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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원 Jan 25. 2020

(영화 리뷰) 웃음도, 감동도, 해치지 않아!

오랜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에서요. 영화관에는 자주 가지 않는 편인데 연초 개봉작들이라고 어찌나 홍보들을 해대는지.... 마침 전날에 퇴사도 했겠다, 그만 홀랑 넘어가 버렸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라면 하나 먹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을 검색(차로 12분 도보 50분), 돈을 아껴보겠다고 심야로 예매한 후 차분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다리면서 유튜브로 예고편도 복습하고 원작이 만화라고 하여 만화도 읽어봤죠. (만화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8화까지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nohurt) 감독님의 필모그래피가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독특한 설정과 꽤 재밌었던 예고편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 리뷰할 영화는 <해치지 않아>, 2006년 <달콤, 살벌한 연인>을 연출한 손재곤 감독의 신작입니다. 자세한 영화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0025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별로였습니다. (이후 글은 대량의 개인적 견해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견해가 다르거나 스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해치지 않습니다.)



포스터에서부터 '웃음', '유쾌'함이 넘칠 것만 같다. (김승진, 박경희, 김보라, 부수정, 이은혜. 이 다섯 명을 잊지 않으리...)


1. 줄거리

영화는 대형 로펌 수습 변호사 강태수(안재홍)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수습인 그는 대표 눈에 들기 위해 아주 간단한 노력(+1 뒹굴)을 보인 대가로 M&A팀 자리를 약속받죠. 단, 망해가는 동물원 '동산파크'를 정상화시키는 조건으로요. 설상가상 동물원에 동물은 거의 없고 사람만 네 명 남은 상황. 

잘생겼다 안재홍!
그쪽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죠? 저도 그래요...

신임 원장으로 부임한 태수는 남은 사람들의 밑바닥 감성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동물 탈을 쓰고 사기극을 벌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로 동물원은 재기에 성공하지만, 이를 되팔아 큰돈을 벌려는 로펌 대표의 계획대로 동물원은 매각.

협박을 받고 있다면 오른손을 들어주세요
종을 초월한 사랑.. 그것은 true love...

될 뻔했으나 친환경 재벌(?)의 등장으로 생태계 공원이 조성되며 영화는 행복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럼 어디가 어떻게 별로였는지 볼까요.




2. 가장 실망스러운 점

러닝 타임 중 가장 보기 힘들었던 부분은 '취임 75일 파티'입니다. 맞아요. 이름에서부터 풍겨오는 억지스러움을 제작팀도 알았는지 굳이 서원장(박영규)님이 보충 설명까지 해주시는 그 행사요. 파티가 열리기 전 영화는 너무나 정석이고 예상 가능한 이야기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재기에 성공한 동물원과 이를 비싼 값에 팔아먹으려는 자본가, 그리고 이 비보를 동물원 팀에 전해야 하는 주인공.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조차 부연설명 없이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겁니다. 평소와는 다른 멀쑥한 차림을 한 주인공의 축 처진 어깨가 그려지지 않나요?

한껏 차려입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인공 태수는 깜짝 취임 파티를 선물 받습니다. 그것도 일면식 없는(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십수 명의 구 동물원 직원들과 함께요. 수의사(강소라)에게 이끌려 깜깜한 사무실로 향했을 땐, 제 마음도 같이 깜깜해졌습니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죠. 해방이라도 된 듯 기뻐하는 사람들과 나라 잃은 표정으로 어버버 거리고 있는 태수. 그 대조가, 클리셰가, 너무 오글거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도착한 구 직원이 시청 담당자와 통화했다며(갑자기?) 동물원 매각 소식을 전하고, 파티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작 나고 맙니다. 어느 정도냐면 다들 분명 술 한 잔씩 들고 있었는데 차를 몰고 떠나버리죠.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도, 상상해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면 꼭 그 다음은 나쁜 일이 찾아오더라

동물원 잃은 상실감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 뻔한 방식으로 풀어야만 했을지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관객은 이미 '동물원 재기 -> 매각 확정 -> 사육사 팀과 갈등 -> 주인공 각고의 노력 끝에 해결'의 구조를 꿰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내용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혹은 기발하게 엮을지는 연출자가 가장 치열하게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의 경우 그 고민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네요.




3. 그 외 불만스러운 점

많은데요. 몇 가지로 요약하면 1)스토리라인 2)등장인물 3)CG 정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1) 스토리 라인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화의 줄거리 문제는 연출자의 잘못입니다. '거대 자본에 맞서 싸우는 약한 존재'의 투쟁기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입니다. 현실에서는 거대 자본의 낙승이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약한 존재가 승리를 거두죠. 갖은 고생은 필수지만, 어차피 이기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결말이 아니라, 우리 대신 온갖 역경을 뚫고 승리를 쟁취하는 배우들의 (잘생김과) 분투기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죠.

뻔하지 않았던 배우들의 동물 연기
뻔하지 않았던 배우들의 동물 연기2

그런데 이 영화, 너무 뻔합니다. 기승전결을 이어주는 사이사이 연결고리가 어디서 한 번쯤 본 내용 같아요. 대표 눈에 들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수습 직원이 마침 시위대에 시비 걸던 대표 대신 뒹굴었고, 100억짜리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인형탈 사기극을 알게 된 사육사(전여빈)의 전 남친은 이를 빌미로 돈을 뜯고, 나중 가서는 로펌 대표한테도 일러바치고요. 동물원 매각을 전하려는 날 하필이면 취임 75일 파티가 열립니다. 


