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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17. 2020

8.누군가의 따뜻한 염원을 구경하는 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 빠져 쓰는 일기

종교가 없지만 절은 좋아한다. 종교가 없다는 사람치고 양심도 없이 절에가면 삼배하고 소원도 빈다. 특히 나는 삼신각을 좋아하는데, 산마다 다른 것을 품고 있는 것이 너무나 좋다. 산신들마다 표정도 자태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그 어떤 절을 찾아가도 나는 무언가를 바라고 또 바란다. 굴러다니는 솔방울로 탑을 만들어 빌고 바다가 보이는 높은 산 위에 커다란 불상을 만드는 마음은 뭘까.


강원도 양양에 있는 절 낙산사는 가파르고 험난한 동해의 해안을 따라 가파르게 세워진 절이다. 가파르다는 표현은 기술이 발전한 현재로서 잘 와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보기만해도 아찔한 바위 그 자체에 자리하고 있는 홍련암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가끔 어떤 염원이나 참회는 파도따위는 두렵지 않은 듯 꼿꼿하다. 나는 그래서 절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 낙산사에 빠진 것은 오랜만에 종교 그 자체에 대한 감상을 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2005년 무시무시한 화마가 찾아왔던 낙산사에서는 우연히도 홍련암과 사천왕등이 불에 타지 않았고 그로인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부처의 존재, 혹은 신 그 자체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산에 지어 바다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불상을 향해, 혹은 하늘의 신을 향해 참배할 수 있도록 지어진 법당은 묵묵히 파도의 소리를 등지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무섭게 들리는 파도소리와 가파른 산맥은 두렵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제 자리를 지킨 낙산사 자체가 따뜻한 염원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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