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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Oct 16. 2021

첫번째 중국 여행 3일/9일 (상하이)

* 작성일 : 2017년 5월 29일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날. :) 


내일은 청두에 갈 거고, 돌아오는 날엔 아마 저녁 식사 말곤 시간이 없을 테니까.




 상하이 동물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모든 사람들의 목적지가 상하이 동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이 몹시 많았다. 입장권을 사는 줄도 몹시 길었는데, 매표소 말고 자동 티켓 판매기 줄이 더 짧길래 그리로 줄을 섰다.  


 Q랑 별다른 고민 없이 서로 번갈아 돈을 내가며 여행하고 있었는데, 어제의 마지막 소비였던 감자탕을 Q가 샀으니 오늘 입장권은 내가 사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Q가 직원이랑 몇 마디 하고나서 핸드폰으로 뭔가 하더니 입장권 샀다고 들어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O 즈푸바오로 결제했다고. ㅡ이 때까지만 해도 네이버 페이 관람권 예매 같은 걸 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다음날 즈푸바오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됐다.ㅡ


 나는 자타공인 동물 애호가다. 온갖 동물들의 이름, 생김새, 습성을 외우는 건 어릴 적 취미 중 하나였다. 우리집에 사는 귀여운 강아지에서부터,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코모도 도마뱀에 이르기까지. 어릴 적 거의 매일 동물 다큐멘터리를 봤고, 좀 멍청해보이는 에피소드긴 하지만 대학 시절에는 비슷한 외모의 다른 품종견을 구분하는 법을 깨우치려고 반나절 내내 강아지 사진만 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실은 동물원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좁은 우리에 갇힌 야생동물들을 보면 마음 한 편이 헛헛하고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하이 동물원의 동물 우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크고 넓었다. 잘 조성된 환경에서 쾌적하게, 경쟁없이 따박 따박 나오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천하태평하게 살고 있는 동물들을 보니 별달리 불편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의 안전이 염려되는 경우들이 몇 번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장면, 기린 우리 펜스가 너무 낮고 허술해서 자칫 어린 아이가 달려가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었다. 얼룩말 우리에서는 그야말로 얼룩말이 내뿜는 콧김까지 느껴질 것만 같았다. 거의 5살 아이만한 큰 앵무새는 그 아무런 구속 장치 없이, 천장 그물도 없이 그냥 홰에 앉아있었다. 앵무새보다도 작은 아이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앵무새가 발톱으로 할퀴면 어쩌지? 날아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했다. (0ㅁ0)


 5월 1일 노동절은 중국에서도 휴일이라, 동물원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손자 손녀들, 주저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한 발 앞서 걷던 아이가 넘어지자 我的孩子!외치며 안절부절 못 하던 엄마의 모습들 모두가 보기 좋았다. 동물을 보는 것보다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더 기분이 좋았을만큼, 푸른 하늘 아래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으러 IFC몰에 가는 길, LPL 광고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2017년 롤드컵은 중국에서 개최된다. 준결승, 결승 정도는 직관하러 또 올 수 있지 않을까 - :) 




 IFC몰은 여의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고 넓었다. 


 다만, 만년필 라미라든지 아이스크림 하겐다즈 같은 브랜드들도 독립 매장을 갖고서 상당히 공들여 꾸며둔 걸 보니 신기하고 색달랐다. 매니아가 주 고객인 라미, 제품 단가가 낮은 하겐다즈... IFC몰처럼 임대료가 비싼 곳에 플래그쉽 스토어를 내는 게 투자 대비 효용을 얼마나 가져올까 궁금했다. Q는 즐비한 의류 브랜드 매장들을 보면서 어차피 다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이런 오프라인 매장들은 장사가 잘 안된다고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 


