고 비를 피할 공간을 마련해준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활력을 찾은 듯보였고, 마침내 그들도 이 생활에 적응했는지 온갖 귀여운 짓을 해댄다. 집에 가는 가까운 길을 두고 일부러 그 앞으로 돌아가며 그들 가족을 찾아 헤매고 애써 눈인사를 하며 밥을 챙겨준 일이 꼬박 일 년이 흘렀으니 세월 참 빠르다.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터를 잡은 고양이 가족 덕에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미소를 머금고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곤 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고맙다.


얼마 전 그 변화가 찾아왔으니 어미 고양이가 부지런히 새끼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온갖 교육을 시켜주는 모습이었다. 어미가 시범을 보이면 뒤이어 새끼들이 따라 하는 그 모습이란(어휴 귀여워). 어느 날 새끼들이 수준급으로 나무에 발을 긁고 똥을 싸고 하는 뒤처리나 나무를 올라타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던 즈음 보니 어미가 새끼들에게 그 공간을 물려주고 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공간은 고양이가 살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했으니 고양이의 세계에도 부동산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현지에서 소작하던 고양이든, 나랏일 하는 고양이든, 영농경력이 있는 고양이든 진짜로 은퇴 후에 귀농 계획을 가진 고양이든 구분하지 않고 누구라도 그 땅을 서식지로 선점하려 갖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험상궂은 고양이들이 몇 번의 공격을 해대며 그 공간을 빼앗으려 침입하는 모습도 목격했지만 다행히도 여러 번의 위기가 지나는 동안 별 탈없이 새끼들은 커나갔다. 야생의 서열 싸움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다짐했기에 새끼들에게 들이닥친 그 위기에도 그저 잘 도망가기를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만 했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한 어미에게 연거푸 고맙다고 말 정도였으니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어미 고양이로 빙의하여 새끼들을 함께 키웠나 보다.


요즘 들어 새끼들의 기력이 없고 축 쳐져 지내는 것 같다 싶더니 한 마리가 사라졌고 그나마 주변에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몸속 어디 하나가 좋지 않아서 얼마 전에 실려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삶이 영원 할리 없으며 특히 길고양이들이라면 수명이 이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별에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던 터라 참으로 속상한 며칠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던 중에 나머지 새끼마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코로나처럼 고양이 세상에서도 어떤 원인모를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았는지 차에 치었는지 그도 아니라면 무엇을 잘못 주워 먹었는지 이제 와서 알 길은 없지만 그들의 소식을 접하니 참으로 속이 상한다. 새끼가 잘 크고 그들을 잘 키우던 그 모습에서 그리고 그들이 짓궂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이 참 많이도 들었나 보다. 지금 와서의 바람이라면 내가 찾아가던 그 시간이 그들에게도 '소확행'으로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너희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는 없지만 지난 일 년의 기억만 으로도 내게는 충분하고 너희들을 추억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구나.


'그동안 고마웠어. 편하게 쉬어.'



작가의 이전글 부모 찬스와 엄친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