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믿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여러 번 되새겨보니 꼭 틀린 말 만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애초에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다름을 이제는 인정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은 망각을 의미한다. 기억하지 못하면 기억은 죽는다. 그 기억과 얽힌 모든 감정과 상황들조차. 어쩌면 그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큰 멍과 상처이니 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간이 흘러 자신의 망각을 무기 삼아 잊으라 강요하는 일들도 종종 있기도 하니, 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다시 정의하건대 위로가 아닌 저주가 아닐까. 어서 잊어버리라는 협박일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꿋꿋이 기억의 길을 걷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주기를 맞이한 날이다. 작년 오늘, 사람들을 배웅하는 역의 초입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피켓을 든 이들에게 울먹거리며 힘내란 말 조차 하지 못했다. 재작년 오늘은 차갑고 깜깜한 바다가 두려워 밤을 지새우며 울었고, 그 전의 오늘도 참사가 일어났던 당일도 먹먹하게 눈물이 차올라 아무것도 하지못했다. 시민들은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지키며 기억하려 애쓴다. 종종 잊어버린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떠나간 오늘, 나는 오랜만에 정확한 이유가 필요 없는 슬픔과 애도를 남기려 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유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종종 자연스러운 애도일지라도, 정치적 의도와 악의가 섞인다면 추모는 순수를 검열당한다. 당시 대통령을 역임하였던 박근혜가 이제 대통령에서 '503'이라는 죄수번호로 칭호가 바뀌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심지어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고 있던 그 세월호를 두고 8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도 때로는 검열이 대상이 된다.
슬퍼할 권리도, 분노할 권리도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감정조차 허락되지 않은 세상을 살았다. 그 세상에서 누군가는 떠났다. 그러나 슬픔은 반복되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우리의 순수를 검열한다고 하더라도, 잊혀진 이들을 기억해내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남겨진 우리가 가진 권리다. 그리고 나는 오늘 많이 슬퍼하고 이들을 기억하려 한다.
혹여나 그것이 정말로 '순수'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만큼은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려 한다. 아니,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늘 함께하던 그들을 다시 한번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그곳에 차가운 바다가 아닌 사랑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Remeber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