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나온 여자의 피곤함
동덕여대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팟캐스트 <비혼세>의 최신 에피소드를 들었다.
어쩜 저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하는지 늘 신기방기한 짐송님과
비혼라이프의 선봉장 비혼세님의 유쾌하고 알맹이 있는 수다.
이 주제에 대해 수많은 공격과 비난이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시의적절하고 빠르게 공개적으로 사적인 경험과 생각을 나누어주어서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많이 공유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내 생각도 적어본다.
이대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하고 교수까지 하게 된 “여대 17년” 순혈 여대인인 짐송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도 여고와 여대를 나와 여초 조직에서 주로 사회생활을 했다.
여자들이 모든 것을 하고, 조직의 리더도 여자인 상태가 자연스럽다.
그래서일까 남자가 많은 조직에 들어가면 순간 내가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더 잘 감각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다수의 남성들보다 유능하고 좋은 대우를 받는 위치일 때
남자 직원들이 무리 지어 나를 희화화하며 깎아내리려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니들 따위 1도 신경 쓰지 않겠다며 또각또각 당당하게 그 앞을 지나쳤지만
마음 속 깊이 분노와 모멸감을 느꼈던 순간이 여러 번 기억에 아로새겨져 있다.
하필이면 타짜의 정마담이 이대 나온 여자인 바람에
나의 학력은 종종 우스갯소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이제 많이 깎이고 둥글어진 중년 여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성대결의 전선에는 여전히 뜨거운 피바람이 불고 있고 그 최전방에는 늘 이대가 있다.
똑똑하고 젊은 여자들이 모여 공부하는 대학.
치마저고리에 고무신 신고 옆구리에 책보를 끼고 있을 것만 같은 표현인데
인공지능이랑 모든 업무를 함께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불평등과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자의 조직과 여자들의 공간, 여학생들만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
남자들 전체에게 여자들이 체감하는 문제를 완전히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남성들이 가진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주 노동자의 인권 문제나 아프리카와 전쟁지역의 인권문제에 대해 가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당장 내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에 비하자면 그다지 절박하게 와닿지는 않는 정도의 감각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남자들에게 무엇을 공감하기를 바라거나 설득하려는 시도보다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주 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넘쳐서 이것이 일부의, 그러니까 정확히는 여대나 이대나 드센 여자나 피해망상인 여자의 경험이나 필요가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불평등과 위협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경험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튀어나온 못이 될 용기. 욕먹을 용기. 부끄러울 용기. 썅년이 될 용기.
여대 나온 많은 여성들이 여태까지 맨 앞에서 줘 터지면서 돌맞고 피 철철 흘렸으면 이제는 좀 같이 이야기하면 안 될까.
남녀공학에서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불평등과 여성혐오와 성역할에 대한 잘못된 경험에 대해 좀 더 많이 이야기해 주면 안 될까.
너무 피곤하다 여대만 언제까지 칼춤을 추게 할 거야. 언니들 동생들 어디 있어?
안 되겠어? 못 나서겠어?
그래, 그러니까 아직도 여대가 필요한 거다.
여대에는 무조건 나서서 싸우는 목소리 큰 여자들이 길러지는 조직이라서 말이다.
남자들은 아무 때나 싸우는데 여자들은 별로 없잖아. 교육으로 싸움을 가르쳐서 내보내는 곳이 여대다.
참지 말 것. 나설 것. 목소리를 낼 것.
근데 아우 피곤해. 니들도 좀 같이 싸워. 서브 좀 그만하고 메인으로 좀 나서.
어디 없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