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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09. 2023

교장선생님은 무얼 하셨나요

한국의 교권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

얼마 전 방송한 <PD 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영상이 유튜브 피드에 뜨길래 클릭해보았다.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교사가 단순히 지적을 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내렸는데 그것이 아이 또는 부모의 반감을 사 아동학대로 고소된 케이스들이었다. 영상 속에선 각종 소송 건을 교사의 편에서 조명하였고, 결과적으로 댓글란에서도 학부모와 아이들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영상의 내용이 한 치의 사실 누락 없이 정확하다면 학부모들의 대처가 과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게 과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내 자식을 한 번도 한국 학교에 보내보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한국 교권 문제의 진짜 원인은 학교 또는 교육계의 수뇌부에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본 미국 학교는 겨우 초등학교 두 곳뿐이긴 하지만, 두 곳 모두 교내에서 문제 행동이 발견되었을 때에 일선 교사들이 임의의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 물론 "그만하라"는 말로 제지될 만한 행동이면 "그만하라"는 말 한 마디로 상황이 종료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가령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뛰는 경우, 수업 중에 떠들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떠드는 경우, 교사들은 문제 학생을 교장실로 보낸다. 뻔한 잔소리나 훈계를 직접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너 교장실로 가" 한 마디로 문제 학생에겐 처벌이 시작되고, 교사와 나머지 학생들은 다시 일과에 집중할 수 있다(문제 학생이 반드시 교장실로 가도록 다른 학생이 교장실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만일 문제 학생이 교장실에 가기 싫다고 누군가에게든 물리적인 위해를 가한다면? 경찰 신고는 물론이고 십중팔구 퇴학이다). 교장은 학생이 찾아오면 문제 행동에 대해 일대일로 훈계를 하고 교칙에 따라 벌점을 부여한다. 잘못이 심한 경우엔 정학, 퇴학 처분도 내려질 테고. 처벌에 학부모가 불만을 갖는다면? 그 또한 교장이 대응할 일이다. 학교라는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껄끄럽고 골치 아픈 일들은 대부분 교장이 책임진다.


무엇이 문제 행동이고, 어떻게 처벌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된 '핸드북'에 개괄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세부사항은 매년 조금씩 업데이트된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에 앞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마다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핸드북'을 읽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핸드북은 학교의 매뉴얼이다. 학생에겐 교내에서의 올바른 행동 양식을 보여주는 매뉴얼이고, 교사들에겐 각종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을 정리한 매뉴얼이고, 부모들에겐 각종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를 미리 고지하는 매뉴얼이다. 가령, 휴대폰 사용 적발 시 교사가 압수하여 메인 오피스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욕설은 어떤 류의 욕설이든 처벌 대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 애가 그렇게 심한 욕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다른 친구들 앞에서 지적을 해서 낙인을 찍느냐"며 부모가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네 애가 무슨 욕을 하든 우리는 처벌할 거야'라고 미리 서면 고지가 되었으므로. 분쟁을 일으킨다 해도 처벌 방식이 매뉴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일이 더 커지긴 어렵다. 그러므로 이 매뉴얼은 교사와 교장과 학교를 위한 보호장치이기도 하다.


이번 <PD수첩>에 나온 케이스는 모두 일선 교사가 본인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처벌했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커졌다. 교사들이 본인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처벌하는 이유는 아마도 공통의 매뉴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지침 없이도 교사 입장에선 괜찮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말이 진실처럼 전해내려오면서 교사의 역량이 과대평가되어 있었고, 많은 재량권이 주어져 있었고, 회초리를 얼만큼 휘두르든 부모들은 "매를 아끼지 말아달라"며 고개를 숙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재량권을 함부로 쓰는 교사들이 생겼고, 그런 교사를 보고 자란 요즘의 부모들은 교사를 쉽게 믿지 않는다. 문제 행동에 대해 반성문을 쓰게 했든, 칠판에 이름을 적었든, 교실 청소를 시켰든, 교사가 본인만의 방식을 '교육'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안 믿을 사람은 끝까지 안 믿는다. 그래서 공통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어떤 행동에 대해 누가 어떤 처벌을 어떻게 내릴지 미리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고지하여 소모적인 분쟁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


본디 교사의 주 업무는 교과 과정 지도이지, 문제 학생 교화가 아니다. 그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면 그 일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굉장히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거친 학부모와의 면담도 능숙하게 진행하여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고 심각한 경우 교육청이나 사법기관과의 공조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누가 하냐고? 가장 적임자는 아무래도 가장 권위 있고 경험 많은 사람, 즉 교장이 아닐까? 그런데 한국의 교장선생님들은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신가? 일선 교사들이 교과 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장 골치 아픈 일들을 손수 떠맡는 방패막이 역할을 과연 하고들 계시는지?


'역시 한국은 윗대가리가 문제'라는 내 편견이 편견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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