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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산 Feb 13. 2020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지

<색, 계>


(♬ Alexandre Desplat - The Angel)

간만에 <색, 계>를 봤다. <브로크백마운틴>을 감명 깊게 봤던 중학교 때 이 영화도 봤다. 이야기에도 배경음악에도 푹 빠져서 한동안 <색, 계> OST만 듣기도 했다. 그때 운영하던 블로그엔 OST와 영화 스틸 사진을 엄청 올려뒀는데, 훗날 블로그가 <색, 계> 사진으로만 검색창에 노출돼서 당혹스러운 때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한 번, 중국어 공부를 위해서 한 번 봤었으니 네 번 봤다.


이번에 눈에 띄었던 장면은, 탕웨이가 연기한 왕치아즈가 연기한 맥(麥)이, 양조위가 연기한 이(易)와 섹스를 하다 베개로 그의 눈을 가리는 장면이었다. 易는 순간순간의 극한 긴장을 가학으로 표출하면서도 스스로 고통스러워 보였고, 눈이 가려지면서는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처럼 더 몸부림쳤다. 언제든 암살될 수 있으니까 어두운 극장을 피하고 경호원도 믿지 못하고, 麥이 자주 간다는 가게에서 옷을 선물해 주면서도 가게 주인에게 麥이 정말로 단골 손님이 맞는지 확인하는 인생을 사니까.


麥은 易를 암살해야 하므로 믿음을 얻어야 했고, 믿음을 얻었단 걸 알게 한 것이 베개로 눈을 가리는 일이었다. 麥이 易의 눈을 가린 때는, 易가 麥의 눈길을 따라가다가 麥이 총을 보고 있단 걸 눈치챘을 때였다. 나를 죽일 수 있단 걸 알게 됐을 때, 麥은 공포를 허락해 주겠느냐고 물었고易는 몸부림치면서도 긍정했다.


麥은 易와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서 웃음을 지었는데, 암살 대상과 가까워지기 시작해서인지 사랑의 시작을 기뻐해서인지 모호했다. 몸부림치던 易는 베개를 치웠고, 麥은 슬퍼하기 시작했다. 이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됐지만 총을 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공포는 있고 이겨낼 방법은 하나겠지. 易의 뜻이 '쉬운'이란 건 의미심장하다. 꽁꽁 싸매고 있지만 결국에는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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