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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감 Dec 23. 2023

시간이 지나 옅어지니 참 다행이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3

내 브런치 글을 읽고 어떤 분께서 메일을 주셨다. 난임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동서가 먼저 임신을 했다고, 어떻게 그 기간을 보내고 이겨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짧은 메일로 답을 드렸다. 이겨낸 적이 없노라고, 그저 시간이 지나서 옅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더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는 힘들었고 속상했고 익숙해진 것일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바뀐 것이 없다. 나는 이제 일곱 차례 실패한 사람이 되었고 내 나이는 마흔에 가까워졌고, 나는 아직 아이를 품지 못했고, 동서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조카가 태어나고 아가였던 시절 내가 가장 힘든 것은 무얼 해볼 수 없는 내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혼자 견뎌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난임병원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남편은 아직 아니라 생각해 2년이 넘도록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한 달 한 달 생리혈이 나올 때마다 조급해지는 마음과 아직 가임능력이 있다는 안도감의 양가감정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예고 없이 단톡방에 올라오는 아가 사진이었다. 처음엔 나도 아가 사진을 보는 것이 괜찮았고 답장도 가끔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쳐갔다. 아니 속상해졌다.


평상시에 매일 임신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니까 별생각 없이 일상을 잘 살다가도 갑자기 단톡방에 아가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라는 조급함과 내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라는 누구에게 갖는 감정인지 모르는 서운함이 커졌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조카가 너무 예쁘다며 나에게도 답장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 (좋게) 이야기했고, 몇 번 보내다가 어느 날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남편은 그냥 몇 글자 써서 보내면 되는데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냐는 식이였다.


우리 부부는 대화도 많은 편이고 남편은 내 마음을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편임에도 내 감정의 결을 남편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에게 그냥 속 좁은 아내가 되는 것이 편했다. 2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의 나만의 투쟁은 이렇게 상처뿐인 승리로 끝이 났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의 속상함이 흐려졌다. 나는 한 발짝씩 전진하며 계속 시도 중이니 하고 싶어도 못하던 그때보다는 나아진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 믿는다. 세상에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난임병원에서 배웠지만, 지금의 나는 언젠가 엄마가 될 것이라고 그저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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