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와 프란츠 카프카의 책 읽기
소셜 미디어에서는 천 권의,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책 읽기를 강권하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유형에 소속되어 있지만, 불현듯 이건 아니지 않을까 남독(濫讀)에 미묘한 회의를 느끼곤 한다. 그런 연유로 당분간 도서관을 그만 찾을 것이며, 신간이건 중고 건 책 사기를 관두리라 다짐하려던 참이었다. 얼마 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들렀다 절판된 「라이프」 사진집을 발견한 후, 안간힘을 다해 구매욕구를 억누르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 속의 글, ‘생각 없는 산만한 독서’를 기억해 낸 덕분이다. 이제 서가 속 게을러 물러 터진 책들을 꺼내 읽으려 한다. 헤세는 다독(多讀)이 오히려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든다 우려한다. 대신 "내적 삶의 가치와 서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이 효과를 발휘‘하는 책 읽기를 강조했다.
스무 살의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며, "사람들을 물어뜯고 콱 찌르는 그런 책. 우리의 두개골을 주먹질로 쳐 깨우는 책"을 읽어라는 말라 같은 표현이다.
* A book must be the axe for the frozen sea within us.
헤세는 "호기심에 한 번 읽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니며, 감명을 받았다면 반드시 다시 읽을 것이며, 두 번을 즐겁게 읽은 책은 반드시 사라."라고 말한다. 보르헤스 또한 같은 책을 다시 읽는 기쁨의 찬양자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강(江)’에 관한 비유를 통해, 하나의 책 또한 읽을 때마다 독자는 다시 작품을 고치고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보르헤스는 단 한 권의 책을 찾는 방법을 설명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은 다른 책의 참조이므로, 결국 참조한 책을 계속 찾아 나가다 보면 최초의 책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책을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봄꽃과 가을 낙엽조차 청년 시절과 노년의 감상이 다를진대, 다시 읽는 책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책꽂이를 뒤적이다 보니 이십 대에 사놓았던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십여 번의 이사에도 용케 살아남은 최종 승자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듯 차분히 밑줄 그으며 읽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육 개월 동안은 새 책과 멀리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읽은 책들을 다시 읽으며 묵혀놓은 지식 덩어리들과 섞은 후, 조금씩 조금씩 꺼내 써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