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작가 Apr 30. 2022

불금의 최강 빌런, 술

불금을 맥주 없이 보내기

그동안 술을 멀리하려는 노력을 해온 덕에 평일에 술을 먹는 습관이 없어졌다. 저녁에는 좋아하는 다른 취미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도 자리 잡았다. 저녁 시간은 평온을 되찾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상쾌하고 활력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렇게 월~목을 보내고 나면 마지막 남은 금요일 퇴근길에 항상 제압하기 힘든 '불금의 빌런'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일주일 동안 너무 애썼어, 금요일 저녁에는 술 마셔도 돼. 그래야 다음 주를 버티지. 너무 욕구를 억압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사실 술로 긴장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는 수시로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 무시하고 대답하지 않으니 이제는 전략을 바꿔 가장 취약한 금요일 저녁에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온다


'불금에는 나에게 보상을 줘도 돼'라는 속삭임이 너무 합당해 보였다. '일주일간 피로와 긴장감, 스트레스를 불금에 딱 한번 맥주로 해소하는 것이 왜 나쁜가? 그렇게 해야 평일에 더 충실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자 기뻤다. 퇴근길에 아들이 시켜놓은 '치킨'과 함께 마실 맥주를 손에 드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평일에 찾아오는 맥주의 부름을 미루고 미뤄서 맞이하는 금요일은 해방감이 들었다. 발목에 채워놓은 족쇄를 풀고 불금에 맥주 한잔을 마시며 보내는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술은 언제나 그랬듯이 마시기 시작하면 조금씩 양이 늘고, 음식을 더 많이 먹게 하고, 잠을 방해한다. 결국 다음 날의 상쾌함과 의욕이 불금의 빌런에게 빼앗긴다. 황금 같은 주말을 불금의 빌런이 빼앗아간다. 


한동안은 '공존'을 시도해봤다. 술의 양을 줄여보기도 하고, 술을 먹더라도 평소와 같이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해 봤다. 어떻게 해서든 '불금의 빌런'과 '주말의 상쾌함'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일 저녁 술을 마시고 자는데 평소에 안 좋았던 어깨가 훨씬 더 아프기 시작했다. 약해진 잇몸도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쌓인 피로와 함께 온몸이 아팠다


술이 염증을 활성화하고 몸을 피곤하게 해서 면역이 약해진 것이었다. 그 틈을 타 내 몸의 약한 부위들이 강렬한 통증으로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돼'


'더 이상 안돼'에 수차례 실패한 나는 단지 '불금에 술을 안 마실 거야'라는 결심만으로 이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더 깊은 내면에 있는 게 분명했다. 무엇이 나를 금요일 저녁 족쇄를 풀고 술에서 해방감을 찾게 하는 걸까?


그러던 중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알렉스 몽구)'라는 책을 읽다가 스스로 부여하는 '강박'에 대한 설명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나에게 부여한 '숙제', '목표', '변화'의 과제가 한편으로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호기심, 흥미, 즐거움으로 이끌려 가야 하는 하루가 '해야 하는 목록'을 달성해야 하는 '강박'으로 채워진 게 아닐까? 그런 압박감이 평일에 채찍을 가하고, 금요일에는 특별한 보상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게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나는 평일에 세세하게 짜 놓은 '할 일 목록'을 없애보았다. 6시간에 못 미쳤던 수면시간도 '7시간'으로 늘렸다. '압박감'을 갖지 않고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자유를 줬다. 아침에 운동이 하기 싫으면 피아노를 쳤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컴퓨터를 끄고 책을 들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채찍'을 내려놓았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 끌리는 것을 허용했다. 쉬고 싶을 때는 멈춰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피곤하면 더 자도 된다고 토닥여 줬다. 


그렇게 호기심, 흥미, 즐거움에 나를 맡기고 평일의 압박감을 줄여보니, 금요일 저녁이 평소와 같은 날처럼 다가왔다. 퇴근길에 치킨을 시키고 아내와 마트에 갔지만 이번에는 맥주를 사지 않았다. 


그러고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얼마 만에 느껴보는 토요일의 상쾌함인지 모르겠다. 간단히 집안일을 마치고 아이들 아침을 준비했다. 커피를 마시며 책상에 앉으니 어제 '불금의 빌런'을 무찌른 모험담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매주 금요일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오늘의 승리 전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면 똑똑해진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