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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dless Feb 06. 2018

한 팀장의 [브랜드리스] 개발일지 03

혁신의 실마리

2010.3.10

#3 혁신의 실마리



몰라. 그거 할 새가 어딨어 지금.

매트리스 업계에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다. 통상적으로 장마철인 6~7월이 비수기이고, 개학과 혼수 시즌이 겹치는 2~3월이 성수기이다. 우리 공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우리는 보통 2월이 가장 바쁘다. 호텔과 기숙사 납품 물량과 봄에 결혼하는 혼수고객이 몰리면서 납품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도 매일같이 야근하여 겨우 납기를 맞춰나갔다. 그 와중에 신제품 개발 회의를 매일같이 진행하니 공장장님과 생산팀장님들도 많이 피곤한 눈치였다.


나 : 공장장님. 이번에 새로 개발하는 신제품 프로토타입 언제쯤 나올까요?


공장장님 : 몰라. 그거 할 새가 어딨어 지금. 납기 맞추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 : 그렇긴하죠. 바쁜거 지나가야 실제로 만들어 보겠네요. 그럼 저희 지금 프리미엄 브랜드에 납품하는 최상급 라인업 사양 업그레이드한 시방서 드릴게요. 납품 끝나면 바로 꼭 좀 샘플 만들어주세요~


공장장님 : (묵묵부답)



매트 팔기가 그리 쉬우면 우리 공장이 왜 이러고 살겠나?

우리 공장은 다른 제조업체와 다르게 생산팀과 관리팀 사이가 좋다. 보통 제조업체에서는 생산부와 관리부가 기 싸움을 한다거나 우리가 더 잘났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원래 생산팀에 있다가 관리팀에서 일하기도 하고, 관리팀에 근무하다가 생산팀에 가기도 해서 그런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나도 생산 현장에서 일하다가 관리일도 하고 그래서 공장장님과 생산팀장님들과 매우 친한 편이다. 

대답이 없으셔서 잔뜩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출근하니 현장에 샘플 매트리스가 완성되어 있었다.

역시 우리 츤데레 공장장님.

대답은 퉁명스럽게 하셔도 할 일은 다하신다. 생산직원들한테 물어보니 어제 밤에 공장장님 혼자 남으셔서 샘플 만드셨다고 한다. 확실히 이런 거 보면 공장장은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누워봤다.


나 : 오 괜찮은데요? 공장장님 이거 우리 납품가에 그대로 고객에게 팔면 대박나겠어요!


공장장님 : 그렇게 매트 팔기가 그리 쉬우면 우리 공장이 왜 이러고 살겠나? 한 팀장.


나 : 에이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우리나라 사람들에 맞게 허리를 확실하게 지지할 수 있는 
스프링을 제작해야해

공장장님 : 지금도 나쁘진 않은데, 난 사실 별로 마음에 안들어.


나 : 왜요? 이정도면 그래도 시중에서 팔리는 것 중에는 최상급인데요?


공장장님 : 뭐 그렇긴한데, 더 잘 만들 수 있다는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에 비해 허리가 길고 온돌문화가 남아있어서 허리를 더 탄탄하게 받쳐줘야 편안함을 느껴. 그런데 지금 시중에 판매되는 매트리스들은 거의 다 허리부분 스프링이 다른 부분과 똑같이 제작되거든. 허리부분 스프링이 다르게 제작되어야 진짜 허리를 받쳐줘서 편안한 느낌을 느낄 수 있지.



대량생산하려면 기계 새로 사고 라인이랑 인력이랑
다 뜯어고쳐서 재배치해야 돼

나 : 흠. 그럼 우리 공장에서 그렇게 만들 수 있어요? 허리강화된 스프링을?


공장장님 : 내가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 만들순 있는데. 지금은 양산을 못하지. 대량생산하려면 기계 새로사고 라인이랑 인력이랑 다 뜯어고쳐서 재배치 해야 돼.


나 : 어렵네요. 대량생산을 해야 의미가 있는데. 하루에 몇 개 못만들면 비싸게 파는 방법 밖에 없는데. 우리 회사 인지도도 없는데 누가 사겠어요?


공장장님 : 대량생산하면 잘 팔 자신은 있어? 한팀장이 만드는대로 다 팔 자신 있으면 뭘 못하겠어 (웃음)


나 : 아 제가 팔아볼게요 진짜 그럼. 이거는 사장님께 보고 드려서 이야기 해봐야할 거 같아요. 공장장님 그럼 아까 말한 그 허리강화 스프링으로 샘플 다시 좀 만들어주세요. 일단 제품 깔아놓고 이야기해보죠.


공장장님 : 이번 주는 바빠서 다음 주에 시간 봐서 해줄게.


나 : 에이~ 그러고 오늘 밤에 혼자 남아서 만들어주시려고 그러는거죠?ㅋㅋ


공장장님 : (묵묵부답)


‘허리강화 스프링’
그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허리강화 스프링?' 나도 생산에 잔뼈가 굵다고 자부하지만 언뜻 어떤 구조일지 떠오르지 않았다. 1989년부터 매트리스를 만들어온 공장장님의 실력을 믿고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매트리스 나온 걸 봐야 사장님께 이거 진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그 생각만 났다. 두근두근. 내일 출근하면 샘플 매트리스가 짜잔 하고 나와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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