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쓴 일기
2019년 2월 26일 씀
두꺼운 유리병에서 커다란 스푼으로 세 번 받아온 원두는, 혹여나 날아갈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향긋했다. 당장 내려마실 건 아니어서 여과지 세 장에다 세등분을 해서 접어넣고 다 먹은 칸쵸 상자 안에다 넣어 뚜껑을 덮어두었다. ㅎㅎ
문학관에서 들었던 동백꽃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라, 그림으로 그려봤다. 동백이 피는 늦겨울과 초봄은 벌과 나비가 꽃들의 수술 암술 사이를 날기엔 너무 추운 시기다. 그래서 동박새가 그 수정을 도와주는데, 이때문에 매조화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또 재미있었던 건 화투에 있는 그 꽃과 새가 바로 이 동백과 동박새였던 것!
다음날 아침. 오늘도 샌드위치는 조각 조각. 다이어릴 챙겨왔다.
나무 장작이 탁탁 튀기는 소리를 내는 난롯가 옆에서 차분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난로라는게, 생각보다 아주 따뜻하고 훈훈했다. 마치 햇빛을 받는 듯이 따사로운 온기가 있었다.
조금 다듬고 조금 줄여 쓰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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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해일이란 글을 보면, 24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바다에게 빼앗겼던 외할머니가 마당에까지 밀고 들어온 해일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생가에 가보니 도무지 어떻게 둘러보아도 바닷물이 예까지 들어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중 들어보니, 원래 이 곳은 다 바다였는데 간척 사업으로 땅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날 태워다 준 택시 기사님도 자기 어릴 적 이 곳이 다 바다였다고 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도로 역시도. 네모 반듯한 논들이 신기해서 여쭌 것의 대답이었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어느 가을날의 이 곳을 상상해본다. 평평한 논 위를 빼곡히 메운 벼들이, 이 곳 특유의 거센 바람에 비단결처럼 곱게 물결친다.
아, 흙으로 덮이기 전 바다의 모습 그대로. 일년의 주기를 두고 밀물과 썰물을 거듭하며 노을 빛을 담뿍 먹은 바다의 물결을 그대로 닮은 채로. 8할의 지분으로 시인을 키워낸 바로 그 바람의 덕분에. 어쩌면 생가에서, 시에 등장한 빨랫줄이 어떻게 늘어져 있었을까 폴짝거리던 날 스치고 간 바람은, 그저 머리카락을 만지고 간 게 아니라 투명한 빨랫줄을 흔들어보였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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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책상의 다른 한 쪽으로 옮겨 앉아 창을 왼쪽에 끼고, 어제 사온 시집을 읽었다. 갈색 손목 시계를 풀어 올려두니 썩 잘 어울렸다. 시집엔 아는 글이 반, 모르는 글이 반. 몰랐던 시 중에, 어제 문학관에서 시인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아버지 밥숟갈'이란 시가 인상 깊었다. 어땠다 저땠다 없이 그냥 아버지가 밥숟갈을 떨어뜨리셨다 인데 그게 어쩜 이리 마음을 쥐어짜는지.
재작년 홍콩 해외 출장 때 수채화 도구를 챙겨간 날 보며 동료들이 경악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챙겨올까 하다가 그만뒀다, 아이패드로 그리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엔 자수 도구를 챙겨왔다. 너무 받기만 해서 미안한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도안 그리기용 물에 녹는 펜을 빠뜨리고 와서... 부득이하게 샤프로 그렸다. 오른쪽엔 니들 케이스. 만드느라 들인 정성과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만큼 소중히 아끼며 잘 쓰고 있다. 다만 잠금 처리할 수 있게 단추나 벨크로를 새로 달아봐야겠다.
안경이 비뚤어졌네. 저 일제 골무는 정말 최고인데, 고무로 되어 있어 바늘을 잡고 당길 때 맨손보다 몇 곱은 힘을 덜 들여도 된다. 구멍이 뽕뽕 나 있어서 고무여도 땀이 차지 않고 가볍고 정말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친구!
외곽선만 둘까 하다가 체인스티치로 꽉꽉 채워주었다. 도안을 정하고 왔던 게 아니라서, 마침 가져온 아주 옅은 주황으로 돼지 얼굴과 몸만. 나머지 부분은 서울로 돌아가 어울리는 색으로 완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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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포구에 가봤다.
어제는 만조, 오늘은 간조. 같은 자리, 다른 풍경.
나는 밀물 썰물 바다가 이렇게 매력적인지 이제껏 몰랐다.
