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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하이 Dec 14. 2022

떨쳐낼 수 없는 기억에 관한 기억

환상의 빛_미야토모 테루의 소설과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중 발췌



「환상의 빛」은 미야모토 테루(宮本輝)의 소설이다. 서른두 살의 유미코는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멋대로 죽어버린 남편에게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거는 독백의 서간체 문장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저는 아내와 젖먹이를 버리고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에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걸고는 합니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 소설「환상의 빛」 중 유미코의 독백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은 소설을 빛의 영화로 둔갑시켰다.그의 데뷔작이다. 꿈인지 기억인지 회상인지 몽롱하기만 했던 110분의 상영 시간 후, 다시 서너 시간을 영화를 반추하고 의미를 해석하느라 시름했다. 터널과 자전거, 빛과 그림자를 텍스트를 겉들여 어쭙잖은 리뷰를 써 보기도 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상의 빛」 영화 포스터. 마로보시(まろぼし)는 환상을 뜻한다.

「환상의 빛」 은 고레에다 감독이 궁구 했던 '죽음'에 관한 기억과 서사다. 이유 없는 죽음이란 없겠지만, 어린 시절 터널 속으로 사라진 후 행방불명이 된 할머니와 자신과 삼 개월 아이를 둔 채 집 앞까지 돌아와 자전거를 세워 두고서 철길을 걸어갔다는 남편의 행동은 끝내 알 수 없는 사건이다.

난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기찻길을 따라 걸었는지. 한번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 영화 「환상의 빛」 대사

남편은 그저 죽고만 싶었을 뿐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기억의 끈을 끊을 수 없다. 재혼한 남편은 사람의 혼을 뺏는 ‘환상의 빛’ 때문이라고 한다. 이반 일리치가 임종 직전 보았던 ‘구멍 속 밑바닥에서 비치는 빛’이었고, 낭가 파르파트 무모한 등반을 감행하게 했던 김연수 작가의 ‘검은 그림자’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 어느 장르가 좋냐고 묻으면 소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이 만들어낸  빛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다. 카메라의 워킹을 의식하며 다시 보기도 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절제되었고, 늘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1인칭 텍스트를 3인칭  영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일 수도 있다.

     

빛은 가까운 곳에서는 어두워졌고, 멀리서는 사라졌다가 이윽고 한일자(一)로 스며든다. 마지막 10분 바닷가 배경의 롱테이크, 롱숏의 실루엣 장례식 장면은 -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빛의 미학의 절정이었고, 환상의 빛이란 무엇인지 대변해 준다.  음향도 대사도 배제되었다.

영화 「환상의 빛」 중 사라지는 남편(왼쪽)과 할머니(오른쪽)

소설은 신파로 빠지지 않았고, 슬픔은 고요한 모습으로 차분히 다가온다. 멋대로 죽어버린 남편을 하염없이 그리워하거나 원망으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그 기억들은 새 가족과의 다른 기억으로 대체되고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영화 또한 빛과 어두움이라는 영상 언어를 통해 실루엣 처리된다. 그리고 스크린 화면은 밝은 색으로 변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초경의 공포보다 가난을 원망했다는 유미코의 독백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던 궁핍한 기억의 파편을 끄집어내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구부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못 본 체했던 그런 기억들을.


p.s) 유미코 역을 맡았던 에즈미 마카코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라 다른 작품을 기대했는데, 고레에다 감독의 페르소나로 남지는 못했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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