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니까 날보고하는 말들이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자의적으로 떠나기 시작한 이후로, 여행이 없는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나이니 말이다. 여행은 사치가 맞다. 본격적인 시작도 전부터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으며,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너무나 신경 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여행을 준비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단지 매력적인 여행 사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여행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이뤄지는 행사(Event)다. 이벤트라는 단어보다 행사로 표현한 이유는 한국인에게 여행이란 많은 것을 포기하는 만큼 특별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왠지 가벼운 느낌을 주는 이벤트보다 행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 당연히 여행은 시간이 없으면 어렵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빡빡한 스케줄 가운데 빠듯하게 껴있는 여행이라는 고된 '노동'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은 단기간에 후딱 다녀오는 패키지여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하게 발전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여행을 가냐는 볼멘 목소리도 너무나 이해 가는 바이다.
나 역시 한국인이기에 나만을 위한 느긋한 여행을 준비해 본 적이 없다. 여행 준비를 위해 많은 책을 빌려와 쌓아두고 지식을 방자한 팁을 쌓아가며 블로그와 여행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낸다. 많은 시간과 돈이 할애되지 않은 나에겐 여행이란 늘 어떻게 해서든 가성비를 뽑아내고야 마는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숙박비나 항공, 현지에서의 교통비 등 저렴하고 안전히 떠나야 한다는 두 가지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여행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낭만적인 제목으로 구미를 당기던 여행 서적들은 어떻게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왔는지 팁 따위는 주지 않고, 실속 위주로 짜인 여행 서적들은 이 여행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어쩐지 의무적으로 낭만 혹은 실속을 찾아 떠나는 듯 한 두 서적과 정보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여행과 시간을 논하려면 이렇듯 자연스레 시간과 돈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렇다. 여유롭다면 이런 볼멘 아우성이 나올 리가 있는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엄청난 이해관계가 부딪히고야 마는 여행이란 결코 사치가 아닌 생활이다. 그러니 이 번거로운 시간들을 단지 사치로서만 기억하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새해가 시작되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 하면, 맹세컨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1순위에 여행은 꼭꼭 들어차 있다고 장담한다. 다만 실행에 옮기기엔 포기할 것이 많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떠난다. 나의 친구들도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나라는 사람이 쌓는 축적된 시간 속에서 특별함을 선물하는 사치이자, 반복되는 생활이다. 그러니 시간이 없어도 여행을 떠나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나는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