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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원 Mar 13. 2022

(영화 리뷰)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티탄

오랜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집에서요. 한국영화를 좋아해서 왓챠를 꾸준히 구독하고 있는데 어느 날 독특한 포스터가 신작 목록에 올라오더라고요. 차갑고 어두운 파란색 배경에 새빨간 조명을 받은 여성의 뒷모습이 겹쳐진 디자인에서 느낌이 왔습니다. '아 이건 노잼이다.'. 바로 무시하고 다른 영화를 봤죠.

솔직히 이 포스터 만든 사람한테 인센티브 줘야 함

그런데 계속 그 영화가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아마 [왓챠 익스클루시브]를 홍보하기 위한 왓챠의 농간이었겠죠. 그 농간에 당했습니다. 어느새 영화 정보를 읽고 있더군요. 특히 먼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리뷰가 가관이었습니다. 다들 저명한 평론가라도 된 듯 있어 보이는 멘트를 잔뜩 달아놨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즉시 걸렀을 텐데, 뭔가에 홀린 듯이 재생 버튼을 눌러버렸습니다. 여러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일어난 일에 후회는 가급적 하지 말자구요.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 리뷰할 영화는 <티탄(TITANE)>, 무려 2021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네, 우리나라의 자랑,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그 영화제입니다. 갑자기 영화가 다르게 보이시나요? 너무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영화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6641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 정말 난해합니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경악스러워요. 

잔인한 장면이나 공포스러운 전개, 기묘한 이야기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절대 피하시길 바랍니다. 

(이후 글은 대량의 개인적 견해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견해가 다르거나 스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X발.. 보지 말껄...

1. 줄거리

영화는 말 안 듣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답도 없는 친구는 운전대 잡은 아빠의 성질을 있는 대로 긁더니 결국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죠. 어린이 여러분, 차 뒷좌석에서 함부로 까불어선 안 됩니다. 잘못하면 머리에 티타늄을 박게 돼요.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요.

대가리에 철 박기 싫으면 어른 말을 잘 들읍시다.

그러나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도 소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황을 합니다. 한 자동차 클럽(?)에서 스트리퍼를 하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가죠. 직업이 스트리퍼라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이후 하는 짓이 가관이라서 그렇습니다. 자신을 따라온 스토커를 죽이더니(이건 정당방위라 치고), 차랑 섹스를 하고(영화가 화제가 된 이유였죠), 차의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여자 친구와 친구들을 갑자기 죽여요. 그러더니 변장을 하고 어떤 아저씨의 아들로 살아가는데(아내의 유혹?) 이 모든 과정을 보고 나면 '내가 지금 뭘 본 건가...'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강동원이 맞았어요.


그럼 어디가 어떻게 별로였는지 볼까요.




2. 가장 실망스러운 점

각자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죠. 저의 경우 개별 장면들의 연결을 꽤나 비중 있게 여기는 편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씬(scene)이 앞뒤 이야기 흐름 상 어색하지 않고, 다소 뜬금없더라도 뒤에 나오는 이야기와 이어지면서 반전을 줄 때의 쾌감은 이로 말할 수 없죠.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탄탄하게 짜인 이야기는 감탄을 내두르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불친절합니다. 특히 영화 초중반 바닷가부터 시작되는 무차별 살육은 정말 뜬금없어요. 아니, 사람을 죽이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영화 <검사외전>에서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변재욱 검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살인엔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을 죽임으로써 이득을 얻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이라 기대할 때 살인은 피의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이 사람을 건들면 다 죽는 거야...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자 친구를 죽여버립니다. 그 전 장면부터 젖꼭지를 엄청 쎄게 물어뜯는 인성질을 시전 하더니 결국에는 머리에 꽂은 비녀로 찔러버려요. 직업이 스트리퍼일 뿐 나름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이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로 타락해버렸는데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요. 스토커를 죽인 이후 주인공 내면에 있던 폭력적인 성향(어렸을 때부터 아빠 말을 안 듣는 모습만 봐도...)이 각성해서 발현한 것인지, 뱃속에 있는 자동차의 아이가 주인공을 변하게 만든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혼자서

티탄(철) = 냉혹, 폭력 / 인간 = 따뜻, 사랑

따위의 가설이나 세울 뿐이에요.

저 비녀의 공격력은 어마무시합니다.

저는 이걸 감독의 고민이 부족한 탓으로 보는데요. <티탄>과 같은 현실 기반의 판타지인데 예술, 독립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제점입니다. 영화의 독창성이나 기발함에 빠져 스토리의 개연성이 약해지는 거죠. 인간이 자동차랑 성관계를 갖고 아이를 임신한다?! 오 좋아요. 신박해요. 산모의 양수가 마치 시꺼먼 석유 같다?! 오오 기발해요. 세상에 나온 아이의 척추가 금속이다?! 오오오 종말 is coming!! 다 좋아요. 그런데 이처럼 놀라운 장면들을 영화로 보여주기 위해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야 하는데 아이디어에 치중한 나머지 이야기를 짜는 일은 소홀히 한 듯 느껴졌습니다.


사실 이 뒤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설명 없이 뛰어넘어버리니 그다음부터 영화가 곱게 보일 리가 없죠. 설정이 독특한 영화인 만큼 사건의 인과관계만큼은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그 외 별로였던 점

영화가 난해합니다. 예술 영화가 으레 그렇지만, <티탄>은 특히 비상식과 무논리,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어요. 


