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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Apr 28. 2024

더 먹고 싶어 할 때 주시면 안 돼요

배고파하는 신호


  처음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목차 설정을 했다. 이런 것도 먼저 적어야 하나 싶었는데 연재하면서 수정이 가능하다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묵히기를 몇 번 거듭하며 목차를 적었다. 아마 그때가 구정이 지나고 2월 중순이었으니 애월이가 아직 2개월령이 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고작 두어 달이 더 지났을 뿐인데 체감하는 과거의 거리는 1년도 더 전인 것만 같다. 이 글의 제목인 <더 먹고 싶어 할 때 주시면 안 돼요>는 그때쯤 정말 신경 쓰였던 수유량과 수유텀에 대해 1차 영유아 검진을 받으며 소아과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렇다. 지금은 <배고프면 = 먹인다>는 간단한(?) 공식 하에 움직이지만 그때는 그게 아니었다. 이런 것도 신경 썼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글을 적는다.



  「배고플 때 충분히 먹이세요」 출산 전까지 열심히 들었던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배고파할 때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신호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아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이런 몸짓이나 표현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24시간 모자동실을 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으음. 아기를 맡기고 산모는 쉬는 일반적인 산후조리원에 가보질 않아서 그 말이 맞다고는 못 하겠지만(경험해 보지도 않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24시간 모자동실을 했다고 해서 아기의 배고픈 신호를 바로 알아챌 수는 없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신생아 때는 <일어난다 = 배고프다>는 공식이 통하기 때문에 뭐가 배고픈 신호인지 알기 어렵다. 울음소리로 구분한다는 말도 있던데 그것은 순수하게 문학적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기가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맘마를 먹인다. 보통 맘마를 먹이고 나면 트림을 하고, 깨어 있는 시간 없이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저귀를 먼저 체크하게 된다. 잠들었는데 기저귀를 갈면 깨웠다고 아주 서럽게 울기 때문에(지금이야 귀여운 칭얼거림이지만 그때는 진땀이 소로록)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를 말로 달래며 얼른 기저귀를 가는 것이 낫다. 그렇게 울어도 먹는 순간부터 바로 진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렇게 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애월이의 경우는 배고프면 일어나기도 하고 한 2~3주쯤부터는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면(갈수록 들으라는 듯이(?) 크게 쩝쩝거렸다) 우리는 애월이의 맘마를 준비했고 거의 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쩝쩝 소리가 더는 배고픔의 신호만은 아닌 순간부터였다. 자다가 깨면 먹는 건 여전했지만 깨어 있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쩝쩝거리는 소리는 두 가지 경우로 분화되었다. 그냥… 본인이 쩝쩝대고 무언가 빨고 싶어서(빨기 욕구) 그럴 때와 배고플 때. 애월이가 쩝쩝대는 소리만으로 배고픈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웠다. 빨기 욕구 때문일 때도 맘마를 주면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과식을 하게 된다. 과식의 끝은 배앓이(영아산통). 아기는 목이 쉬어라 울고, 기저귀도 아니고, 맘마는 당연히 아니고. '이유 없는' 울음에(실은 너무나 분명한 이유인데도) 부모로서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무력감과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뒤엉켜 눈물이 난다.



  1차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소아과 선생님은 애월이의 수유량과 수유텀을 물어보았고 앞으로의 수유량에 대해서 제목의 말을 해주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애월이가 배앓이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딱 두 번 겪었는데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 말을 알아들었다. 「보호자가 알고 있는 배고픔의 신호가 이제는 꼭 배고플 때만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였음을. 1회 수유량을 늘릴 때와는 다르다. 정해진 양을 먹고 더 먹겠다고 표현하면 조금 더 타주면 된다. 하지만 이건 먹고 나서, 수유텀이 아직 안 된 것 같은데 '배고파하던' 신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울리지 않고 싶지만, 맘마를 주지 않고 배고프다고 울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아기의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혼란은 계속된다. 하지만 점점 그 혼란스러움이 줄어드는 때가 3개월 전후인 것 같다. 그래서 백일을 챙겼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도 백일 즈음이 되어야 이 유일무이한 존재에게 적응을 하고, 아기에게도 점점 생활의 리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밤엔 길게 푹 자고 일어나 맘마를 먹고 좀 놀다가 다시 자는(먹놀잠, 먹잠놀, 먹놀먹잠 그때그때 다양하다), 일정한 일상 패턴이 자리 잡힌다. 그리고 이쯤 되면 아기가 배고파하는 걸 양육자가 확실하게 캐치해 낼 수 있다. 시간 간격에 대한 감과, 백일 동안의 데이터가 쌓임으로써 생긴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너 배고프구나. 애월이는 80일 즈음부터 울음소리로도 구분이 가능했다. 울음의 시작부터 정말 정말 서럽게 울면(거짓말 안 하고 「흐어어엉」 운다) 배고픈 것이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안 먹으려고 해서 문제다. 이전에는 주면 배앓이를 하더라도 꿀떡꿀떡 잘만 먹더니 이젠 주변도 구경해야겠고(눈이 밝아졌으니), 사람 소리가 나면 그곳도 쳐다봐야 하고, 젖병도 탁탁 쳐봐야겠고, 엄마 아빠 옷도 잡아봐야겠고, 먹으면서 뭐라 뭐라 말도 해야겠고. 이 녀석, 할 일이 많아져서 먹지를 않는다. 심지어 분유가 식었다 싶으면 혀로 밀어내고 안 먹는다. 뜨끈하게 데워주면 참 잘도 먹는다. 언제 이렇게 자기표현을 다할 만큼 컸는지. 100일 즈음부터 몸무게가 도통 안 늘어서 신경이 쓰였다. 기저귀 3단계의(어떤 것은 4단계) 시작인 7kg을 넘기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었나. 키 대비 몸무게는 태어났을 적과 비슷하지만 아무튼, 조만간 4개월 예방접종을 맞으러 가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야겠다.



  애월이가 자기표현을 할 정도로 성장한 만큼 엄마인 나도 덤덤해지는 방향으로(덧붙여 인내심도) 무척 성장했다. 이전과 내가 같았으면 잘 안 먹는 4개월령의 애월이를 보면서 산 넘어 산이라고, 왜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생기냐며 괴로워하고 종종거렸을 텐데 이제 그런 모습은 사라졌다. 덤덤해지니 좋은 점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덜 쓰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를 향한 관심이 줄었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관심은 여전하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더 빨리 캐치한다. 여태껏 해내왔다는, 나의 능력 있음을 믿게 되었다는 것. 나의 덤덤함은 나를 향한 신뢰의 한 모습이다. 나를 믿을 수 없어 강박과 불안에 시달려왔던 내가 힘을 푼 눈을 하고 나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니. 애월이가 키워준 보답으로 엄마에게 주는 큰 선물일 것이다.



  악마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악마도 나를 본다는데,

  천사를 오래 들여다보니 그 천사는 내게 와 깃들었다.



풍경 감상 중인 천사


24.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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