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에 가게가 망할지도.
요리가 업인 류(나의 애인)는 5년 정도 유명한 식당 몇 곳에서 셰프로 일하다가 2022년 4월 30일에 자신의 가게를 오픈했다. 내가 일하는 서울숲 근처의 상권을 알아보더니 권리금이 없는 반지하의 작은 공간을 계약한 것이다. 9월 18일이 결혼식인데.
셰프로도, 한 매장의 점장 급으로도 일해본 경력은 있었지만 가게 오픈 경험은 없는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상권 분석부터 임대 계약, 가게 이름 짓기, 로고, 디자인, 물품, 소품, 식재료, 포스기, 사업자등록 등을 직접 부딪혀가며 해야 하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자신 있는 건 요리뿐이었다.
수많은 에피소드 끝에 오픈은 했지만 손님이 올 리 없었다. 직원과 함께 가게를 지키다가, 어쩌다 손님이 들어오면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요리를 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손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오픈한 다음 주 주말. 텅텅 빈 가게를 지키고 있을 류를 응원하기 위해 따릉이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길 끝에 위치한 골목의 안쪽, 그중에서도 반지하에 있는 그의 가게로 들어선 순간. 나의 코끝이 빨개지고 말았다. 가게가 거의 만석이었던 것이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니었고 벌써 맛있다는 입소문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날씨가 좋은 주말에 서울숲의 인파는 넘쳐나고 밥을 먹을만한 식당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그저 감사했다. 아직 새 주방에 익숙하지 않아 요리하는 속도가 느렸던 그는 '아 이제 손님 그만 오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손님들은 새로 오픈한 가게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방문해 주셨고, 류는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나가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동료(이자 직원) 1명이 홀을 담당하고 가게의 모든 운영, 재료 준비, 요리 등은 그가 홀로 전담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 준비나 데이트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9월에 결혼을 앞두고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4월에 가게를 오픈한다니. 무모한 일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충분히 걱정하실만했고 나도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결혼식 전에 가게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망하면 내가 거둬야지. 휴.
이제 보니 이런 상황에서도 결혼을 한 내가 참 대단하다.
오늘은 집에 가서 류에게 생색을 좀 내야겠다.
덧.
류가 하필이면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가게를 오픈한 이유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오히려 책임감 때문에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앞두고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더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