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감 Dec 11. 2023

강감찬 같은 남편

엄마가 될 수 있을까 2

요즘 우리 부부가 즐겨 보는 드라마가 있다. 


-고려거란전쟁-


나는 남편을 통해 정통 사극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이기에 꼬박꼬박 열심히 보고 있다. 지난주 고려거란전쟁을 보던 중 현종과 강감찬의 대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전쟁으로 인해 어찌할 줄 모르고 어영부영하는 현종에게 강감찬은 - 지금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생각하시면 되옵니다. -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부차적인 것을 같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던 것으로 이해했다. 


나는 결국 최종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식 후 1차 피검사를 나쁘지 않은 수치로 통과했었고, 2차 피검사도 더블링이 안정적인 수치로 잘 나왔다. 3차 초음파에서는 작긴 했지만 아기집이 보였고 난생처음으로 초음파 사진도 받았다. 


그러나 4차 초음파에서 난황이 보이지 않아 결국 "★최최최종_진짜최종_ver4"를 통과하지 못했다.  


초음파실의 무거운 침묵만으로도 나는 실패를 예감할 수 있었다. 많이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나인 것 같던 날이었다. 줬다 뺐는 게 어디 있냐며 펑펑 울었다.


우는 나를 달래며 남편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51:49로 너에게는 좋은 일이 더 많고, 너는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된 거야

최선을 다하면 뭐 해 안되는데

그건 어쩔 수 없어 다시 해야지 하늘의 뜻인걸


한참 울다 진정이 된 나는 다음 스텝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네 번의 시험관 실패는 실패 그 이상으로 현실적인 고민이 따라왔다. 


네 번이나 실패하는 것은 내 시나리오에도 없었서 충격이었는데 게다가 복직에 대한 고민까지. 돈은 없어서 복직은 해야겠는데 휴직하고도 실패하는 시험관이 복직하면서 될까 싶은 마음, 휴직을 연장했다가 계속 실패하면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 내가 받을 더 큰 상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내 생각과 고민을 들은 남편이 얘기했다.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야. 아이를 갖는 거잖아. 아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병원을 열심히 다녀야 하지? 그리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그것만 생각해. 

하지만 돈도 없고, 시험관에만 매몰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그냥 복직하면서 병행할까 그런데 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집중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만 생각하면 그다음 스텝이 나와 다른 것까지 생각하면 복잡해지기만 해

하,,, 강감찬 같은 남편아

뭐? 내가 강감찬 같다고?

그래, 오빠는 강감찬이야 냉정하고 냉철하고 명쾌해서 좋겠다

야 너 강감찬이 현종한테 그렇게 직언하고 집에 가서 마음 아파하는 장면도 같이 봤잖아, 나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하고 네가 속상해하고 몸 아픈 거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파, 그런데 나까지 속상할 수는 없잖아. 


두 가지만 생각해 51:49로 좋은 일이 더 많고, 10년 뒤에 멀리 보면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아마 너랑 나랑 애 키우느라 힘들어하고 지금을 그리워할 수도 있어. 너의 황금기야. 지금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지 마.


나의 첫 아기집은 유산약을 먹고 핏덩어리인 채로 나왔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짠한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이내 이 상황을 그냥 세포덩어리일 뿐이라고 말할 것 같은 남편이 떠올라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나에게는 극 T인 네가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쌍둥이 엄마는 개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