이 뒤에 나올 장면이 중요한 내용인데, 연결고리부터 식상해버리니 중요한 장면도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거죠.


뻔하지 않았던 동물의 배우 연기(?)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화는 결말조차 애매하게 매듭짓고 끝나버립니다. 주인공과 수의사는 어떤 관계를 맺었길래 단둘이 캐나다로 가 '검은 코'를 만났으며, 골프장을 포함한 대규모 유원지를 짓겠다던 대기업 딸내미(한예리)는 무슨 이유로 뜬금없이 자연 생태 공원 만들게 됐는지, 설명이 없어요. 


초반에 지네 그룹은 B2C 비율이 80%라며 자기는 경영을 다르게 할 거라고만 했을 뿐, 마지막엔 어림잡아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일말의 고민 없이 오케이 해버립니다. 그리곤 전 직원을 자기 회사로 취직시키며 인권과 동물 보호에 앞장서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다를 게 없습니다. 네이버 드라마 사전에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주로 사용한 연출 기법이라고 하네요. 고대부터 봐온 뻔한 결말이라는 말입니다.


2) 등장인물

등장인물 이야기를 해볼까요. 영화에는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대세 배우 안재홍을 시작으로 강소라, 박영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성오, 충무로 기대주라는 전여빈 배우까지. 그러나 막상 영화 속 그들은 각자 캐릭터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기가 부족해서는 아닌 것 같고, 캐릭터의 매력이 애매했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고생하는 배우들

애초에 줄거리의 초점이 '동물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연기하는 동물'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 별 서사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매각 후 로펌 복직했다가 사고 수습하듯(수습을 오래 해서 그런가...) 나타난 주인공과 병 난 북극곰 자기가 고쳐보겠다고 억지 부리는 수의사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에 띄던 장면

그렇담 조연은? 백날천날 동물원 말아먹은 놈이라고 자책하는 구 동물원장(박영규), 후배 사육사를 정말 좋아하는 선배 사육사(김성오), 쓰레기 같은 놈 잘못 만나서 돈 잃고 사랑 잃은 후배 사육사뿐입니다. 동물을 사랑하고 의리가 있다는 점 말고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네요. 차라리 로펌 대표(박혁권)가 등장 시간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곰한테 물어 뜯기고 넋 나간 듯 진짜 곰 같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였죠. 한예리 배우의 쓰임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든가, 적극적으로 방해하다가 착한 편이 되는 입체적인 캐릭터면 어땠을까 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소설 구성의 3요소 중 첫 번째도 인물이고요. 매력 있는 인물들이 극 전개를 끌고 가야 이야기도 재미있죠. 그런데 등장인물이 애매해요. 인물을 파악할 수 있는 성격, 배경 같은 것들은 주어지지 않고, 극 전개에 필요한 부분만 알려주니 인물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갑자기?)

고생 많았어유 ㅠ_ㅠ

3) CG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CG가 나옵니다. 북극곰 '검은 코'가 등장하는 부분인데, 아... 이게 못 만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세대입니까. 10년 전부터 원빈이 CG였음을 확인하고(아닙니다), 아이언맨이 하늘을 나는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란 말입니다. 예산 문제일 듯싶은데 분명 영화를 보는 내내 슬쩍슬쩍 거슬렸던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 진짜 곰일까, CG일까, 인형 탈일까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도드라지는데, 캐나다(라고 주장하는) 북극곰 센터에서 곰 친구들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어요. '검은 코'가 등장하고 오랜 가족이었던 수의사가 알아보는 감동스러운 장면에서 전혀 그 감정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곰이 그렇게 어색하게 걷는지 처음 알았네요....




4. 그럼에도 좋았던 점

생각 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였습니다. 평소 강아지, 고양이 카페나 라쿤 등 동물 카페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동물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동물을 좋아하는 터라 S사 'XX농장' 같은 프로그램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동물원은 사육사들의 애정과 관리 아래 유지되는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물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 동물원장의 대사가 참 와 닿았습니다.(틀릴 수 있음)

누가 떠나지도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는데 쉬지도 못하고 미칠 것 같더라고.


   누군가 나를 계속 쳐다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겠죠. 야생의 습성이 묻어 있는 동물이라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지켜보는 내내 신경이 곤두서고 날카로워져서 매사에 예민해질지도 몰라요. 더 나빠지면 정신병으로 나타나고요. '검은 코'의 이상 증세도 결국 사람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자 입장에서 본다면 대략 이런 느낌이겠죠.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보호의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는가, 인간 외의 종과 구별되는 인간의 우위는 실제 하는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듯싶습니다.




5. 마치며

너무 안 좋은 평만 해서 밑밥을 조금 깔자면, 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웃고 빵빵 터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글을 쓰는 본인도 몇몇 장면에서는 그들과 함께 웃었고요. 특히 편의점 고릴라 신은 정말.... 다만 그런 장면들을 제외하곤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영화라 부정적인 평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고편과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만 보고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일까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에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봐도 우ㅅ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도 재밌었던 장면
명배우 박혁권님

혹시, 정말 혹시나 그럴 리 없겠지만, 

이 글을 읽고 영화 관람을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그럼에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코미디 영화 특유의 밝음이 두드러지고 과장된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보고 떠날 수 있는 영화로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와챠나 넷플릭스, IPTV에 올라온다면 또 한 번 볼 의향이 있는 영화입니다.

이 아이는 커서...
사자가 됩니다.

또 제가 뭐라고... 이런 끄적임에 현혹되지 말고, 직접 보고 각자만의 감상평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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