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이응 Jan 10. 2018

목욕탕에서 단상 5가지

#1

이렇게 갑자기 바람 불고 추워지는 날이면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다. 사실 난 목욕탕 알러지가 있다. 배에 빨간 두드러기가 징그럽게 수백 개 생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생겼는데 피부과에 갔더니 원인은 모르고 그저 목욕탕을 자주 가지 말라했다. 그 전 까지 적어도 한 달에 두어 번씩 갔는데 두드러기가 여름엔  몇 개가 곪아 아프기까지 해서 일 년에 한 두 번만 가게 됐다. 하지만 어김없이 갈 때마다 배에만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3~4일 정도 있으면 사라지기는 했지만 늘 신경이 쓰였다. 원인을 찾아보려고 뜨거운 탕에 안 들어 가보기도 하고 때밀이 아주머니가 쓰시는 때수건이 아니라 내 때수건으로 닦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배에만 나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배 부분만 때를 안 밀고 비누로만 씻어냈더니 두드러기가 안 생겼다. 내 몸 복부 피부만 아주 약했던 것이다. 가장 지방층이 두터운 곳인데 가장 예민하다니. 너 보기와 다르구나.


#2

42도 온탕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앞 쪽 샤워기에서 머리를 감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몸매가 정말 예뻤다. 키는 165정도에 지방 덩어리는 하나 없어 말랐지만 모델 몸매처럼 탄탄한데다 균형 잡혀 보이는 윤곽선이 딱 20대 몸이다. 그런데 머리가 할머니처럼 하얗다. 염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흰 머리카락이다. 맨 얼굴을 보니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 같았다. 머리 스타일 얼굴 몸매 모두 따로따로 합성해놓은 듯 어색해 보이다가 실제하는 그녀만의 자연스러움에 빠져 한참을 곁눈질 하며 바라봤다. 어느 것 하나 인공적인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부조화가 한없이 아름다웠다.


                                                                                                                                                                                                                                                                                                                                                       #3

나는  작은 비닐팩에 샘플용 샴푸, 바디샤워, 로션과 노란 때수건 2개만 넣어 왔다. 넉넉히 한 시간 반이면 목욕이라는 행위가 끝난다. 목욕용품이 가득 채워진 파스텔톤 목욕바구니가 욕탕 문 입구에 쪼르르 놓여있다. 정액권을 끊고 다니는 아주머니들 것이다. 그분들은 대부분 건식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며 장시간 목욕하신다. 땀 흘리며 나와 바로 수영장 같은 냉탕에 들어가 추워하는 신음하나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모습을 보니 수련생이 몸을 단련하는 듯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들은 부지런하고 깔끔하며 매서운 추위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매번 골골되는 내가 저렇게 정액권 끊고 다니면 건강해질 것만 같다. 건강 비법이 여기도 있구나.


#4

목욕이라는 한 가지 행위를 위해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들었다. 평일 오전에 오니 대부분 혼자다. 저기 멀리 홀로 앉아 힘겹게 등을 밀고 있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기 살이 탈 듯한 열탕에 15분 째 앉아 있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맨 얼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나체로는 나이도 직업도 추측하기 힘들다. 이 세상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던 그대로,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앉아 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와 같이 거창한 사유를 하진 않겠지만 각자 나름의 깊은 생각을 하는 표정이다. 묵은 피로와 때를 벗겨내는 시간에 주어진 사유는 평상시와는 다를까? 생각이 하고 싶을 때 가끔 이곳도 좋은 장소인 것 같다.


#5

어릴 땐 엄마 동생과 함께 주말마다 목욕탕에 가면 동네 친구, 아줌마, 할머니를 만나 벌거벗은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곤 했다. 약간의 쑥스러움을 주는 이는 별로 친하지 않음을 증명하곤 했다. 친한 친구와는 목욕탕에 같이 가자는 약속도 했었다. 성인이 되고나서 함께 목욕탕에 같이 간 친구는 1~2명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경우뿐이다. 지금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함께 사우나에 가자고 한다 해도 나는 쉽게 그러자 못할 것 같다. 유행하는 옷으로 가린 나의 비루한 몸과 두터워진 지방층을 다 보이고 내 피부 노폐물을 함께 봐가며 목욕을 한다는 것은 별로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나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알 수 없는 타인들 앞에서는 괜찮지만 말이다. 이건 마치 내 글을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과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