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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재 Apr 27. 2020

코로나 19 현장의 어려움과 고마움을 느끼다

코로나 19 범정부 특별대책지원단에 근무하며

‘대구시 코로나 19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파견’


2020년 2월 말 대구시에서는 하루 수백 명씩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고, 환자를 수용할 병원이 부족해 집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한때는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라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국무총리께서 직접 대구에 내려가 대책을 세우게 되었고,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에 상주하며 근무할 총리실 직원이 필요했다. 나는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코로나 19 업무에 지원을 나간 상태였고, 고유업무가 있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파견을 가기 용이한 위치였다.


나는 자원하여 대구에 가는 의료진들만큼 용감한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구에 가는 것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대구로 가는 것이 내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였다.


처음 내려갔을 때 대구의 모습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한 두대씩 다니는 차들이 도시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렸다.


그렇게  두 달가량의 대구생활은 시작되었다. 업무의 성격상 한 명이라도 코로나 19에 노출되면 지원단 전체가 폐쇄되는 상황이었기에 대구시청에 마련된 사무실과 집 이외에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집과 사무실 이동도 자가용으로 했다. 그 당시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을 했으니 다른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실제 3월 한 달 동안 초과근무는 177시간이었다).


○ 오전 6시∼오전 10시


아침 6시에 기상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일 대구시 확진자 수를 체크하는 것이다.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 질병관리본부에서 0시 기준 전국 확진자 수 통계를 전 부처에 메일로 보낸다. 대구시청에서 확진자 발생 경위(요양병원, 신천지 교인, 확진자 가족 등 구체적인 사유)를 분류하여 보내준 메일을 함께 확인한 후, 확진자 발생 사유를 분석하여 보고 한다.


보고 후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보통 출근시간이 7시 20분 정도였는데 차가 막히지 않아 편하게 운전하였다. 출근 후 가장 먼저 8시 30분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중앙대책안전대책본부 회의(이하 중대본 회의)를 준비한다. 안건과 언론에 공개되는 국무총리 말씀자료를 회의장에 세팅하고 영상회의가 잘 준비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매일 개최되는 중대본 회의는 전 부처 장관, 각 시장 및 시도지사가 참석대상이다. 마스크 수급, 학교 개학일정 등 코로나 19 관련 중요한 정책은 이 회의에서 논의하여 결정된다. 나는 중대본 회의에 참석하여 대구시와 관련된 정책사항을 확인해둔다.


○ 오전 10시∼낮 12시


일반적으로 중대본 회의가 끝나면 10시 정도다. 격일로 개최되는 코로나 대응 실무 TF를 준비한다. 이 회의는 대구시 행정부시장, 대구시 의사회,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에 파견 나온 각 부처 직원들이 모여 대구시 의료진들의 어려움을 듣는 자리다. 의료진들에게 보호구와 치료장비가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병상은 부족하지 않은지, 정부차원에서 정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를 주로 확인하고, 향후 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였다. 나는 실무 TF 일정을 잡고 회의 후속조치를 관리하는 업무를 전담하다 보니 주로 오전에는 지난번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고 안건을 작성하였다.



○ 낮 12시∼오후 5시


대구시에 입원하지 못한 환자가 가장 많았을 때는 2,500명이 넘었다.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이 구성된 초기 가장 중요한 일은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매일 국무총리 주재로 오후 5시에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 현황 회의를 하였기에 그 시간까지 오늘 하루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다. 지원단 전체가 오후 5시까지 실적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 오후 5시∼오후 8시


국무총리 주재 회의가 끝나면 격일로 실무 TF를 개최하였다. 나는 이 회의의 안건을 작성하고 논의 내용을 정리하여야 하였기에 매번 참석하여 결과를 정리했다. 실무 TF는 의사들이 참석하여 현장 상황을 말하는 자리였기에 의료진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기 좋은 자리였다. 의료진들은 질병관리본부에서 마련한 지침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부분을 우리에게 전달했고, 우리는 그 부분을 검토하여 중대본과 총리실에 보고하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대응지침이 수정되었다.


○ 오후 8시∼밤 11시


밤에는 오늘 발생한 신규 확진자가 얼마 정도 되는지 확인을 하였다. 주로 집단감염이 없는지를 확인하였는데, 집단감염이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도 병상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로 저녁 7∼8시 기준 보건소에서 통보한 오늘 확진자 수를 점검하였는데, 숫자가 나오기 직전은 항상 긴장된 순간이었다.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확진자 수가 적은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비교적 빠른 시각인 밤 10시쯤 퇴근하지만, 집단감염이 발생된 날이면 지원단에 파견 나온 직원들은 새벽까지 대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범정부대책지원단에는 총리실,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경찰청,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서 100여 명가량의 직원들이 파견을 나왔다. 파견 나온 직원들에게 일일이 묻지는 않았지만, 원해서 온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① 감염자가 많이 발생하는 곳에 ② 가족과 떨어져 ③ 휴일도 없이 일하는 곳을 원해서 올리는 없다.



그럼에도 가장 신기했던 것은 사무실에서 고성이 오간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매일 수백 명의 환자가 생기는 상황에서 며칠 안에 2,000여 명이 넘는 환자를 수용할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환자를 돌볼 의료인력, 집에서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할 앰뷸런스도 부족했다. 체계가 잡히지 않던 업무라 실수도 많았다. 업무분장이 잘못되어 놓치는 일도 생겼고 통계가 맞지 않아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다.


마음만큼 진행이 빠를 수는 없는 상황에서도 “왜 이렇게 진행이 느려?!”, “똑바로 못해?”와 같은 누군가를 질책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하지 못할 때는 “더 찾아보자”는 말 이외에 어느 누구도 첨언하지 않았고, 중환자실이 부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수용해봐야죠.”


마음만큼 빠르게 일이 진행되지는 않을 때는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서로를 생각한 덕분에 업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수많은 격려물품이 왔다. 도시락, 피로회복제, 비타민, 손소독제, 계란, 커피, 라면 등 품목도 다양했고 시민단체, 종교단체, 지역주민, 자영업자, 대학교 총학생회 등 보내시는 분들도 다양했다.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격려물품이 쏟아졌다.


도시락이 오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고, 피로회복제도 내가 사 먹을 수 있지만 누군가가 신경 써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대구지역은 그 당시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거의 접은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음에도 도시락을 만들어 보내주었다는 사실에 더 큰 고마움을 느꼈다.


기부든, 격려물품이든 보내는 사람은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누가 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그저 잘 받았으리라,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나도 여러 곳에 기부를 하면서 그저 좋은 곳에 갔으리라 믿고 살았다. 처음으로 내가 격려물품을 직접 받아보면서 느낀 점은 격려물품은 실제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있고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업무 중 하나는 생활치료센터의 전반적인 입소 현황을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덕분에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 중인 환자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환자들과 직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잘 버텨냈다. 생활치료센터의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정말 많은 감사편지가 오고 갔다는 사실이었다. 아래는 환자들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매일매일 상황실에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는 분들, 맛있는 식사와 간식과 물품을 챙겨주시는 분들, 폐기물 정리해주시는 분들, 힘들지는 않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자상하게 손 내밀어주시는 의료진분들과 상담사 선생님들, 엑스레이 건사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손길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엄청난 민폐를 끼쳐서 정말 속상하고 죄인 같았습니다. 하루빨리 건강 회복해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소중한 가족과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임이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네요. 한분 한분 모두들 수고 많으셨서요.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근무하는 직원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대구시도 안정을 찾게 되며 범정부지원단도 해체되었지만, 중앙정부에서 문서만 작성하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을 누구의 잘못으로도 돌리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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