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관객, 첫 번째 팬, 첫 번째 독자는 바로 나
뒤늦게 유튜브에서 배우 공유 씨가 출연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Talk'을 보게 되었다. 공유 씨의 겸손과 가식 없는 호탕한 웃음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밀치고 들어온 말은 의외로 유희열 씨의 것이었다. 그는 공유 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배우 분들은 거울 속 자기 얼굴 볼 때 무슨 생각 하세요?
저는 제가 만든 음악 들으면서 맨날 울거든요.
나의 첫 번째 리액션은 그곳에 와계시던 방청객분들처럼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자 갑자기 심장이 두 번째 리액션을 해왔다. 과즙 가득한 사과처럼 마음이 새콤달콤해지는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기 때문이다.
자기가 만든 음악을 들으면서 맨날 울다니... 단순히 생각하면 좀 우습기도 하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나르시스처럼 자기 스스로에게 도취됐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난 척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소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숨겨진 보석 하나를 발견해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랄까... 예술가로서 지켜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영감의 원천 같은 것 말이다.
본인이 만든 음악이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과연 그 어떤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본인이 부르는 노래가 듣기 거슬린다면 어떤 누가 그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며, 본인이 그린 그림을 자기 집 거실에 걸고 싶지 않다면 어떤 누가 그 그림을 감상하고 싶어 할까? 본인이 연기한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별 장면이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관객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공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나의 글을 생각했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내가 쓴 글이 나에게 용기를 주지 못하며,
내가 쓴 글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글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가 먼저 읽고 싶은 글, 내가 먼저 줄 치고 싶은 문장, 그리고 내가 먼저 사고 싶고, 내가 먼저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책장이 닳고 닳도록 읽고 싶어 지는 그런 책을 쓰겠다고.
2차 세계대전시 전장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슴에 품은 채 죽어갔다는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군가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가슴에 품고 싶어 하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고 말이다.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끝끝내 간직하고 지켜나가고 싶은 최고의 낭만이다.
내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을 때, 왜 그토록 유희열 씨가 만든 노래들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이전부터 그분의 음악을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더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이 흐를 때마다, 그 노래의 가장 첫 순간에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그가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첫 번째 관객, 우리들의 첫 번째 팬, 우리들의 첫 번째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러니 우리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덕질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 파리제라늄_ 최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