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작가 May 25. 2022

아프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것들

건강은 '공기'와도 같다. 건강에 문제가 없을 때는 소중한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건강할 때는 해로운 음식도 곧잘 먹고, 운동을 게을리하고, 체중 유지에 소홀해진다. 


나도 건강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100세를 넘어 건강하게 장수하신 할머니를 보며 막연히 나도 건강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껏 건강검진 결과도 경증의 위염을 빼고는 특이사항이 없었다. 연말 정산할 때 보면 한 해에 병원을 한 두 번 가는 정도로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어깨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깨나 등 근육이 뭉치기도 하고 곧잘 풀어지기도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언젠가 좋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은 심해졌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며 없어지질 않았다. 혹시 오십견이 벌써 왔나 불안감이 들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회전근개에 문제가 생기면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했다. 여러 영상에서 꾸준히 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길래 아침저녁으로 통증을 참고 운동해보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팔을 들기 힘들 정도로 불편해졌다. 특정 각도로 움직일 때만 느껴졌던 통증이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 잘 때도 어깨가 아파서 돌아눕기 힘들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뼈 위쪽에 하얀 부분 석회가 있는 거 보이시죠? 석회로 인해서 염증이 심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네? 석회요?"


"보통 중년 여성분들에게 많이 생기는데, 그렇게 심해 보이 지는 않아요. 아픈데 운동하시면 안 되고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치료해야 해요"


'석회'라는 말을 처음 들을 때 귀를 의심했다. '뭉친 근육이 왜 이렇게 안 풀리나?' 생각했는데 '석회'라니, 이렇게 이른 나이에도 석회가 생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딱, 딱, 딱, 딱"

체외 충격파가 어깨를 관통
해서 통증 부위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뼛속 깊이 아픈 느낌과 시원한 느낌이 교차했다. 


"강도를 올리겠습니다. 못 참을 때까지 올릴 거예요."


의사는 최대치인 20까지 강도를 올려도 아프지 않아야 염증이 나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12 강도부터 참기가 힘들어 더 올리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처음 치료에서 그 정도면 염증이 심하지 않은 거예요. 심한 분들은 처음엔 7~8까지도 못 가요.


심하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자기장 치료, 전기 치료, 약물 치료 등이 이어졌다. 처음 본 물리치료 장비들이 어깨 속 통증 부위를 자극했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물리치료실에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한 시간 정도 진료와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그동안 위축성 위염으로 소화 장애를 겪고 있는 아내에게 '평소 약했던 소화기관에서 노화가 좀 일찍 찾아온 것'이라고 위로했던 기억이 났다. 


무릎이 아프다고 병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통증을 호소했던 어머니, 위암으로 위 전체를 절제하고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의 이겨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심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노화'라는 단어를 내가 직접 맞닥뜨리고 보니,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을 겪고 보니 '나이를 먹고 아픈 것'은 당연한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나에게 시간은 마치 무한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꿈꾸는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날이 어딘가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노화'라는 신체적 변화 앞에 서보니 이제야 '삶의 한계'라는 끝이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오늘이 남은 날들 중 가장 건강한 날일 것 같은 불안감, 이대로 삶이 끝날 것 같은 공허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삶의 한계' 앞에서 소중한 것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기다리고, 미룰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걸치고 있었던 거추장스러운 욕심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하고 건강한 시간이제는 진정으로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루를 열흘같이 1년을 10년 같이 소중히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정체성을 향한 작은 증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