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옷과 장난감
아기를 낳기 전 맘카페에 아기옷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와닿지가 않았다. 아무리 검색해서 찾아 읽어도 안개로 둘러싸여 길이 어디로 나있는지 알 수 없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느낌이었다. 이미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 있던 올케 언니나 형님에게 물어봐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아마 그 당시 내 머릿속엔 육아와 관련된 경험을 쌓아 놓는 창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아' 하면 '기'라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듣고도 몰랐던 무지의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하다.
우리는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 퇴원 후부터 입힐 애월이의 옷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에 다녀와서부터 육아를 했던 다른 엄마들의 말을 이해 못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기의 옷은 일반적으로 60부터 시작하고 60, 70, 75(65는 못 봤다), 80, 90… 의 순서로 나아간다. 60 사면 얼마 못 입힌다고 80 사래서 80 샀다가 후회했던 사람 중 하나. 만약 누가 나에게 아기옷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는다면 아기의 성장과 특성과 당시 계절에 맞게 사라고 알려주고 싶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비록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할지라도) 아기의 성장과 당시 계절과 실내 온도가 모두 고려 대상이다. 출산 직후 준비해 놨던 애월이의 옷은 60짜리 옷 네 벌, 그리고 80짜리 옷 네 벌이었다. 60짜리 옷은 각각 긴팔 배냇수트, 배냇저고리 2벌, 배냇가운이었고 80짜리 옷은 당시가 겨울이라 전부 긴 옷이었다. 애월이는 과연 다시 겨울이 돌아오는 돌 즈음에 80 긴팔을 입을 수 있을까? 4개월 차를 이틀 앞둔 지금 80이 딱 맞는데 과연 다음 겨울에 편하게 입힐 수 있을까. 내 견해는 부정적이다.
신생아에게는 60짜리 옷도 크다. 그리고 애월이는 이 옷들을 생후 2개월까지 잘 입었다. 키 대비 몸무게가 56 퍼센타일로 태어난 애월이는 몸무게도 훅, 키도 훅 는 적이 있지만 2개월 즈음에 60 옷이 예쁘게 잘 맞았다. 물론 용쓴다고 힘주면 똑딱이 버튼이 투두둑 풀리기도 했지만. 기록을 보니 80일 차에는 60은 이미 졸업했고 70, 75를 긴팔로 입히고 있었다. 80은 여전히 컸는데 3개월 차가 되면서 날이 갑자기 더워졌고, 애월이의 몸에서 땀이 송골송골 나길래 더는 입힐 수 없었다. 지금은 90 사이즈 7부 밤부 매시 옷을 사서 긴팔처럼 입히고 있다. 환절기라 덥다고 반팔 입히기도 그렇고, 면으로 된 긴팔을 입히기에는 덥고.
그러니 그때그때 맞춰 사 입히면 되는 것 같다. 신생아 때는 엄마인 내가 미숙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옷 갈아입힐 일이 많아서 60 사이즈 옷이 더 필요했었다(안 사고 버티면 버텨진다). 지금도 애월이가 하루에 최대 세 벌 정도를 입기 때문에(목욕 후 한 벌, 아침에 쉬야가 새서 한 벌, 게우는 등 중간에 이유가 생겨서 또 한 벌) 90 사이즈 여섯 벌로는 타이트하게 운용되는 편이어서 좀 더 사야 고민이 된다. 물려받은 옷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입을 수 없거나 돌 이후에나 입는 옷들이라 보관만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5단 서랍장을 하나 더 사야 했다. 애월이의 옷을 보관하기 위해서.
앞으로 애월이가 크면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118일 차) 장난감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몇 가지 유용한 장난감은 당근으로 거래하거나 가능하다면 (서울의 경우 구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대여소에서 빌리면 좋다. 아기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뜸 새 장난감을 샀다가 여지없이 당근행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조카와 애월이의 나이 차이가 한 살이기 때문에 친정 부모님 집을 창고 삼아 물려받아 쓰고 다시 갖다 놓고 있다. 그리고 구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대여소에 연회비를 내고 필요한 장난감은 틈틈이 빌려오고 있다.
우리 집이 작기도 하고, 공간에 물건이 가득 들어찬 꼴을 못 보는 성격인 데다 아기 물품은 색이 알록달록해 미적으로 별로라는 이유로 애초부터 장난감을 많이 들일 마음이 없었다. 또 그런 점이 아기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난감이 가득 쌓여 있는 집이 아기에게 좋은 환경일까. 나만 해도 세일러문 인형과 인형 냉장고만으로 몇 년을 동네 여자 아이들과 진이 빠지게 놀았고(결국 세라의 긴 머리를 깔끔하게 잘라주겠다며 싹둑했다가 흥미를 잃었다) 집에는 그것 말고 장난감이라곤 그림보다 글밥이 많은 전집이 전부였기에 그걸 닳을 때까지 읽으며 놀았다.
그래서 굳이 장난감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보면 집이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다 가지고 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집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장난감들. 그걸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너무 '라떼' 시절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풀소유의 세상에서 풀소유를 모른다고 하면 주변에서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진 않을까. 일상의 경험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지 않을까. 남들은 다 하는데 안 하는 내가 고집스러운 건 아닐까. 내가 두눈박이 세상의 외눈박이인지(아니면 외눈박이 세상의 두눈박이인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장난감을 더 사들일까?
장난감을 많이 사들이건 사들이지 않건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 잘했다고 말할 뜻은 전혀 없다. 각각의 사정과 뜻에 맞게 하면 될 일. 다만 나는 아이들보다 우리 부부의 생활이 우선이고(아주 아기일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공간이 혼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싫으며, 그리고 아기가 원하는 것이 수많은 장난감 사이에서 혼자 노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애월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나는 부모님과 무엇이든 같이 하길 원했다. 문제의 틀린 답을 부업하느라 바쁜 엄마가 지우개로 지워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방에 가서 너 혼자 해!」라고 귀찮아해서 뜻대로 다 되진 않았지만.
나는 애월이도, 우리에게 태어날 둘째와 셋째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서 아이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엄마로서 나의 자세가 되지 않을까. 중학생만 되어도 슬슬 부모의 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갈 테니 한 아이당 십여 년 정도 남은 순간을 소중히. 내가 엄마가 되었기에 젊은 시절 우리 엄마의 마음을 저절로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지만 방으로 혼자 들어가던 그 순간은 최소 삼십 년 동안 쓰라린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 몰랐기에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상처일 필요가 없는 기억이었기 때문에, 혹시 아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게 되더라도 충분히 부드러운 말로 설명해 주자 마음먹는다.
장난감에 관해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의 성공이다.
일요일을 30분도 안 남은 시점에야 글을 발행한다. 낮에 블로그에 잠깐 일기를 올렸던 것 빼고는 시간이 없었다. 낮잠을 세 시간이나 잔 건 안 비밀. 아무튼 허겁지겁이라도 써서 발행일을 맞췄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미리 쓰고 묵혔다가 좀 고쳐 썼으면 날 것의 티가 덜 나서 좋았으련만. 저번에는 <미니멀리스트의 수난 1> 글이 다음 어디엔가 떠서(다시 못 찾겠다) 조회수를 만 건이나 기록했다. 내 글이 도움이든 즐거움이든 되었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다들 많이 봐주셨기에 감사한 일이다.
24. 0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