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막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곳에서는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주기에 내 이력을 생각해 보았다.
손 편지로 층간소음 갈등 해결 (2023년 / 동탄)
이밖에도 편지로 여러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거나 감동을 극대화하여 스스로에게 수상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편지봉투에 마음을 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중 잦은 이사로 특화된 편지, 층간소음을 한 장으로 끝낸 성공담을 풀어보려 한다.
나는 보았다.
윗집 문 앞에 있는
쌍둥이 유모차를.
이사를 와보니 전에 살던 집과 마찬가지로 층간소음이 있었다. 아파트는 어딜 가든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윗집 아이들의 하루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공유받았다.
우리 윗집에는 이제 막 자신의 두 다리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쌍둥이 아가들이 살고 있는데, 얼마나 건강한지 밥 먹고 잠잘 때 빼고 뛰어다녔다.
나에게는 만 두 살, 세 살 조카가 있어서 층간소음으로도 윗집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 없이 달리기와 높이 뛰기가 가능하다는 것, 오전 10시에도 층간소음이 난다면 어딘가 아프거나 코로나에 걸려서 어린이집을 못 간 것, 그럼에도 잘 뛰어다닌다면 고열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것 등..
조카들과 비슷한 시기인 윗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리라 생각하니 낮동안의 층간소음은 귀여운 편이었다.
하지만 저녁시간에는 달랐다.
아이들이 6시에 저녁밥을 먹고 나면 충전 완료 ‘본격! 인터벌 러닝’ 시간인데 3시간째 우다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벌써 체대입시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TV 소리를 점점 크게 했지만, 데시벨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리의 파장은 우리 몸을 통과하는 듯 귀가 아닌 온몸으로 감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전략을 짜고 있었다.
한 달은 참아보자!
나보다 훨씬 예민한 남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안타까웠지만, 한 달 동안은 상황을 확대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윗집 편을 들어주고는 했다.
“사람이 사는 집인데 이 정도 층간소음이 있으면 어때. 아기들한테 뛰지 말라 하면 말을 듣겠냐고, 우리 집에도 조카들 놀러 오면 뛰어다니고, 우리도 아이 생기면 아랫집에 똑같이 피해줄텐데! 오빠는 지금 피해자의 억울함을 표출하고 싶은 거야?
어느 날은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 뛰는 소리는 저녁 9시에 끝이 나는데, 그 이후부터는 어른의 발도장 소리가 커서 어른들이 노력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밤 11시에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쿵쿵거려서 화가 나 잠이 안 왔다고 한다.
(그날 나는 쿨쿨 잘만 잤지만)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화가 났다.
사실 나도 참으려고 노력할수록 층간소음은 더욱 또렷이 들렸다.
어렵게 구한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 정을 붙일 수 있을는지, 그렇게 한 달 동안은 저녁마다 긴장감이 흐르는 소파에 앉아서 피로감이 큰 휴식을 취했다.
집을 왜 쌓아놓은 것인가
남편은 인터폰으로 경비실 통해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다고 했지만, 그 방법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건 과거에 이미 우리도 윗집에게 해봤고, 아랫집에게 당해본 것.
"경비실인데요, 아랫집에서 층간소음으로 연락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경비실에서 연락을 받으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 같았다. 예의를 갖추거나 긴 이야기를 전달해 봤자 경비실에서는 한마디 띡, 전할 뿐이라 기분이 상당히 나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영화 보느라 두 시간째 소파에 앉아 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이후에도 소음문제로 경비실에서 종종 연락을 받곤 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우리는 잘 걷지도 않아 노부부가 살고 있는 것처럼 조용했고, 우리 윗집은 진짜 노부부가 살고 있는데 아랫집은 윗집에, 그 집은 또 윗집에 또 윗집에.. 경비실을 통해서 층간소음을 전했다. 그 아파트는 와다다다다 빠르게 뛰는 소리가 나는 귀신의 집이었다.
인터폰 벨소리가 뜬금없이 울리면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라서 심장이 쪼그라들었고, 외출 후 집에 들어갈 때는 아랫집 등이 켜져 있는지 염탐해야 했다.
그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도 궁금했고, 이삿짐 사다리차를 보면 그 집으로 연결하고 싶었다.
층간소음은 집의 의미도, 우리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지친 나를 두 손 벌려 반겨주는 집은 어디 있을까.
내가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구조.
각자 나름의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집을 쌓아서 인간을 위아래로 모여 살게 만든 게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시작은 아름답게
이사를 와서 한 달을 참아봤지만 층간소음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든 편지가 급하게 마려울 때 바로 쓸 수 있게 사놓은 편지지 보관함을 열었다.
진심을 박력 있게 전할 핑크빛 편지지를 고르고, 이번엔 첫 단추를 잘 끼고 싶어서 그동안 생각해 놓은 글을 써 내려갔다.
층간소음 하소연한 사람이 맞나? 싶은 편지글
이 편지의 글쓴이 의도를 글쓴이가 분석해 드리자면,
일단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안 봐도 알 것 같은 이 불길한 편지에 놀라지 않게 안심을 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 달 동안 노력한 부분이 포인트지만 생색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괜찮다는 이야기는 반어법이지만 그대로 알아들어도 감수할 생각으로 쓴 것이다.
