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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감 Oct 04. 2023

가장 높고 큰 관문은 나팔관조영술이었다

엄마가 될거예요 3


X월이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x월이 되었으니 난임병원을 가겠다 했고 남편은 내키지 않은 듯 보이긴 했으나 나와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알겠다고 했다.


남편과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면 또 몇 달이 지체될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급했고, 물리적으로 내 나이는 노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기에 혼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고 유명한 난임병원으로 향했다. 그토록 가고 싶던 곳을 들어갔지만 내 마음속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처음 가보는 난임병원인데 어찌 긴장이 안될까.


사실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 남편을 데리고 산전검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내가 남편을 억지로 데리고 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검사 이후로 3년이나 지났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던 그때의 검사는 3년 후에는 별 쓸모가 없었다.


간단한 문진을 하고, 초음파를 보고, 채혈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나팔관조영술이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이름만 들어본 나팔관조영술이었다. 한 번은 건너야 하는 산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많은 정보가 나를 더 힘들게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정보는 차단한 채 나팔관조영술을 할 영상의학과 병원으로 갔다. (내가 다녔던 난임병원은 직접 나팔관조영술을 하지 않고, 근처 영상의학과에 의뢰하여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시술방으로 들어갔다. 엑스레이 기계처럼 생긴 것이 누워있었다. 간호사선생님이 "여기에 오셔서 누우세요"라고 했다. 철로 되어있는 차갑고 딱딱한 곳이었다.


그곳에 하의를 탈의한 채 무릎을 굽히고 누워야 했다. 지금은 난임병원을 1년이 넘게 다녀 하의탈의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긴장되는 마음과 수치스러운 마음에 멈칫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되는 마음 때문일까. 온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은 차가운 기구를 내 밑으로 넣으려 애썼다. 나는 더 긴장됐고, 긴장되면 될수록 내 몸의 모든 근육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억겁과 같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환자분 이렇게 힘을 주시면 저희가 검사를 할 수가 없어요 힘을 빼세요!!"


이럴 수가,, 검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었구나.


온몸에 힘을 주고 있던 나 때문에 기구를 삽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병원 다니면서 울고 싶던 것은 어린 시절 치과를 다닐 때 이후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 저도 힘을 빼고 싶은데 안된다고요!!! 어떻게 힘을 빼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며 엉엉 울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자세를 바로잡고 마음속으로 긴장하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 긴장하지 말자, 힘을 빼자, 힘을 빼, 제발 힘을 빼라고!!! -


그런다고 힘이 빠질 리 없었다. 간호사선생님은 더욱 힘을 줘서 기구를 넣으려 했고, 나는 아프고 속상한 마음에 결국 눈물이 찔끔 났다.


'나팔관조영술이 이렇게 아픈데 그다음은 얼마나 아플까. 그냥 아이 낳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들던 그때 선생님은 “검사 끝났습니다” 하고 이 모든 고통이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피가 흐르는 나의 밑을 휴지로 닦으며 반드시 아이를 갖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웠는데 내 난임병원의 여정은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나만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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