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니 May 05. 2024

모성의 축복

엄마의 이야기 1


  애월이의 깨어 있는 시간이 갑자기 3시간이 되었다. 어젯밤 일시적으로 그러겠거니 싶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똑같이 3시간이나 깨어 있었다. 애월이의 상태에 적응이 되려 하면 달아나듯 바뀌어 버린다. 「엄마, 나 잡아봐라!」 나의 체력이 부족한 건지, 육아가(+집안일) 원래 다 이런 건지. 아마 경험에 따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이 시점엔 잘 모르겠다. 그냥 힘들다(웃음). 애월이는 내 얼굴만 봐도 행복해한다. 나도 물론 행복하다. 허했던 내 마음을 완벽하게 채우는 충만함이다. 그런데 지루하고 권태로울 때도 있다. 무시하고 덮어두고 싶었던 이 감정을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읽으면서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권태로워도 쇼는 계속되는 법이다. 나는 또다시, 새롭게 바뀐 애월이의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변화를 준비한다. (재밌는 놀이라도 반복하면, 애월이도 마찬가지로 지루해하는 것이 포인트.)



  애월이는 이제 쪽쪽이를 물고 잠들기를 거부한다. 잠 올 때가 되어 엎어 주면 혼자 옹알옹알 거리다가 잠든다. 거참 누굴 닮았는지(웃음) 시종일관 쪽쪽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관성을 보여 준다. 그래, 너는 머미쿨쿨도 좋아한 적이 없지. 장난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일 좋아하는 건 엄마와 아빠. 같이 얼굴 보고 놀고 만지고 놀고 안고 돌아다니면서 놀고, 아무튼 함께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아니다. 애월이 이야기는 육아 일기에 적고, 여기는 내 일기를 적어야겠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애월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주절주절 적으니, 내 마음속에는 정말 이 친구로 가득한 모양이다.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웃음)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모성의 축복을 가득 받고 있는 것을. 오죽하면 내 인생의 최대 목적이었던(그렇다고 할 수 있었던) 인정에 대한 욕구가 싹 없어졌을까.



  나는 친정 엄마가 오빠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질투했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춘기 때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들으며(엄마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비교하고 울고 슬퍼하곤 했다. 인정에 대한 욕구, 또는 사랑에 대한 욕구라고 나는 그것을 정의했다.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을 못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나 자신을 늘 가련하고 불쌍한 아이라고 취급하는 서사에 빠져 실컷 잘도 울었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커가면서 인정에 대한 욕구로 바뀌었다. 나의 능력, 나의 재능, 나의 비범함까지(이렇게 적으려니 다소 멋쩍다)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성으로부터 받는(이성애자이므로) 사랑이 아니라 인정 그 자체였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기를. 그러면 나는 공정함과 정직함으로 이 사회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텐데. 나는 한때 젊을 때부터 정치인이 되어 볼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무심결에 하던, 또는 하는(요즘은 왜인지 오빠보다도 내게 더 잘해주시는데,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는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라고 인식하시는 것 같다) 오빠와의 비교는 나에게 상처가 되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그 기억이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콕콕 찌를 때면 눈물이 많이 났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그런 말이 나에게 의미 있게 들리지 않는다. 상처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애월이를 낳고, 벽에 대고 이야기하던 것 같은 시기를 지나 애월이와 교감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게 생긴 변화다. 더 이상 엄마의 인정이 중요하지도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은 이전의 중요한 가치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요가 없어졌다. 나에게는 남편과, 나, 그리고 애월이라고 하는 가족이 제일 중요해졌고, 애월이에게 조건 없이 쏟아붓는 사랑이 나를 회복시키는 원천으로 다시 돌아와, 지난날의 상처나 아픔을 아무것도 없었던 무(無)의 순간으로 돌려놓는다.



  여자로 태어나서 참 행복하다는 걸, 다행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느꼈다. 나는 이것을 책에서 나온 단어를 써서 <모성의 축복>이라 부른다. 심신이 고되고(스타벅스에서 적은 인원으로 시간당 100만 원 이상씩 러시를 쳐낼 때보다 힘들었다) 나의 생체 시계는 앞으로 훅 가버렸지만(불가역적인 노화), 정신적으로 놀라운 회복력(과거까지 축복을 내리는)과 강인함, 인내심을 선사해 준다. 그리고 더 깊고 넓은 마음의 시야는 덤으로 준다. 괜히 불가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보살'이라는 칭호를 내리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아. 물론,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이라 하셨으니 아이들이 이제는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가 홀로서기를 할 때 잘 보내줘야 할 텐데, 잘할 수 있을까? 기쁨으로 충만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떠나보낼 것을 늘 준비한다. 이 덩어리마저 기쁨으로 물들지 않도록 예비한다.



  엄마가 큰 재산을 증여해 주겠다고 말했을 때 거절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뭔가 신경이 쓰이시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자잘하게 더 해주려 한다. 아니, 내가 어렸을 때 좀 그러지 그랬어요!(웃음).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워 보니 엄마의 선택이(「돈을 벌어야 한다」) 이해가 된다. 아주 충분히. 어린 나는 이걸 몰랐구나, 알 수도 없었겠지만 인생에 속은 기분도. 하지만 아무튼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많이 미워해 보았기에 미움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도 알고, 질투해 보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무용한지도 안다. (아직 열등감과 우월감, (특히) 화에 대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하지만.) 엄마가 신경 써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 마음이 얼마나 독립적인 성향이 될 수 있었는지도, 감사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감사하다. 이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불운하고 비참했던(그렇게 느꼈던) 과거가 깊은 통찰을 아로새겨 주는 망치질이 되었을 줄이야.



  그럼에도 나는 엄마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아기들은 분명 창의적이고 뛰어나지만, 단면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의 생각 깊은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빗대어 생각해 보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돈은 좀 덜 벌더라도 나에게는 아기의 정서적 안정이 더욱 중요하다. 돌아 돌아 구경하며 가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이지만, 또 자신의 생존력을 증거 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는 과정 중에 아이가 더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 좌절할 수도 있고(내가 까딱 잘못해서 자살했으면 지금의 이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겠지), 굳이 생명력을 증명하면서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것보다 안정된 토대 위에 성공도 좌절도 느껴가며 자라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한다.



24. 05. 05.



이전 11화 더 먹고 싶어 할 때 주시면 안 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