아주 좋은 사색의 재료다. 들고 나는 것- 차고 비는 것- 오고 가는 것-
어제는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다가 다음날엔 이렇게 초라하고 기울어진 채 갇힌 배들, 그리고 한가득 고여있다 마치 모조리 땅 속으로 스민듯 흔적없이 사라진 물을 보니 새삼 마음이 헛헛했다.
배는 본연의 내가 오롯이 가지지 않은 것들로 인해 너무 우쭐해하거나 경솔하지 말라고 제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고, 그 많은 것들을 온전히 품었다가도 결국은 자리에 고스란히 두고 물러가야만 하는 물을 보면서는 소유에 대해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이 곳의 물소리는 철썩, 철썩
천천히 크게 바위에 닿아 힘차게 부서지고
물방울로 쏟아져내리는 파도의 소리완 다르다.
범접하기 어렵게 장엄한
자연의 거대한 울림이 아니라
마치 꼭 내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어렴풋한 추억 속
여름날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맑은 물
작았던 양손을 반만 담가 흔들었던
찰방, 찰방
물방울이 춤추듯 튀겼던 그 소리가 난다.
배가 고파서 (...) 찾았던 카페인데 아무래도 가정집의 거실을 카페로 사용하시는 듯 했다. 큰 스크린에서는 '울게 하소서'가 흘러나오고, 피아노와 기타도 있었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은 뒤 가죽 소파에 앉아 한 컷. 책꽂이에서 골라온 책은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주인 아저씨분께서 책 읽는 걸 보시더니 좋은 젊은이라고 칭찬해주셨다. 아주 색다른 칭찬이었다.
쨈토스트 2천원. 서비스로 내주신 아메리카노. 나는 책에 흠뻑 빠졌다.
카뮈 '최초의 인간'을 읽고 알제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프란츠 파농의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구나.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야했기 때문에 다 읽고 오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학 시절 우리 과 교수님 한 분이 이 분의 제자셨는데. 학교 식당에서 식사 중에 저 멀리에 계신 교수님과 눈이 마주쳐 살짝 눈인사를 했더니, 굳이 내 쪽으로 걸어오셔선 짙은 초록색 니트가 참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 난다.
시인의 예술성에 흠뻑 빠져있다가, 친일파 청산이란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우리나라의 역사를 읽자니 새삼 헛기침이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커피를 내려 마셔봤다. 아마 일기장에 적혀있던 글이 없었다면 생각도 않았을 일이다.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졸음을 깨려 의무감에 사마시던 유명 카페의 커피보다, 마구잡이로 아무렇게나 내려 마신 내 커피가 훨씬 더 향기롭고 맛이 좋다'고.
몇 가지 안 챙겨온 자수 실들이, 딱 동백꽃을 수놓기엔 꼭 어울리는 색깔들이라.
안녕 잊지못할 파란 밤과 대숲, 그림자의 춤
내일이면 나는 서울로 돌아가.
이 곳에서의 나는 서울에서의 나와 참 달랐다.
퇴근 후에도- 피곤한 몸에 더 이상 공간이 없는데도,
어떻게든 일 외의 것을 하루에 꽂아넣으려 졸음을 참던 난데
졸리면 그냥 자고,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났다.
방에 누워있고 싶으면 눕고, 나가서 바다를 보고 싶으면 보고
거창하고 대단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벽지가 울고 방 모서리들의 마감이 완벽하지 않고 개미를 두 마리 만났던 그 방에서
먹을 걸 사가지 않는 바람에 빵 한 개를 갈라 먹어야 했던 배고픔 (ㅎㅎㅎ) 속에서도
편안하고 행복하고 완전했다.
떠나는 날 아침. 창문 너머 일출.
아, 하지만 어쩐 일일까? 나는 세속적인 성공에도 관심이 많은걸. 돈을 잔뜩 벌어 부자가 되고 싶다기보다, 돈을 지불하기까지 할 정도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그 무엇을 만들어 보이고 싶은걸. 이렇게 고즈넉한 풍경 속에 하나로 녹아 하루종일 사색으로 온 몸을 채우고 글을 깨적이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 시간을 쪼개고 쪼개 빼곡히 채워가며 보내는 나날 안에서도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는걸. 나는 밤을 새워 다이어리에 올해와 내년의 계획을 짰다.
확실한 목표와 불확실한 과정들을 잘 버무려서. 전의를 일깨우면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들로. :)
집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녕!
있지 나 정말 고마웠어.
난 그동안 시인의 천재성이 부러웠거든, 그런데 이제는 질마재 마을을 고향으로 가졌단 게 부러웠어.
나도 내 시골을 참 사랑하지만 거긴 이런 밀물 썰물 바다는 없거든. 그건 정말 특별하고 아름다웠어.
또 올게, 가을에. 그 땐 렌트해서 차 타고 올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