층간소음은 싫지만 세 살 아이는 잘못이 없기에 불편함은 어른들이 나눠할 몫이라고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내 집에 살면서 발소리 조심하며 마음 졸이고 사는 불편함을 잘 알고 있다]는 내용은 공감대를 이끌어가기 위함이고, [아이 키우는 부모님에게 층간소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는 진심이다. 윗집은 무려 쌍둥이니까. 하지만 반박불가한 어른의 발소리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이 어지러운 관계들 속에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모아 마무리하였다.
편지와 함께 줄 선물로 우리 조카가 잘 먹는, 아이 엄마도 아침식사 대용으로 대충 먹기 좋은 개별 포장된 잔기지떡을 준비했다.
이 떡을 매일 아침마다 먹으며 내 생각 많이 해주길..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허리를 굽히고
편지를 전해준 날 저녁 조 — 용 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잡아놓았나 미안했다. 다음날부터는 층간소음이 여전히 들렸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줄었다.
우리를 위해 노력을 해줬다는 생각에 남편의 귀도 덜 예민해졌고, 이 정도 결과에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윗집 남편이 직접 찾아와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며 허리를 굽혔다.
“ 죄송합니다. 이사 오시기 전에 두 달 넘게 빈집이라서 신경 안 쓰고 살다가.. 저희 때문에 얼마나 불편하셨겠어요.
저희 집 아이들이 쌍둥이인데요, 집에 매트를 깔았지만 이번에 더 두꺼운 매트로 교체했습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피해를 줘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
우리 부부도 같이 허리를 굽히며 미안함을 전했다.
“ 아니에요,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뛰지 말라는 말을 듣나요. 저희 집도 조카들 와서 뛰어다녀요. 아이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셔요. 뛰어다녀도 괜찮습니다”
맞절이라도 할 기세로 미안함에 서로 허리를 연신 굽혀대었고, 문이 닫히는 작은 틈으로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부’를 가져다준다는 금괴모양의 휘낭시에를 받아 들고 제법 센스 있는 선물에 감동을 했는데, 편지를 꺼내 읽고 마음이 풀리다 못해 인류애를 가득 충전했다.
<봉투에 담긴 윗집의 마음>
안녕하세요. 501호입니다. 우선 사과드립니다.
좋은 곳으로 이사 오셨는데 불편함을 겪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공동주택에 살고 있으니 어른이나 아이나 조심하는 게 당연해요.
집에 한창 뛰어다니는 22개월 쌍둥이 여아가 있어서 집에 매트도 깔려있고 주의시키지만 매트가 없는 곳에 물건을 던지기도 해서 큰 소리가 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늦은 시간 종종 크게 우는 소리도 들리시죠?
좋지 않은 일임에도 이렇게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 발소리도 크게 들리는 것 같아서 층간소음을 줄여 보고자 더 두꺼운 매트로 교체하였습니다.
매트를 새로 바꾸고 답장을 드리려고 인사가 늦었네요.
저희도 아이들과 함께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너그러이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가족 모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
다행히 우리의 이웃은 다정하고 배우신 분이었다.
편지를 읽자 마음속에는 월드컵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축배를 들고 싶었다.
내가 짐작해 본 상황 중에서 최상의 상황이었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마동석 같은 아저씨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겁을 줄 것까지 생각했지만,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는 있을 선함을 끌어내는 나의 방식이 먹혔다!
나의 다정한 이웃은 편지에 마법을 담아서 보냈나 보다. 열려있던 우리의 귀가 사르르 닫히더니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편하지가 않았던 내 집이 이제 내 집 같고, 소파가 소파가 되었다.
편지 한 장(+잔기지떡)으로 진정한 내 집을 찾게 되었다는 신도시의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층간소음.
이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 해결 가능성은 낮지만, 또는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겠지만 편지 한 장에 자신의 선함을 모조리 모아서 진심을 전해 보는 일.
아직 해보지 않은 방법이라면 한 번은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첫 단추라면 더욱 좋고.
+ 부록
윗집에 편지 줄 때 아랫집에도 떡 선물과 편지를 드렸었다.
편지 내용에는 '혹시라도 저희 집으로 인해 불편함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달라, 좋은 아파트에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며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아랫집 60대 아주머니는 엄마의 마음인지 우리 집 앞에 더 큰 선물을 놓고 가셔서 감사했다.
몇 달 후 우리 집 욕실 누수로 아랫집에 물이 떨어져서 일단 문자로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데, 아주머니의 답문은 러브레터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못 갔네요.
마음에 항상 있었어요.
꼭 만나고픈 사람입니다. 401호 분은요 ^^
감사드립니다.
욕실 배관이 터졌는데 내 심장도 터지게 한 말 '꼭 만나고픈 사람입니다.'
이 말은 마치 [우리가 만나게 되는 날은 배관수리공이 오는 날이네요.. 그날을 고대하며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러브레터 느낌이다. 푸.. 웃음이 났다.
누수문제로 할 일이 늘어났지만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편지로 뿌려 놓은 씨앗을 하나씩 거두면서 그것들이 내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401호 만세!