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혁진 Jan 09. 2020

존 맥노트, <KINGDOM>


 

  <Kingdom>은 존 맥노트의 최근작이다. 이 문장에서 존 맥노트라는 이름을 지워낸다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전작 <가을>을 접한 독자라면 즉시 알아차릴 만큼 작품의 외양이 존 맥노트적이기 때문이다. 정제된 색상, 평면의 판화 형식, 반복적인 칸의 그리드는 변함없이 우리 내면으로 침착해 들어간다.

  하지만 <Kingdom>의 페이지를 계속해 넘기다보면 어딘가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이전과 유사하면도 동시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불현듯 우리의 시계에 부상한다. 어쩌면 커다란 판형이 주는 시각적 자극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지배적인 파란색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낯선 이질적 세부를 따라 존 맥노트의 왕국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KINGDOM>의 페이지를 넘겨보자. 몇 장을 넘기지 않고도 금세 작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첫 장면은 커다란 칸을 통해 부감장면을 펼쳐내며, 우리의 시선을 아득히 먼 곳으로 인도한다. 그것은 마치 넓은 지역을 조망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 보는 ‘피테르 브뢰헬’의 작품처럼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칸의 배열이 존 맥노트 특유의 그리드 형태로 되돌아가지만, 그럼에도 촘촘히 나열된 칸 안에는 이질적 세부가 틈입해 있다. 전작이 정면의 평면화면이라면 <KINGDOM>은 측면의 심도화면을 가진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점의 변화가 아니다. 시점을 옆으로 이동했을 때 그리고 공간을 보다 깊이 안쪽으로 밀어낼 때, 보다 많은 면들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운동은 종결점에 수렴하듯 공간을 거듭해 분할한다. 그 결과 칸의 공간은 수축되고, 그 내부는 과잉될 정도로 분절된 패턴의 일부가 된다.

 

 구체적으로 바닷가 장면을 보자.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된 파도는 우리의 망막을 강렬히 자극한다. 그런데 그 풍경은 낭만적인 휴양지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우리를 엄습해 오는 이 낯선 느낌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KINGDOM>의 가시적 표층엔 풍부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영원 없는 눈을 가진 인형부터 박물관 유물의 기괴한 형상 그리고 삽입되는 영화와 게임 장면까지. 물론 존 맥노트의 작품이 그로테스크하다는 것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자. 작가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절벽과 해변에  양의 사체와 괴물의 그림을 기어코 배치한다.  


  


여행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KINGDOM>은 곳곳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삽입돼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KINGDOM>이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일상의 풍경을 그려내는 존 맥노트 작품과 기이하며 괴상한 것을 지칭하는 그로테스크 개념은 분명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그로테스크의 개념을 살펴보자. 이 글에서 그로테스크를 언급한 것은  단순히 섬뜩하며 불균형하게 과장된 외양을 지칭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보다 심원한 감정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써, 밑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유발하는 강렬한 대비, 인형과 악마적이고 기계적인 존재들의 으스스한 어우러짐, 문득문득 덮쳐오는 생경하게 변해 가는 세계와 대면할 때의 오싹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독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전작 <가을>로 돌아가 보자. <가을>은 작은 마을 ‘Dockwood’의 일상을 관조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일상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은 <가을>이 그려낸 일상은 단순히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이 전부 다가 아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미처 인식도 못한 채 시간의 흐름 저 편 으로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가을>은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쩌면  일상에서 놓쳤을지 모를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다. 형용모순 같지만 특별한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가령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너무나도 익숙하던 일상의 경험이 때때로 낯설어질 때가 있다. 신경도 쓰지 않던 가로등 불이 유난히 따뜻하게 보이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순간이 한 없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를 말이다. 바로 이러한 생경한 세계로의 진입이 <가을>과 <KINGDOM>을 이어준다. 두 작품 모두 Dockwood와 Kingdom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하며 무엇보다 이 공간의 경이로운 순간들을 포착한다.


 


 물론 소도시 Dockwood와 휴양지 Kingdom에서의 경험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Kingdom에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절벽, 바닷가, 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Kingdom은 남매의 어머니가 자신이 어렸을 때 가장 사랑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머니가 어릴 때 머물렀던 이모의 집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인 기묘한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이유로 <KINGDOM>은 일상의 특별한 세계에서 더 나아가 환상의 세계로 변모한다. 설사 그것이 그로테스크까지 아닐지라도, 대신 익숙한 형태를 생경하게 만드는 어느 지점까지 나아간다. <가을>에서 새로운 은하계 소식을 담은 신문 장면과 로켓이 우주로 출발하는 게임 장면이 각각 밤하늘 풍경과 겹쳐질 때의 그 경이감을, <KINGDOM>에선 일상에서 대비되는 여행을 통해 보다 환상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최종 도착지는 결국 일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KINGDOM>의 시작과 끝을 고속도로 장면으로 끝 맺으며 일상으로 복귀하는 건, 작품의 주제론적 체계에서 더할 나위 없는 시적인 마무리처럼 보인다.




1)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작가의 이전글 순수 웹툰 형상으로서의 초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