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진했던 베를린 여름
비가 시원하게 내리더니 짧고도 진했던 베를린 여름도 이제 마지막 장 인가보다. 베를린 생활 5년 차가 되며 터득한 팁 중 하나는 여름을 가장 최고로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머지 어둡고 추운 베를린 날씨를 견뎌낼 수 있다. 베를린 여름은 프랑스의 니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혹은 태국의 치앙마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좋다. 지인이 베를린을 방문한다고 하면 꼭 여름에 오기를 추천한다. 포르투갈, 스페인처럼 앞으로 겨울에 살고 싶은 나라들이 있지만, 여름에는 꼭 베를린에 계속 살고 싶다.
36도가 넘는 더운 날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드물고, 에어컨 없이도 견딜 만 하다.
여름이 올 것 같으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앱보다 날씨 앱을 더 자주 체크한다. 호수에서 수영할 일정을 미리 계획하기 위해서다. 운 좋으면 일주일 내내 매일 한두 시간씩 수영을 하기도 한다. 7, 8월의 절반은 호수에 갔다. 내가 주로 가는 호수는 베를린 남동쪽 숲속에 있는 인적이 드문 호수인데, 올해는 여름 휴가를 베를린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서 작년보다 사람들이 꾀 많았다.
호수에서 수영하면 하늘을 볼 수 있어 좋다. 물위에 누워 있으면 구름을 감상하며 부러울 것이 하나 없다. 먹지는 않지만 조개를 줍기 놀이도 하고, 물안경을 끼고 물고기떼를 구경하기도 한다. 물장구도 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놀 수 있다. 초여름에는 오리 가족이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등장하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교통비도 안들고, 호수라서 입장료도 없다.
올해는 나무에 걸 수있는 해먹을 구입했다. 이 해먹 하나로 여름 호수 피크닉이 업그레이드 됬다.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잡고, 해먹에 누워 책을 보다가 아이스커피 한잔 마시고, 출출하면 미리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소화 조금 시키면서 다시 책 보면서 졸다가 수영하고 햇빛 쬐면서 광합성 한 후 자전거타고 집에오면 저녁시간이다. 항상 여름이 끝나면 더 부지런하게 수영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 했는데, 이번에는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베를린의 짧은 여름을 알차게 보냈다.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라는 도시에 둘러싸인 계란 노른자와 같은 도시이다. 따라서 바다가 없다. 인천에서 자란 나는 마음만 먹으면 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근처에 살아서 아직 베를린을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