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프롤로그
2017년 9월 7일부터 같은 해 10월 30일까지 저는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런던을 거쳐 파리로 돌아오는 여행이었고, 중간에 기간을 늘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10일을 더 여행하게 됐죠. 그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그런 여행이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우려했던 시간들을 겪고 나니, 4년 전 추억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더군요. 아무튼, 저는 4년 전의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딱 '15일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려고 해요. 그 이유를 다음 문단에서 설명해 볼게요.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연인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결혼하신 분들은 지금의 아내, 혹은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커플이신 분들은 지금 옆에 있는 분이 그런 운명의 상대일 수도 있죠. 모솔이신 분들은... 죄송합니다. 곧 만나실 거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힘내세요.
저는 유럽에서 그런 인연을 만났습니다. 사실 그땐 잘 몰랐어요. 4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친구의 존재가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됐죠. 벨기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을 계기로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제 계획에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행 일수를 10일 더 연장했고, 중간에 그녀가 있는 도시를 향해 충동적으로 날아가기도 했죠. 저는 지금도 그녀의 검은색 레이벤 선글라스와 얇은 자주색 입술, 그녀의 웃음소리와 첫날 엄지발가락에만 칠해져 있던 빨간 페디큐어를 잊지 못합니다. 붉은 노을 아래서 똑같이 붉은 와인을 마시며 했던 입맞춤도요.
제가 4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그녀를 글로 추억하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저를 위해서입니다. 다시 한국으로 와서 4년을 현실에 찌들어 살다 보니, 그때의 추억들이 점점 옅어지더군요. 강렬했던 기억들도 마치 초점을 잘못 맞춘 렌즈처럼 흐릿한 잔상으로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더 늦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또 다른 이유는, 그녀를 위해서입니다. 혹시나 그녀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을 이토록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그때의 추억들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또 모르죠. 제가 쓴 글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해질 수도 있잖아요. 제 인생에선 그런 우연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여행기를 쓰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문체였습니다. 원래 과거형, 혹은 현재형 '~다'로 끝나는 서술 어미로 단조롭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다 며칠 전 장강명 작가님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을 봤는데요. 편지 형식의 문체가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처음엔 다른 소설들과 문체가 이질적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읽다 보니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사실 처음부터 이 문체를 따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첫 문장을 이런저런 스타일로 써보다가, 가장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대로 적히는 걸 선택한 것입니다.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그녀를 2인칭인 '너'로 서술함으로써, 그녀와 나의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저는 제 글을 '여행 에세이'로만 국한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에 대한 묘사와 대사가 주를 이룰 겁니다. 제가 기억하는 여행과 마찬가지로요. 무엇을 봤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거든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또 나눴던 대화들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가벼운 로맨스 소설을 쓰듯 그렇게, 그때의 일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제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부디 제가 밝힌 의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너'라면, 지금부터 쓰는 이 이야기는 전부 너를 위한 거야. 고마워. 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