 그런데 한국은 어떤 업종이든 고급 브랜드들은 아예 백화점 같은 유통 채널 내부에 입점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중국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독립 매장을 차려둔 경우가 많았다. 땅값의 차이? 과시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성향 차이? 경영학 공부할 때 제일 재밌게 공부했던 것 중 하나가 유통전략론이었는데, 아예 이런 테마로 여행을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고른 식당에 갔다. 내 눈에야 모든 요리가 그저 중국 요리일 따름이지만, Q가 이것들은 홍콩 요리라고 가르쳐주었다. 빠오즈, 딤섬, 차오미엔, 닭발 요리. 차오미엔은 중국어 교과서에서 자주 나오는 요리라 시켜봤는데, 야끼소바 같을 줄 알았더니 비쥬얼은 라면땅 느낌이고 맛은 또 전혀 달랐다. 빠오즈랑 딤섬은 정말 맛있었고, 난 닭발을 안 먹지만... Q가 맛있다고 도전해보라고 부추겨서 먹어봤더니 맛있었다! 닭발 먹을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 :)




 다음으론 상하이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갈 차례였는데... 그냥 어떤 큰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깃발 든 사람들이 이름을 외쳐가며 인원을 확인하고, 늦게 도착한 사람이 자기 없이 출발했다며 화를 내고... 그냥 전망대에 와서 티켓을 사면 되는 거 아닌지? 왜 굳이 이런 식으로...? 그렇지만 책에서만 봤던 깃발 부대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꽤 유쾌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라치면 아무렇지 않게 버럭 성을 냈다가도 또 아무렇지 않게 금방 너무 좋다며 웃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그리고 남이 뭘 어쩌든 별 신경 쓰지 않는 다른 중국인들을 보면서, 감정을 절제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겨왔던 나 자신이 조금 고루하게 느껴졌다. 사실 중국 여행 내내 중국인들의 솔직한 자기 표현과 소위 마이 웨이 스타일의 삶의 방식이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루자쭈이의 크고 높은 빌딩들, 상하이의 상징 동방명주, 황푸 강을 내려다보면서... 아름답다는 감탄보다 저 불빛 안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을 중국인들, 그리고 외국인들을 생각했다. 난 한국의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아시아에 살고 있고 세계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고, 내가 내 가능성을 펼쳐나갈 곳은 이토록 무궁무진하구나 생각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성장해나가리라 다짐했다.  


 황푸 강을 배 타고도 건너봤다. 예전엔 Q도 이 배를 타고 푸동과 푸시를 오고갔었다고. 굉장히 저렴한 배삯, 큰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리고 난 뒤 우르르 내리고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약간 사회주의 느낌이었다. 하하. :) 




 예원에 가려고 했었는데 피곤해서 더 걷고 싶지 않다고 Q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 자신도 놀랐다. 보통 난 남한테 맞춰주는 편이고 특히 뭔가 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 표현은 잘 않는 편이다. 하물며 날 위해 고소 공포증을 참고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또 나 보여주겠다고 어딘가 가려는 사람에게, 거기 가기 싫다고 말한다는 게... 하지만 Q는 그래, 이렇게 다 말하라면서 칭찬해주고ㅡ전에는 나더러 일본인처럼 굴지말라고 몇 번이나 핀잔을 주던지ㅡ 진작 말하지 그랬냐면서, 택시를 잡아 근사한 케이크 가게로 날 데려갔다.





 초코 케이크를 먹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돈, 동성애, 치안... 내가 中国很开放! 你们很自由!라고 할 때마다 Q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지금 사회주의 국가를 두고 그렇게 말하냐며 웃어댔다.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靠自己(스스로를 구한다)로 대변되는 독립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 개방성과 자유를 가능케 한 것이리라. 이에 더해 국가에 대한 불신은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 국가가 인민에게 别让国家麻烦(국가에 폐를 끼치지 마라)라고 말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가만히 우리 나라의 사회 분위기와 정치 체제에 대해 곱씹어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확실한 건, ㅡ당연하게도ㅡ 중국도 우리나라도 완전한 사회주의,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새삼 Q와의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친구라니. 심지어 한국인-중국인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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