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형의 인생탐구영역] 돈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가난했다.
수도, 전기, 가스가 통째로 끊겨 서울 한복판에서 원시생활도 해봤고 점심 먹을 돈이 없어 피자빵 하나를 가지고 두끼를 해결한적도 있다. 일을 안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내 삶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놀았던 시기는 다 합쳐도 6개월이 안된다. 전단지 알바부터 PC방, 가전제품 판매, 보험 영업, 자동차 영업, 카드 영업, 휴대폰판매, 콜센터, 잡매니저 등 25살까지 했던 일의 종류만 16가지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어도 일을 안해서 가난했다고 얘기는 못할것이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나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
이상했다. 쉬지 않고 일해왔고 쓰는 곳도 별로 없는데 왜 나는 늘 가난한 상태일까
스물 네살쯔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버는것보다 쓰는 것이 많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통장내역을 조회해보니 월급이 들어옴과 동시에 카드값으로 대부분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한도도 얼마 안되었기에 간과하고 있었는데 자세히보니 무심코 긁어왔던 할부들이 눈덩이처럼 커져 매 달 150만원 가까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정도로 경제관념이 제로에 가까웠다.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고 그 날부로 신용카드를 전부 잘라버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난의 원인을 제거해버렸어.'
카드를 잘라버리니 당장 생활이 어려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려워졌다기보단 불편했다.
그래도 참을만했다. 1,2년 지나 할부의 늪에서만 벗어나면 내 통장은 흑자로 전환하리라.
하지만 정확히 예측이 빗나갔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1년을 넘게 버텼음에도 나는 여전히 가난했다. 물론 예전보다 조금 돈이 생기긴했지만 기대했던만큼의 잔고는 모이지 않았다. 밑바진 독의 물붓기처럼 모일만하면 각종 경조사나 병원비 같은 변수들에 의해 여전히 똑같은 챗바퀴를 돌고 있었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가난의 원인이 바닥 수준이었던 내 경제관념과 적게벌고 많이 쓰는 소비습관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난의 이유 또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돌아보면 분명 영향은 있었다. 같은 상황에 놓여져있던 내 지인은 비슷한 월급과 가정환경 속에서도 천만원 가까이 돈을 모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 지인은현재도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거리낌 없이 대놓고 할 수 있는 사이이기에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 나와 그 지인의 재산규모는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창업을 한 뒤 몇 달 쯤 되었을 2014년경, 크몽 컨설팅으로 한 회사의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내 상담료는 10만원이었고 출장상담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 라이센스 권한을 받아 한국에서 총판 역할을 하던 의류 유통 사업가였다. 솔직히 말해 당시만해도 나보다 잘 나가던 사업가가 왜 컨설팅을 신청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컨설팅이라하면 의뢰인이 질문을하고 컨설턴트가 그에 맞는 답을 주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질문은커녕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다. 이쯤되니 심심해서 나를 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수치심과 약간의 분노가 차올랐다.
그래도 10만원이 아쉬울 때라 참고 참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경청전문가' 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그냥 10만원이 아쉬워서 그랬다. 사무실에서 거의 30km를 건너왔는데 빈 손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한 두시간 가까이 이어진 자기 얘기를 끝낼때쯤 드디어 첫번째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PD님, 혹시 세상에서 확실하게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글쎄요 사업 잘 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아니면 영업능력이 좋거나요"
그는 슬쩍 웃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요. 사업은 솔직히 운도 좀 필요하자나요. 제 생각엔 가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제일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봐요.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어내듯이요." 이어 그는
"PD님은 돈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도구 아닐까요?"
"그 말도 맞죠. 돈이 많으면 확실히 할 수 있는게 많아지니까요. 근데 제 생각에 돈은 그냥 종이 쪼가리예요. 여기 천원, 만원 씌여져 있고 위조지폐 방지를 위한 어떤 표식도 한국은행 도장도 들어가 있고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새겨지는 순간 이 종이쪼가리는 '돈'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하죠. 그래서 우리는 종이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주고 받는 것이고요."
"아.. 네..."
사실 그때는 그 얘기가 무슨 얘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제발 그만 좀 얘기하고 상담을 끝내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운전을하며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얘기했던 '가치'라는 것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가치라...'
기분이 몹시 불쾌한 상태였기에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싶었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두 시간을 자기 얘기만 하다가 상담이 끝났으니 컨설턴트로서 충분히 자존심상할만 한 상황아니던가.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가난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었다. 돈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고, 만약 그 안에 아무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냥 종이 쪼가리를 주고받을 뿐 아니던가. 고작 이런 종이쪼가리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세상 착한 사람이 한 없이 나쁜 사기꾼이 되기도 하고 수백명이 힘들게 쌓아올린 빌딩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니 '돈'을 바라보는 내 관점의 변화가 생겨났다. 나는 그동안 '돈'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돈'으로만 바라보고 일을 해왔는데 조금 더 본질적으로 살펴보니 우리가 주고 받던 것은 '돈' 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가치'였던 것이다. 즉, 돈을 번다는 행위는 실제로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과 가치로서 등가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즉, 많은 돈을 벌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가치를 주고 받을 수 있을만한 어떠한 가치를 나(또는 제품) 또한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왜 계속 가난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아니라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왜 더 비싼 가치를 받지 못하지? 라는 불만만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나라는 가치를 높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몸과 시간을 쓰는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내 삶은 챗바퀴를 돌고 있었던 것이고.
