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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Jan 29. 2020

마르크-앙투앙 마티외

<꿈의 포로 아크파크>, <어느 박물관의 지하>, <3초>,  <르 데생

 만화는 글과 그림이 결합된 매체다. 즉 만화는 서사와 형식의 변증법을 통해 전개된다. 물론 서사와 형식의 결합에 정해진 답은 없다. 작가의 성향, 철학에 따라, 서사와 형식의 결합은 제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아트 슈피겔만의 사례를 보자. 그는 모더니즘 기획으로서 형식을 극대화한 <브레이크 다운스>를 작업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의 탐구로서 서사에 집중한 <쥐>를 발표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형식에 집중한 작품은 많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대중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형식적 작품의 비대중성은 비단 만화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술, 영화의 영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도전적인 작가다. 그는 1990년 <꿈의 포로 아크파크>를 발표한 이래 현재까지 만화 형식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스토리텔러 보다 건축가로 그리고 내레이터 보다 시공간의 관리자로.     


카프카적 공간

 앙투안 마티외 작품의 공간은 건축적 관점에서 설계된다. 예를 들어 <꿈의 포로 아크파크>의 공간은 윈저 맥케이의 마천루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열주와 지평선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건축이란 단지 구조물의 설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의 형상을 주조하며 더 나아가 공간 자체를 창조한다.

 가령 <르 데생> 대사 ‘그림 안에는 열 가지 사물들이 정확히 원을 이루며 배치되어, 그 사물들이 일정한 각도로 서로를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다’는 건축적 개념을 연상시킨다. 후속작 <3초> 또한 이러한 건축적 기획의 연장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3초>는 <르 데생>의 거울 이미지를 보다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거울상을 재현하기 위해 공간을 편집증적일 정도로 조작한다.




  앙투안 마티외의 건축적 세계는 이렇게 우리의 망막을 어지러이 자극한다. 하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외양은 어디까지나 표면적 진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어딘가 낯설고 불투명하다. 단순히 풀, 나무와 같은 자연적 풍경이 존재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사실 일련의 군집된 건물들은 고정된 무기체라기보다 무한 증식하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그것들이 되먹임하며 서로를 배가해 나갈 때, 추상적 공간이 야기하는 불안감은 점점 더 고조된다.

 본격적으로 <르 데생>의 대성당으로 들어서 보자. 시간은 임의적으로 흐르며 공간은 원래 위치에서 이탈하는 다시 말해 인간 인식을 넘어선 공간이다. 게다가 이 기이한 공간은 앞서 언급했듯 자신 스스로를 한없이 증식하며 도시 전체를 집어 삼킨다. 이와 유사하게 <어느 박물관의 지하>의 박물관 역시 반복과 증폭을 오가는 재귀적 공간이다. 박물관의 각 지하층은 각각의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지하의 심층은 몇 세대로 이어진 탐사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앙투안 마티외의 주인공들은 영원히 긴급한 일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형언할 수 없지만 근원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 주인공 ‘아크파크’는 자문한다. ‘내가 정말 깨어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꿈이 시작된 것일까?’ 이제 폐쇠된 세계는 예정대로 인간이 결코 저항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시공간은 왜곡되며 존재와 세계의 토대는 전복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잇따라 발생하는 외부 사건은 어떠한 틈도 주지 않은 채 주인공을 몰아붙인다. 그 결과 흑과 백으로 극단적 대비되는 이 공간은 카프카의 철자를 뒤집은 아크파크의 이름처럼 카프카적 세계로 변모한다.     



거울 이미지

 앙투앙 마티외는 데뷔 이래 현재까지 흥미로운 만화 형식을 실험한 작가다. 이때 ‘흥미로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티외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식어 새로운, 파격적인 대신 흥미로운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티외의 작업은 흥미롭지만 분명 새롭진 않다. 그의 형식 실험은 어디까지나 서양 회화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즉 표층적 차원에서는 건축적 요소가, 심층적 차원에서는 회화적 요소가 작품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앙투앙 마티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건축적 요소 외에도 회화적 요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서양 미술사의 메타로서 다시말해 르네상스 이후 현실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흐름과 근대 이후 자연의 모방을 거부하는 흐름을 교차시켜나가면 또 다른 해석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이래로 발전한 거울 이미지에 대해 먼저 논의해보자. 거울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회화

의 특성을 반영한다. 나르키소스 신화가 전하듯, 역사상 많은 이들은 회화를 거울상과 동일시했다. 더욱이 유화의 투명한 층은 유리의 광택 그 자체를 재현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회화에선 거울 이미지를 때때로 시각적 농담으로 유희했다. 우선 서양 회화에서 대표적 거울 이미지로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모호한 시각장치는 <꿈의 포로 아크파크>가 제기한 실제와 환영의 문제를 선취한다.

