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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CO Jul 19. 2024

죽이고 싶다는 생각

폭력은 존재를 파괴한다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자율학습 마지막 시간, 선생님은 조용히 자습을 하라는 지시를 하고 교실을 떠났다. 교실에 앉은 50명이 넘는 여자 아이들은 얌전히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옆자리 짝과 소곤거렸다. 나는 조용히 친구들을 꼬셨다. 


"우리 집 가서 겜보이 할래?"


그렇게 생애 첫 땡땡이를 실행에 옮긴 삼총사는 학교에서 5분 거리의 우리 집으로 달려갔다.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두근거림, 성공했다는 쾌감, 우리는 게임팩을 이것저것 바꿔가면서 신나게 게임을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가만히 수화기를 들고 있던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언니, 학교에서 빨리 오래."

"뭐?"

나는 놀라서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너 선생님이 빨리 오래."


같은 반 아이가 선생님을 대신해 전화를 건 것이다. 큰일 났다. 걸렸다. 어떻게 아셨지. 진짜 큰일이다. 


선생님은 우리를 빈 도서실로 불렀다. 따로따로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내가 먼저 친구들한테 놀자고 했고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고 말이다. 두 친구들은 먼저 교실로 돌아갔다. 나와 선생님이 도서실에 남았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 나에게 말했다. 


"무릎 꿇어."


하복 치마를 입은 채 도서실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왁스로 닦은 나무의 딱딱하고 미끄덩한 느낌이 맨 무릎에 느껴졌다.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앉아 냉담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냐며 한참을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들었다. 내가 잘못한 일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너 1학년 때는 공부 잘했잖아. 근데 왜 2학년 올라와서 성적이 이렇게 떨어져? 왜 그러는 거야?"

"......"

"말을 해봐 말을. 이유가 뭐니?"

"......"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2학년이 되어서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 친구도 생겼고, 방송반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느라 공부를 안 했다고?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보다는 잘 놀고 인기 많은 쿨한 인싸가 되고 싶다고? 나의 진심을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석고대죄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말을 해보라니까."

"........."

"말 안 해? 너 나 무시해?"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어?"

"아니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무시하다뇨."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눈 감아"


나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눈앞에 불꽃이 번쩍 튀었다. 뺨을 때린 것이다. 몸이 휘청 옆으로 쓰러졌다. 당황했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바르게 앉았다. 그러자 뒤이어 반대편 뺨을 향해 손이 날아왔다. 번쩍. 또 한 번.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쓰러졌다. 일어나 앉은 나를 향해 발이 날아왔다. 선생님은 내 가슴을 발로 찼고 나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 순간의 굴욕감은 나의 존재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폭력. 그전까지 집에서고 학교에서고 그토록 막무가내로 감정이 실린 폭력은 겪어보지 못했다. 숙제를 안 해서, 준비물을 잊어서, 뭔가 잘못을 해서 손바닥을 맞거나 손을 들고 있어 본 적은 있지만 뺨을 때린 것도 모자라 발길질이라니. 지금 같아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다만 내가 처음 겪어본 것뿐이었다. 


선생님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무언가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선생님이기 때문에 나를 때릴 수 있고 나는 그저 맞아야 한다는 것이 미칠 듯이 화가 났다. 교실로 돌아갔을 때 내 뺨 양쪽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아이들의 수군거림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반항심으로 폭발을 향해 들끓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장면 


<더 글로리>에서 왕따였던 동은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손목시계를 풀러 놓고 본격적으로 뺨을 내려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불같은 살의가 온몸에 되살아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 대학생, 심지어 회사원이 되고 30대가 되어서도 나는 그녀를 가끔 떠올렸다. 하얀 얼굴과 굵은 컬이 들어간 갈색 단발머리, 무표정한 얼굴로 제 분을 삭이지 못해 어린 제자를 향해 손발을 날리던 그 썅년의 얼굴. 얼마나 많은 밤에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그 년을 찾아가 몇 번이나 죽이고 또 죽였는지 모른다. 동은이처럼 그녀의 자식들을 찾아내 어떻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것이 진짜 상처가 될 것이라고, 그 정도는 돼야 갚아질 것 같았다. 공립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언제든 이름을 검색하면 현재 근무하는 학교를 알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복수를 실행에 옮길 만큼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되돌려 받았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틈틈이 그녀가 행복하고 평탄하게만은 살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녀에게 상처 입었을 많은 아이들의 분노가 모이고 모여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인생의 어느 순간 그녀의 존재를 두동강내는 큰 화를 입기를 기도했다. 그런 상상과 바람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의 폭력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안의 악마가 소환된 날이었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





이후로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한 일은 딱 한번, 전남편이었다. 그래서 이혼했다. 맞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남자를 내가 정말로 죽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겁이 나서 이혼을 결정했다. 나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 아니었고 내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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