1) 비상식

머리에 티타늄을 박았다고 자동차와 성관계를 한다? 위에선 신박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는 순간만큼은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지금에서야 드는 현실적인 의문들, 이를테면 '자동차의 성기는 뭘까? 기어봉..?' 혹은 '자동차도 성(性)의 구별이 있을까?' 등은 정말 나중에서야 생각날 정도예요.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치기엔 그 이외의 것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에 극한의 비현실과 극한의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빠져 108분 동안 허우적댄 것 같습니다. 그저 러닝타임이 길지 않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이 포스터는 얼마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작됐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내용의 영화를 많이 접했던 사람들에겐 정말 신박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대상까지 받은 거겠죠. 즉 이 부분은 취향 차이인 것 같습니다.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랄까요? 이 부분이 남들보다 크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기묘하고 이상한 공포 괴담이나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분들은 더더욱이요.


2) 무논리

가장 무논리 한 부분은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없다는 점인데요. 앞서 2번에서도 한참을 설명했지만 다른 장면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머리에 티타늄을 박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데 이건 뭐 의학적으로 제가 아는 게 없으니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후반부를 이끌어 가는 소방 대장은 무논리 인간 그 자체입니다. 주인공이 코뼈를 부러뜨린 것만으로 자신의 아들이라 착각해 집으로 데리고 가버리죠. <아내의 유혹>에서 점 하나 찍고 민소희라고 우기는 구은재가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이는 적은 처음입니다.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이후에도 아저씨는 아들을 감싸는 행동을 많이 보여주는데요. 단순히 부성애라고 부르기엔 굉장히 오버스럽고, 진짜 아들과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절박해서 되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아저씨의 아들 사랑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 의아했던 점은, 자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마치 군대와도 같았던 소방대의 수직적인 문화였는데요. 누가 봐도 아들은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대장의 말에 따라 (따돌리긴 했지만) 주인공을 남자로 대하는 소방 대원들의 모습에서 조직 사회의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다들 몸 좋고 훈련 잘 된 프로 소방 대원들일 텐데, 대장의 논리 없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까라면 까야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3) 폭력

폭력이야 말할 것도 없죠. 사람을 죽이고 자신을 때리고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아저씨와 검은 양수가 터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이 등장하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진 않아요. 취향 차이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진 건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의 태도입니다.


영화 속 폭력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합니다. 특히 주인공은 사람을 여럿 죽여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아들로 위장해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동을 참 많이 저질렀지만 영화는 마치 주인공이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갑니다. 그 대신 진정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소방 대장 아저씨와의 관계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종국에는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따위의 결말을 보여주며 끝을 내버려요.

'올해의 미친' 까지만 인정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소시오패스(sociopath)'라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한 여성 소시오패스가 진정한 부모애(父母愛)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쇄 살인과 신분 위조, 사기 등을 곁들인. 이처럼 철저히 주인공 관점의 폭력적인 영화를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보라면 절대, 결코, 단언컨대 거절하겠습니다.


이런 고어..랄까요, 아무튼 잔인하고 가학적인 내용은 감독의 취향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감독인 쥘리아 뒤쿠르노(Julia Ducournau)님에 관한 나무위키 설명에 따르면,

"신체의 그로테스크를 소재로 다루는 바디 호러(Body Horror) 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감독이다."

라는 설명이 붙는데요. 발표한 첫 단편이 장염 걸린 소녀가 뱀처럼 허물을 벗는 이야기이고, 첫 장편은 식인 욕망에 시달리는 여성을 소재로 한 것으로 보아 이 감독의 세계는 저 같은 범인(凡人)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편견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4. 그럼에도 좋았던 점

지극한 부성애와 모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소방 대장이 보여준 부성애의 경우 막무가내식 무논리 사랑으로 깎아내리긴 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에 이유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또 고개가 끄덕여져요. 굉장히 찝찝하긴 하지만요.


주인공 역시 처음 아이를 가진 뒤 자궁에 빗 같은 물건을 넣어 임신 중절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이 부분은 살짝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를 다시 보기는 싫어서 그냥 그런 셈 칩시다.)

아.. 아버지...ㅠㅠ

인상 깊은 부분은 소방 대장 아저씨인데, 끝에 자신의 손주(라고 믿는)를 품에 꼬옥 끌어안고 하는 말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내가 있어.


이 네 글자를 듣기 위해 우리는 108분 동안 그 난리와 혼란을 참아가며 영화를 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믿는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자식의 자식까지 사랑으로 받아주는 소방 대장이야 말로 감독이 정말 전하고 싶은 메시지 아니었을까요? 인간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극에 달한 요즘, 인간애를 회복하기 위해선 아무런 이유 없이 끝 모를 사랑을 쏟아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5. 마치며

저는 정말 대중 영화 또는 상업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한국식 신파, 로맨스를 욕해도 결국 그 이외의 것을 보면 '이상하다'라고 결론 지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이번 영화 <티탄>을 한 번쯤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저는 <티탄>을 통해 '내 취향은 상업 영화다!'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었거든요. 이제 다음은 여러분 차례입니다. 반복되는 상업 영화가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 혹은 오늘은 뭔가 정말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을 때! <티탄>을 한 번 보십시오. 내가 지루하다고 느꼈던 영화들이 사실은 정말 재밌는 영화였고,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치열하게 노력해 만들어 낸 수작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먼저 본 사람들의 감상평도 보고 가세요~

아니면 정말 취향에 맞는 영화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99명이 NO!라고 말할 때 홀로 YES! 를 외치는 그 사람이 당신이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티탄> 안 보면 나처럼 머리에 철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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