 다음으로 시간을 거슬러 15세기 얀 판 에이크의 작품을 보자. <아르놀피니의 약혼>에는 벽에 걸린 거울과 그 거울에 비친 화가 자신의 모습이 삽입돼 있다. 또한 <어떤 남자의 초상화>에서는 <3초>의 인상적인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거울 이미지가 발견할 수 있다. 판 에이크는 눈동자의 매끈하고 반짝이는 표면이 거울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착안해 남자의 눈동자에 방의 창문을 반영한다.      



 평면 이미지와 3차원 환영의 대위법

 이번에는 거울 이미지와 대비되는 자연의 환영을 거부하는 미술의 흐름이다. 그림은 3차원의 세계를 종이 같은 평평한 표면 위에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이미지가 아무리 사실적일 지라도 그것은 엄밀히 말해 평면 위해 덧칠한 자국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근대 미술가가 전착해온 주제 중 하나다. 그들은 다양한 주의를 내세웠지만 공통적으로 평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앙투앙 마티외의 작품도 형식적 관점에서 이러한 모더니즘 기획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티외의 작품이 이미 종료된 실험을 뒤늦게 행하는 진부한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분명 3차원 환영에 대한 거부는 형식실험의 주요 동력이긴 하지만,  <꿈의 포로 아크파크>의사례와 같이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 형식과 주제의 결합을 통해 특유의  만화 미학을 발전시킨다.


 그러면 <꿈의 포로 아크파크>의 주제에 관해 논의해 보자.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는  ‘존재론적 현기증’이다. 아크파크가 자신이 예정된 만화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세계에 대한 그의 믿음은 와해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와해된 세계를 어떻게 재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답을 3차원 환영을 거부하는 미술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질문을 다시 해보자. 아크파크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폭로할까?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은 2차원 평면에 3차원 깊이감을 재현하는 원근법을 제거하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미술가들이 엄격한 원근법을 거부했듯, <꿈의 포로 아크파크> 2,333차원에서는 원근법을 왜곡한다. 2점 투시의 소실점 하나를 소멸시켜 주인공을 포함한 인물들을 한스 홀바인 <대사들>의 왜상(anamorphosis) 이미지 다시 말해 부피감이 사라진 평면으로 변형시킨다.

 그 다음으로 페이지를 현실을 보는 창이 아닌 평평한 표면을 가진 오브제로 기능하는 방법이 있다. 마치 캔버스를 물질로서 다룬 재스퍼 존스 <깃발>처럼 말이다. 그래서 <꿈의 포로 아크파크>는 은유가 아닌 실제로 물질인 페이지를 도려낸다. 우리는 이 뚫린 칸을 통해 앞뒤 페이지의 그림을 보게 된다. 현재에서 미래를, 또 다시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것이다. 즉 연구청장 ‘이고르우프’ 말처럼, 이 뚫린 칸은 과거 혹은 미래를 읽는 창이다.  게다가 주인공을 강력하게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나선형 회오리 장면에선, 2차원 회화는 3차원 조각으로 전이된다. 환영을 유발시키는 프레이저 나선 같은 이 그림은 선을 따라 정교하게 절제돼 있는데, 잘려진 그림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면 그것은 회오리 모양의 종이 조각이 된다.      

                                     



 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살펴봤지만, <꿈의 포로 아크파크>에 가장 큰 영향일 미친 작가는  당연 르네 마르그리트일 것이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을 보자. 이 그림은 정확한 자연주의 묘사로 재현된 파이프 이미지를 제시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이미지를 부인한다. 이미지가 아무리 현실의 환상을 불러일으킬지라도 그것은 단지 평평한 표면 위의 흔적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꿈의 포로 아크프크> 역시 주인공 아크파크에게는 그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존재이며, 독자에게는 이미지가 가시적 환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마그리트의 영향력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 1>,<유클리드의 산책>에서 그림 안의 그림, <확대경>, <지는 저녁>에서는 실내/실외, 실제/이미지의 관계는, 앙투앙 마티외 전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진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앙투앙 마티외의 작품은 미술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차용하지 않는다. 마그리트가 이질적인 존재들을 결합시켰듯, 앙투앙 마티외도 미술과 만화를 결합시킨다. 그림 속 그림 달리 말해 미자나빔은 <어느 박물관의 지하>의 화중화에서는 무한으로 확장되고, <르 데생>의 리플렉션에서는 무한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의 포로 아크프크>는 연쇄된 칸의 배열로 시공간의 미로와 같은 카프카적 세계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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