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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pr 05. 2018

[뉴욕 미술관] 브루클린 (Brooklyn) 뮤지엄

브루클린 뮤지엄 :: 한국의 나와 여성의 나를 찾다.

  여행의 아쉬움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게 한다. 내게 뉴욕의 브루클린이 그렇다. 2주간의 뉴욕 체류기간 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맨해튼에서 보낸 덕에 브루클린은 고작 이틀을 겨우 방문했다. 그중 하루는 꼬박 이 브루클린 뮤지엄을 감상하는데 시간을 온통 할애했으니, 다음에는 브루클린의 진한 커피 향을 맡으러, 즐거운 식사를 하러 다시 찾고 싶다. 그런 진한 아쉬움을 남긴 이 브루클린의 브루클린 뮤지엄. 이곳에서의 하루를 빼곡히 적어보려 한다. 






History of Brooklyn Museom 



 

브루클린 뮤지엄은 역에서 내리면 바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 날 늦잠을 잔 덕에 우버(Uber)를 불러 부랴부랴 뮤지엄 클로즈 3시간 전에 도착했다. 이 브루클린 뮤지엄의 어마 무시한 크기와 막대한 컬랙션은 한두 시간을 투자해선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도착한 브루클린 뮤지엄에서는 비싼 우버의 택시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알차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브루클린 뮤지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뮤지엄 중 하나로서, 1823년  루클린도제도서관협회로 창립 하 여 각종 도서를 비롯하여 지식을 위한 장으로서 설립되어 무역자들을 교육해왔다. 현재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고. 브루클린 하이츠에 처음 설립된 이 뮤지엄의 전신인 도서관을 1841년 워싱턴 스트리트에 있는 브루클린 리시움 빌딩으로 옮기게 된다. 2년 후, 이 도서관과 리세움을 결합하여 브루클린 연구소(Brooklyn institute)를 설립하였으며, 이때부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강의와 함께 초기 회화 및 조각에 대한 순수 전시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브루클린 연구소(Brooklyn institute)는 1846년 지금의 브루클린 뮤지엄과 같은 영구적인 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고. 출처 및 자세한 정보 : 브루클린 뮤지엄 홈페이지




내가 브루클린 뮤지엄을 방문했을 당시, 현재 진행 중인 데이비드 보위 전은 준비 중에 있었으며 나는 로댕 특별전과 바스키아 특별 작품전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로댕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특별전으로 기획한 전시를 볼 수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뉴욕에 체류 중 로댕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One Basquiat


바스키아의 생전 모습과(좌) 바스키아의 유년시절 브루클린 뮤지엄의 회원증이 전시되고 있다.(우)

 

바스키아는 브루클린의 대표적인 화가다. 브루클린 출신의 이 천재화가 바스키아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더욱 신비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곤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미술관에서는 공개된 적이 없던 바스키아의 작품 한 점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와 함께 바스키아의 유년시절 브루클린 뮤지엄 회원증을 자랑스럽게 공개한 것을 함께 보며 예술이던 어떤 학문이던 처음의 교육이 중요한 것을 새담 깨달았다. 한편으로 이 자랑스러운 뮤지엄 회원증이 브루클린 뮤지엄의 교육적인 학문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돋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one basquiat>전에서 공개된 바스키아의 작품


브루클린 뮤지엄은 이런 특별기획전뿐만 아니라 상설 기획전 및 소장품전에서도 미술관의 교육적인 기능에 치중한 듯 한 전시 구성을 언뜻 느낄 수 있었다. 브루클린 뮤지엄의 미션은 아래와 같다.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과 세상 그리고 그 가능성을 넓혀주는 예술과의 조우를 만들어내는 것
(To create inspiring encounters with art that expand the ways we see ourselves, the world and its possibilities.)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달리 보는 방법을 함께 배워나가기 위한 장으로서 브루클린 뮤지엄은 이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체험하길 바라는 듯 다양한 기획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더불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브루클린 식물원, 아동 미술관 등 특화된 초점으로 브루클린 주민들에게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Art of korea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Art of Korea> 전이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한국의 예술을 이곳 브루클린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전시로,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다양한 현대 예술을 공개하고 있었다. 먼국 타국으로 떠났다고 하더라도 나는 역시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 덕분인지 브루클린 뮤지엄에서는 한국인들을 많이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소중하게 팸플릿을 손에 쥐고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고 있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시  백남준의 작품을 필두로 우리나라의 예술을 소개하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발견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예술은 웬일인지 반가움과 함께 작은 아쉬움을 남겼다. 아직은 단면적으로 세계 예술의 한 페이지만을 장식하고 있지만, 언젠가 백남준처럼 위대한 작가가 세상에 공개될 것을 기대한다. 






