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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Dec 21. 2022

왜 미국에 사느냐면요

아이를 미국에서 키우고 싶은 이유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에 로그인했다.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던 작가님들의 글을 피드에서 제목으로만 확인했다. 읽어보자니 너무도 많아서. '작가의 서랍' 메뉴를 클릭하니 끄적여놓고 발행하지 않은 글들이 있다. 한동안 코딩만 열심히 했더니 감수성이 떨어졌는지 구구절절한 예전 글들이 과연 내 글인가 싶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아이는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다. 같은 미국이어도 학교마다 정책이 다르겠지만 아이의 학교는 3학년부터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다. 이제 거의 30년 전, 내가 한국에서 초등학생일 때에는 최고 학년인 6학년에 한해 선거 유세와 투표를 거쳐 학생회단이 결정되었는데, 이곳은 3, 4, 5학년이 학생회 참가 의사와 포부를 밝히는 글을 제출하면 그중 반 별 쿼터만큼 랜덤으로 뽑아 학생회가 결성된다. (6학년부터는 중학생이다. 중학교의 학생회는 이 곳 역시 선거 유세와 투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아이는 3학년 때에도 학생회에 지원했으나 당첨되지 못하였고, 이번에는 운 좋게 와일드 카드로 막판에 뽑혀 합류하였다. 학생회 전원은 매주 한 번씩 교장 선생님과 회의를 통해 학교의 차후 일정이나 규칙 같은 것들을 논의한다. 교장 선생님과 회의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전해주는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미국 살이 초창기에 들었던, 당시 지인의 친구의 딸인, 그러니까 나와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어떤 아이, A의 일이 떠오른다.


A는 미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낯선 한국 교실에서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며 아이들 앞에서 공지를 했다. 이를 듣고 A는 자신이 생각하는 새 규칙의 단점과 보완점을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그럼 니가 교장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해보든가."


한국 문화를 아는 사람이면 저 말의 의미를 안다.


어른들이 이미 정해놨는데, 그냥 따라야지.
왈가왈부할 거면 니가 직접 교장한테 얘기해봐. 할 수 있겠어? 못 하겠지?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 너한테 발언권 있다는 착각은 그만 하고.


하지만 A의 영혼은 아직 미국 아이였다. 그래서 A는 담임 선생님의 핀잔이 핀잔인 줄 모른 채 쉬는 시간 동안 교장실을 방문했고, 교장 선생님에게 새 규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황당하다고 여긴 교장은 이 사실을 A의 담임에게 전했고, 그러자 담임은 A의 부모를 호출하여 A에게 주의를 줄 것을 당부했다. 


만약 A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공격 모드에 돌입했을 테다. 애초에 아이 의견에 부적절한 언어로 대응한 것이 당신인데 누가 누구한테 주의를 주라는 거냐고, 당신은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이들에게 말하는 법같은 건 배우지 못했느냐고, 제대로 못 배운 것 같으니 다시 돌아가서 말본새라도 배우고 오라고, 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런 요지의 의사를 전했을 테다. 하지만 A의 부모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감히 그랬다가 A가 선생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굳이 학생회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미국 아이들은 교장과 교류가 많다. 교장은 등교 시간 내내 교문 앞에 서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굿모닝' 인사해주는 사람이고, 축구나 수학 동아리 등 방과 후 활동 중 하나를 담당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쉬는 시간 놀이터에서 혼자 동떨어져 우는 유치원생(한국이라면 1학년 신입생)에게 고학년 언니를 '버디'로 지정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할로윈에 호박 분장을 하고 함께 퍼레이드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학교 바자회에서 직접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며, 문제 행동이 적발되었을 때 이후의 훈육 조치를 담당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국 아이들은 수줍은 성격이 아니고서야 교장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가 어렵지 않다. 학생이 교장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행동이 특별히 맹랑한 짓이 아니란 거다. 아무리 미국 공교육이 손가락질을 받고,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을 칭찬했다 해도, 내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미국 학교의 리더십은 하루도 빠짐 없이 눈 앞에서 행동을 한다. 저기 교장실이라 불리는 어떤 개인 공간에 머물다가 잊을만 하면 뒷짐 지고 나타나 훈계를 늘어놓고 사라지는 범접 불가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대소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내가 총 책임자이므로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제일 많이 일해야 한다'는 정신을 행동으로 분주하게 보여주는 존재다.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자 어린 학생들과 매주 회의를 하는 시간이, 효율을 중시하는 나라에선 무쓸모로 보일 테지. 그래서 그런 나라들은 의견 개진, 의견 조합 따윈 필요 없는 일방향 주입식 교육을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학업 성취도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 고등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대학 이후로는 인재 유출이 증가한다는 한탄이 많다. 어느 일간지 기사에서는 한국과 미국 간 금전적 대우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라는데, 실상은 비단 금전적 문제뿐이 아니다. 나의 경우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은 위계질서다. 물론 미국에도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아랫사람이라면 역시 윗사람의 눈치를 본다지만 그래도 차이 나는 부분은 '윗사람으로서의 태도'다. 좀 더 구체적으로 꼬집자면 한국인은 '윗사람으로서 대접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강하며, 그 심리가 똥물로 작용하여 조직을 흐린다. 그 조직이 학교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한국에서 인하우스 통역사로 근무할 때, 어느 전무가 해외 실사에 통역이 필요하다 하여 어떤 실사인지 사전지식도 없이 부랴부랴 미국으로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실사단은 엔지니어들까지 포함하여 스무 명 남짓했는데 낮 시간 동안 미국 측과 회의를 마치면 호텔로 돌아와 내부 회의를 이어가곤 했다. 전무는 내부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모르는 정보가 많았고, 미국과의 회의에서는 질문조차 없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전무는 실무진보다 덜 알고 덜 일했고, 그럼에도 좀 더 알고 좀 더 일해보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마땅히 아랫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떠먹여주길 바라는 애어른이었다. 가만히 앉아 고개만 끄덕거리는 무심한 얼굴에 현기증마저 났다. 


그와 비슷한 류의 윗사람들을 한국에서 많이도 만났다. 본인의 일은 최소한이면 좋겠고("이 나이/위치에 내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해?"), 아랫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해 눈부신 성과를 내면 좋겠고('니들이 잘해야 내가 면이 서지!'), 언제든 누군가 비위를 딱딱 맞춰주면 좋겠는('젊은 사람이 센스가 있어야지!') 사람들. 직장에도, 가정에도, 학교에도 있다. 개무시할 수 있으면 좋지만 장유유서라 세뇌 받은 한국 젊은이들은 그들을 적당히 맞춰주는데, 적당히 맞춰주는 데에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법이다. 그래서 윗물이 똥물이면 아랫물도 탁해진다.


물론 세상 어디에나 꼰대는 있고, 미국에도 꼰대 리더가 있을 터. 하지만 적어도 시스템으로라도, 적어도 문화적으로라도, 윗사람일수록 먼저 일하고, 윗사람일수록 많이 일해야만 하는 곳이 좋다. 그것이 내가 보고 싶은 리더십이고, 내 아이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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