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까지 이런 물건들이 필요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그렇게 하겠다고 정한 적은 없지만 성향이 그렇다. 물건을 잘 사지도 않고 한번 사면 대체로 그 물건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쓴다. 그래서 우리의 보금자리인 17평 아파트가(실평수 약 12평) 전혀 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아기는 자기 먹을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지. 그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도 다 가지고 들어오는가 보다. 최대한 물건을 들이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집은 애월이의 물건으로 가득 차 포화 상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한 80%?). 아무튼 우리 집 상황에 대한 푸념(?)은 이만하고, 애월이를 키우며 필요해서 썼던 물건들에 대해 몇 개 적어 보고자 한다.
갑자기 분유 수유를 하게 되어 급히 준비하게 되었다. 친정집에 있던 티 포트를 사용하다가 분유 포트처럼 100도에서 2~3분 더 끓여 주는 기능이 없어서 당근에서 구매했다. 새 물건이 좋기야 하겠지만 굳이 아직도 제기능을 하는 물건을 버릴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연마제 등을 제거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 당근으로 구매했던 까닭 중에 마음에 들었다. 아마 우리가 셋째까지 낳는다면 계속 쓰지 않을까.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육아 필수템이다. 분유를 타주는 기계가 있기도 한데 나는 내 손으로 분유를 타고 싶었고(계량스푼 깎는 게 어렸을 때부터 재밌었다), 또 1년 전 미리 써본 사람의 말이 유효했다.
눈탱이를 맞을 뻔했던(?) 일이 기억난다. 친구와 함께 간 베이비 페어에서 "베이비 수전"이란 이름으로 꽤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임신했을 때 이게 꼭 필요하다고 들어오기도 했고 같이 간 친구도 이건 필수라면서 권했기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살 뻔했다. 우리나라에서는(다른 나라 상황은 모름) 아기라는 키워드만 들어가도 몇 배는 비싸지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양치질 수전으로 사면 같은 기능에 저렴하기는 무지 저렴하다. 이걸 설치해 놓으면 아기가 응가를 했을 때 씻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저렴한 가격에 들이는 편리함이랄까.
애월이는 속싸개를 빨리 풀었다. 부모인 우리가 속싸개를 더 불편해해서(?) 빨리 벗기고 스와들업을 입혔다. 사진에 담긴 정보를 보니 친정집으로 오자마자부터 스와들업을 입혔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가서 후회했다. 모로반사를 비롯한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스와들업만으로는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50일 정도까지는 속싸개를 쓰고 그 이후에나 스와들업을 쓸걸, 하고 아쉬워했다. 또 한 가지 단점으로 애월이는 답답한 걸 싫어하는 아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잠잘 때 쓰기 좋은 좁쌀 이불이 소용없었다. 2개월 차부터는 힘으로 들어내 버렸고, 세 달을 한결같이 싫어했다. 그와 더불어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것도 싫어하게 되었다.
둘째를 낳으면 꼭 정석의 테크트리를 타리라. (속싸개 → 스와들업 → 스와들미 → 팔 한쪽 빼기 → 무장 해제(?))
애월이는 타이니 모빌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 한 살 조카가 쓰던 타이니 모빌을 물려받아 썼는데 가만히 누워 모빌을 바라보기만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든 놀라고(?) 옆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며 같이 보기도 했는데 애월이가 좋아하는 건 사람의 얼굴,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었다. 타이니 모빌은 애월이에게 폭발적인 옹알이만을 선물하고(엄마가 뭐라 뭐라 하니 자기도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다) 애월이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시 어떤 장난감이든 애바애인 것 같다. 함부로 사면 안 된다. 그에 반해 아기체육관은 111일 차인 지금도 뚱땅거리며 잘 가지고 놀고 있다. 조카는 아기 체육관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니 아기들이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역방쿠는 필요 없었던 물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혀 역류 방지가 안 될뿐더러 오래 앉힐 수도 없다. 신생아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안고 있든지 똑바로 눕히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차라리 터미타임을 일찍부터 시켜서 목을 가눌 힘을 키운 다음에 바운서에 잠깐 앉히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애월이는 스와들업 입혔을 때부터는 이미 터미타임을 시키고 있었고(생후 5일경)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빠르게 목을 가누기 시작했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바운서도 너무 푹 들어가는 바운서는 아기의 목이 앞으로 기울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베XX뵨 바운서를 당근에서 구매해서 뽕을 뽑는 중이다.)
비타민D3는 과연 장기 복용 시 안정성이 입증되었을까? 늘 의문이긴 한데(이것도 영양제 유행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먹이고 있다. 그에 반해 유산균은 먹이지 않았는데, 애월이가 아주 예쁜 모양의, 잘 묻어나지도 않는 황금 응가를 누곤 했기 때문이다. 녹변을 보기 시작했어도 그것도 정상이라 하여 유산균을 먹이지 않았었는데 지독한 냄새(녹변을 처음 볼 때부터 그랬다), 점점 묽어지는 양상, 4일 1응가로 인한 잦은 응가 파티 때문에 유산균을 먹이기 시작했다. 일단 묽어지는 양상과 4일 1응가는 잡았는데(2일 1응가) 과연 어떻게 될지?
아기를 목욕시킬 때는 대야가 두 개 필요하다. 그래서 아기 욕조를 두 개 쓰든 아기 욕조 하나에 대야를 하나 쓰든 부모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물려받은 아기 욕조는 하얀색의 Made In ITALY라고 적혀 있는 것인데, 이게 앞을 씻기기는 좋아도 등 씻기기는 쉽진 않았다. 목을 가누면서는 많이 편해졌지만(사실 목을 못 가눌 때는 뭐든 편하겠느냐마는). 헹굼용 대야는 집에 쓸 만한 게 없어서 근처 철물점에서 하늘색으로 큰 걸 하나 샀다. 애월이가 (나 혼자만 있을 때) 응가 파티를 벌일 때도 넉넉한 품으로 위안이 되어 주던 하늘색 대야. 여름이 되면 앉을 수 있을 테니 여기에 장난감을 띄워서 물놀이시켜 주기에도 좋을 것 같다.
슬링, 신생아용 아기띠, 힙시트가 있는 아기띠까지. 하지만 100일까지는 그다지 쓸모들이 없었다. 집 밖에 나갈 일이 잘 없기도 하고(병원 정도?) 집에서 이걸 차자니 너무 번거로웠다. 차라리 안는 게 나았다. 그리고 힙시트가 있는 아기띠는 4개월 넘어서나 착용을 고려해 볼 듯하다. 그전까진 다리를 벌릴 수가 없어 그림의 떡이다. 안고 있을 때 엉덩이 받침용으로 쓸 수 있긴 하지만 자주 안았다 내렸다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쓰기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100일 즈음이 되면 유아차를 탈 수 있게 되면서 더욱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포대기를 더 좋아한다. 아기띠는 아기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보는 앞보기를 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포대기는 아기의 시선과 손이 훨씬 자유롭다. 이제 애월이는 목을 완전히 가눌 수 있기 때문에 조만간 친정에 있는 포대기를 가져올 생각이다.
(계속)
24. 0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