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은 편식한다

나도 언제나 편식한다

by 안녕별

요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산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은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당직 교사가 문을 엶과 동시에 유치원으로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들의 출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아이를 황급히 맡기고 직장으로 뛰어가는 부모님들의 발걸음 또한 가볍지 않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아이들을 맡기고 길러냈기에 아침의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도 짠하고 아이도 짠하고, 잠깐의 사이에서 내가 살아온 세월이 스쳐 지나기도 한다.

이렇게 요즘을 사는 아이들은 유치원이 제2의 가정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유치원에서 먹는 한 끼는 때로는 아이들에게 하루 중 온전히 제대로 먹는 한 끼인 경우가 많다. 아침엔 바쁘게 등교하느라 빵이나 시리얼을 먹거나, 저녁엔 피곤해서 밥도 못 먹고 잠들기일 수인 아이들도 많다. 성인인 나조차도 유치원에서 먹는 한 끼가 그나마 밥 다운 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라에서 시행하는 무상 급식 덕분에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식단은 매우 훌륭하다. 우리 유치원의 식단은 함께 위치한 초등학교의 식단과 동일하게 제공되지만 영양 선생님의 노력으로 어린아이들과 초등학교 형님들 양쪽의 입맛을 사로잡는 훌륭한 식단이다. 성인인 우리들은 이러한 음식이 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대부분 감사하게 잘 먹고 있지만 아직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은 골고루 잘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호가 강해지면서 잘 먹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선호가 결정되는 유아기에 골고루 다양한 음식을 균형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교실에서 급식 지도를 적극적으로 했지만 그 지도 과정에서 일부 몇몇 교사가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지도를 했던 잘못된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어 요즘은 교육 현장에서 급식 지도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사들이 편식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또한 그 불편한 마음의 소유자다.

학교 급식의 국룰은 늘 맛있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편식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은 실컷 먹길 희망하고 전혀 새로운 음식, 싫어하는 음식은 극도로 거부한다. 그래서 싫어하는 음식은 손도 대지 않다가 모든 아이들이 선호하는 맛있는 반찬만 더 달라고 하는 아이가 나타나면 마음 한편이 뾰로통해진다. 교실에서 다년간 살아본 결과 대부분의 아이들은 편식을 한다. 교실에서 편식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음식만큼 뚜렷한 자기 의사 결정권을 가진 행위가 있을까. 당연하다. 성인이 된 나도 내가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죽어도 먹기 싫다. 죽기 직전이면 먹겠지만.

하지만 나는 편식하는 아이들과 내 나름의 급식 지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내가 말하는 급식 지도는 낯선 것에 도전하는 용기라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낯선 것을 즐겁게 호기심으로 만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두렵고 회피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회피의 심정을 가진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지."라는 이야기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다. 누가 몰라? 아마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회피가 가득한 마음을 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공감이다. 그리고 그 두려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격려이다. 또한 아이가 용기 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하며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친절하게 말하지만 골고루 잘 먹어야 함을 홍보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 무뚝뚝하게 말하더라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던지는 말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더욱 쉽게 움직인다.

"이상하게 생겨서 아마 싫을 거야. 선생님도 그랬거든. 그렇다고 해서 먹어보지 않는다면 새로운 음식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은지 경험해보지 못하지.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네가 오늘은 못 먹어봤지만 다음엔 용기를 내보면 좋겠어. 네가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새로운 음식이 두렵지 않을 텐데. 선생님은 네가 그것을 경험해 보면 정말 좋아할 거라 생각해.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이들은 교사의 사려 깊은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날 바로 시도하지 못하더라도 몇 번 후에 시도하고 스스로 작은 고개를 잘 넘었다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서는 몇 밤을 더 자고 해 보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막상 약속한 몇 밤이 지나고 나면 또 용기를 못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채근하기보다는 교사가 방향을 잃지 않고 기다려준다면 대부분 어쩌면 모든 아이들은 그 작은 고개를 넘는다.

최근에 함께 식사한 아이도 우리나라 나이로 다섯 살이었는데 처음엔 다섯 밤을 자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겠노라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다섯 밤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그 과제를 지연하는데 안도한다. 다섯 밤이 지나서 다시 물었을 때 자신이 약속한 것을 떠올리고 화들짝 놀라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또 미루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양상은 아이들마다 다르다. 하지만 약속을 지켰네 지키지 못했네 흥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이가 골고루 먹으며 다양한 음식을 자신이 동의하는 과정을 거쳐 경험하길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러한 과정에서 처음의 좋은 교육적 의도가 흐려지고 아이와 기싸움 끝에 교사와 아이 양쪽 모두 소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도 늘 그랬다. 마음속으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걸로 요 어린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그냥 집에서 잘 먹으면 됐지 뭐 했던 날들이 숱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렇게 교실에서 하나둘 내려놓다 보니 내가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없어지고 내 정체성마저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작은 시도다. 다행히 이 방법은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어 이 글을 읽는 소수의 어른들께 권하고 싶다. 공감하고 지연하다 결국 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아이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말아 달라고. 작은 음식 하나가 아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만나는 기쁨을 그 아이가 느낄 수 있게 해 달라고.

나에게 다섯 밤을 자고 먹겠노라 다짐한 다섯 살 꼬마 친구는 결국 여섯밤 째가 되었을 때 스스로 낯선 음식과 만났고 그 과정에 스스로 참여한 자신을 매우 뿌듯해했다. 그리고 일곱밤 째가 되었을 때는 "이제 다른 거 먹을 때 용기 낼 거예요."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이에게 내적 동기가 생긴 순간이었다. 아이가 다음에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이 스스로가 알 것이다. 그것을 체크할 필요는 없다. 그건 아이에게 믿고 맡기면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덮어놓고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낯선 것을 '한 번은 해볼까? 한 번은 용기 내 볼까?'라고 스스로 마음먹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편식한다. 모든 어른들도 편식한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살길 희망한다. 하지만 인생이 좋은 것만 선택하고 살 수 없다. 때로는 낯선 것, 싫은 것을 선택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갈 수 있는 용기이다. 어른은 스스로 용기 내서 가야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용기를 낼 때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그 어른이 교실에서 가까이 있는 교사였으면 좋겠다. 그것이 교사인 스스로에게도 교육을 지속해 나갈 새로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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