여성이 삭제된 역사('His'tory)의 '디너파티'





브루클린 뮤지엄에는 앞서 설명한 특별기획전 외에도 방문한 이유가 있다. 바로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 이 작품은 기독교의 남성주의적인 삼위일체를 비판하며, 여성이 다시 쓴 '최후의 만찬'을 보여준다. 주디 시카고는 미국의 제 1세대 여성 미술가로서, 페미니즘 작가로서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몸에 대한 편견과 남성주의 시선에 전면적으로 돌파한 작가다. 그간 역사에서 삭제되어온 여성과 그의 노동을 작품으로서 되새기고 남성 위주의 편견과 억압에 맞선 주디 시카고는 이 '디너파티'에서 여성의 전유물로써 가치가 절하되어온 수작업들을 예술의 선상에 놓거나 여성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노출하는 등 당대에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으로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이런 파격적인 작품은 그 파란에 비해 어떤 미술관에서도 소장하려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술세계는 남성이 모두 권력을 잡고 있었으며, 덕분에 그의 작품은 숱한 소문과 평가절하를 당하며 가십으로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심지어 이 브루클린 뮤지엄은 페미니즘 작품을 위한 재단 엘리자베스 A. 새 클러 재단 (Elizabeth A. Sackler Foundation)을 통해 이 작품을 매입하였다. 자세한 작품 소개 이전에 이 엘리자베스 A 새클러 재단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이 주디 시카고를 포함한 페미니스트 작가들을 위한 브루클린 뮤지엄의 '페미니스트 아트'재단이다. 즉, 여성재단이 아닌 '페미니스트' 아트를 위한 이 재단은 많은 여성 작가들의 인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를 후원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브루클린 뮤지엄은 그들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Openness and Free Expression'을 재단을 통해 적극 실현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다시 본격적으로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로 빠져보자. 이 디너파티는 남성 위주로 쌓아 올려진 역사에서 삭제된 여성을 다시 되새긴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이 전시를 위해 주디 시카고는 많은 여성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이 중에서는 테크니션 문제로 그를 도운 남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성들과 함께 연구와 작업을 이어나갔다.


'디너파티'로 들어서는 통로 위에 걸린 주디시카고의 작품


게다가 그간 외면되어왔던 여성들의 노동을 수면 위로 드러낸 작가는 십자수나 뜨개질, 도기 등 대표적으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해왔다고 믿던 것들을 예술의 선상으로 가져온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들인 이 작품은 당연히 작가 홀로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The Dinner Party, 1974~79)

작가는 테이블들을 길게 늘여 삼각형으로 구성하였고, 39인의 자리를 준비한 주디 시카고는 이 '디너파티'에 고대시대부터 18세기 여성 해방 운동기까지 남성 위주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름을 세기고 드러낸다. 

 이 디너파티가 처음 공개되자 1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고 하니, 이 작품이 파격적이니 만큼 주디 시카고처럼 생각한 사람이 적지는 않았을 듯싶다. 이 테이블이 놓여 있는 바닥은 헤리티지 플로어(Heritage Floor)라 불리며, 999명의 여성의 이름이 적혀있다. 사회에 공헌을 했거나 페미니스트, 여성의 역사에 기여를 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주디 시카고의 이 디너파티에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꽃의 모양의 식기들은 한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성을 그저 신체의 일부, 그것도 성기로 전략시켰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 그러나 생각해보면 여성을 육체 그 자체로 평가 절하하며 부위별로 뜯어보던 남성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에 초대된 여성들 중에 유색인종은 매우 적다.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 1960-19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은 백인 여성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인구는 백인 72.4%, 흑인 12.6%, 아시아인 4.8%, 나머지는 기타 인종으로 나타난다.(인구통계국 2010 조사) 따라서 동양인은 자연스레 잊혔던 것이 아닐까. 잊혀진 역사위에 여성을 되새긴 주디시카고까지 미처 염려하지 못했던 동양인 여자들. 현재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서 이 작품을 돌아보며 작은 아쉬움을 갖고 전시장을 나섰다. 





이처럼 브루클린 뮤지엄은 전반적으로 예술로서 공적인 가치를 전달하며 우리의 인식 너머를 재고하게 한다. 물론 이 포스팅에서 모두 담지 못한 것들도 많다. 이집트 미술을 포함하여 미국의 역사를 담은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던 이 브루클린 뮤지엄은 하루에 모두 다 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부럽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이런 미술관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술과 문화가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이 너무나 부러운 하루였다. 









Brooklyn Museum




위치

200 Eastern Parkway 

브루클린, 뉴욕 11238-6052


개관시간

MONDAY, TUESDAY  Closed

WEDNESDAY 11 am–6 pm

THURSDAY 11 am–10 pm

FRIDAY - SUNDAY 11 am–6 pm


TELEPHONE

718.63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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