내가 퍼스널브랜드라는 영역에서 일을 하게 된 이유도 위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의 나는 고객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가며 영업을 하는 수많은 사람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다루는 제품도 남들이 전부 다룰 수 있는 제품들이었고, 어떠한 차별화도 없이 그저 남들보다 말을 좀 더 잘하고 설명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최대한 사람을 만나 내가 가진 서비스나 상품을 많이 팔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남들보다 노력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운이 없다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돈을 가치로 해석한다면 내가 해왔던 일들이 '돈'을 버는 행위에 있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내 삶에 '시간'이 확보되지 않고(적어도 가치를 만드는 법에 대해 방법론이나 깨닫고 공부할하고 시도해볼만한 시간은 꼭 필요하다.) 버는것은 크게 변하지 않고 물가 상승이라든지 부동산 폭등 같이 나와 관계 없는 외부요인등으로 인해 가난은 되풀이 된다. 또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시장에서 부딪히기 때문에 기존의 경쟁도 꾸준히 이겨내며 가야한다.
경쟁부분에 있어선 한가지 예시를 들겠다. 우리가 길 지나가다 휴대폰을 알아보기 위해 널려있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들어갔다고 쳐보자. A,B,C 라는 3개의 가게에 들어가 휴대폰에 대해 문의했고 각각의 가게는 고객유치를 위해 '전국에서 가장 싼' '부가서비스 강요가 없는' '사은품이 풍성한' 등의 멘트를 날리게 될 것이다.(주변의 휴대폰 매장을 둘러보시라 조그마한 보드판 위에 내가 말한 3가지중 1가지는 무조건 적혀있다.)
파는 사람이야 그렇다치고 사는 사람 입장에선 어떤가? 그냥 어딜가도 다 듣는 평범한 말들 뿐일 것이다. 결국 결정의 기준은 진짜 가격이 만원이라도 더 싸든지 좀 더 친절한 매장이라든지 개인의 취향이나 생각, 소비습관에 따라 결정된다. 휴대폰 매장에서 무슨 얘길하든 키는 결국 고객이 쥐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될까? 마진을 줄여 가격을 더 깍든, 사은품을 더 비싼걸주든 마케팅 비용을 늘려야한다. 그렇게 해서 매출이 오르면 어떻게 될까? 옆가게가 나보다 더 가격을 깍든 사은품을 더 주든하는 방식으로 쫓아온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상황을 바꿔보자. 휴대폰 구매자가 휴대폰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A라는 요소가 있고 내가 해당 구매자에게 A에 딱 걸맞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인식을 심어준다면? 판매를 할지 말지 결정을 오히려 판매자가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 만원이 싼게 아니고 오히려 비싸게 팔아도 사게 된다. 마케팅은 늘 그렇다 고객의 니즈를 바로 알고 나 또는 내가 다루는 제품이 그것에 최적화 된 상품이라는 것이 어필 되면 된다. 그것이 대체 불가능하고 세상에 유일무이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브랜드 라는 것도 사실은 가치를 만드는 일이고. (그것을 믿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두고 브랜드마케팅이라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팔면서, 똑같은 가치를 가진자가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 시간적 손해를 담보하게 된다. 사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돈'을 종이쪼가리로 바라본 뒤 이것을 나처럼 '가치'로 해석해보시길 바란다. 물론 가난을 벗어나게 된 이유는 이외에도 수 많은 영역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누군가 만약 나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요구한다면 나는 지체없이 돈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얘기할 것이다. 이 변화 하나만으로도 꽤 큰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믿는다.
요약하겠다. 만약 끊임 없이 노력하지만 가난의 굴레가 벗어나지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아껴쓸만큼 아끼면서 돈도 절약한다고 열심히 절약했는데 재산이 축적되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중 한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1) 모은 돈을 잘 굴려서 돈이 돈을 벌게 만들거나 (부동산, 주식, 지적재산권 등)
2) 가치를 만드는 법을 깨닫고 그냥 아예 많이 벌어버리거나
1번은 나도 대단한 수준의 영역은 아니라 해드릴 말씀이 많지 않으나 2번만큼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려면 소비에 대한 관점을 '가치'의 교환으로 바꿔보시는 관점의 변화가 선행되야 할 것이다. 참고로 1번 영역은 부의추월차선이라는 책에 잘 나와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씩 보시는 것도 추천드린다.
대단한 내용은 아닐지언정 내가 아무런 댓가 없이 쓰고 있는 이런 글들이 작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으면 좋겠다. 나는 글을 예쁘게 쓰지도 못하고 현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성글쓰기는 더더욱 못하지만(능력이 안된다..) 적어도 알량한 경험으로 누군갈 현혹시켜 돈 벌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이다. 그런 바램으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